'역사를 아는 의사, 진정 환자를 보듬는다'
연세의대 여인석 의학사연구소장
2022.02.28 05:35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고재우 기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는 국내 유일의 ‘의학사연구소’가 있다. 한국사회 속 의료가 처한 현실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 문제점 진단 및 성찰을 통해 의료가 사회에 기여토록 하는 역할을 수행 중이다. 특히 제중원을 비롯해 의사 출신 독립운동가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데일리메디는 3·1절을 맞아 의사 출신임에도 임상현장 대신 의학연구를 자처한 여인석 소장[사진]을 만나 자부심과 애환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 수행하는 의사와 역사적 정체성을 이해하는 의사는 다르다.”
 
‘왜 의학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여영석 소장의 답이다. 단순한 진료에만 치중하기 보다 그 정체성을 알게 되면 의업(醫業)의 숭고함을 더 절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의학 역사에 대해 연구를 하는 곳은 드물다. 의학사연구소는 국내 유일무이한 연구기관인데, 한국근대의학사, 동아시아의학사, 동서양비교의학사, 의학사상사 등 중점연구 분야 및 연구실을 설치해 운용 중이다.
 
여인석 소장은 “쉽게 말해 국적 상 같은 한국인이더라도 한국역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라며 “이런 의미에서 의사가 종사하는 역사에 관심을 갖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또 의사학과의 인문학적 ‘특수성’을 강조하며, 이에 대한 정부·대학 차원의 지원을 호소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에는 ‘전염병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했는데, 단순히 호기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학문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자연과학은 지식을 축적해 나가는 성격이 강하지만 인문학은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특수성이 있다”며 “정부·대학 등에서 지원을 할 때 이러한 특수성을 이해하고, 당장의 성과에만 매몰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이후 전염병 역사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며 “감염병 연구 시 백신 등도 중요하지만 이의 역사적 배경이나 연구윤리 등처럼 이문학적인 연구도 같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해방 이전 세브란스 졸업생 1000명, 명단 작성”
 
현재 연구소에서는 해방 이전 세브란스 졸업생 약 1000명의 기록을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향후 이를 확대해 일본 등 각지에서 졸업한 해방 이전 한국인 의사들에 대해서도 조사할 계획이다.
 
특히 세브란스 병원학교 졸업생들의 경우 '의사'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독립운동을 한 경우가 많다.

지역에 병원을 열고 지역민을 치료하는 동시에 독립운동가들이 옮겨 다닐 수 있도록 병원을 중간거점으로 활용했다. 병원을 통해 번 돈으로는 독립운동자금을 대기도 했다. 故 김필순, 故 이태준 등이 대표적이다.
 
여인석 소장은 “해방 이전 세브란스 졸업생 약 1000명을 전수조사 해 데이터를 만들고 있다”며 “현재는 졸업생만을 대상으로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이를 확대해 일본 등에서 졸업해 중국·만주 등에서 활동했던 사람까지 조사 후, 당시 의료계의 특징이나 의사들의 활동 양상을 확인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그는 “국가보훈처에서 독립유공자 선정 시 징역 등 기준을 중요시 하는데 러시아 등 일본의 경찰력이 미치지 않은 곳에서 활동한 분들은 기록에 접근하기도, 기록이 남아 있는 사례도 드물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의사들의 과거도 조명한다.

세브란스 병원학교 졸업생인 故 이인선의 경우 고향에서 개원해 활동하다가 1930년대에 성악을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다. 이후 귀국해 북경·동경 등에서 연주회를 열었고, 해방 이후에는 오페라 운동을 이끌었다.

“의료일원화, 학문적 의미서 통합 쉬울 수도”
 
여인석 소장은 ‘의료일원화’에 대해 학문적 의미에서는 통합이 쉬울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의학사연구소 첫 연구성과물은 ‘한의학, 식민지를 앓다’였을 만큼 해방 이전 한의학 양태를 잘 파악한 이도 드물다.
 
단 그는 한의학의 임상적 신뢰성 등을 제외한 채 한의학이 우리사회에 수용되는 과정 등에 대한 평가임을 전제했다.
 
여 소장은 “일제강점기와 비교했을 때 한의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학문적인 의미에서 통합이 쉬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놨다.
 
이어 “일본에서는 제도적으로 한의사가 없기 때문에 한의학에 관심 있는 의사가 연구해 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와 한의사가 제도적으로 나뉘어져 갈등이 있다. 학문이 아닌 제도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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