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 우리나라 정형외과 술기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정작 국내 의료현장에서는 홀대에 신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는 십 수년째 변함이 없는 저수가에 기인한다. 특히 대학병원에서조차 수익 문제로 입지가 좁아지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일반환자들의 치료 기회가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의료환경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데일리메디는 최근 대한정형외과학회 김명구 회장을 만나 정형외과가 처한 작금의 난맥상에 대해 들어봤다.
Q. 코로나19 상황에서 정형외과 환자들의 치료기회 상실 측면이 있나
정형외과 또한 코로나19 이전보다 환자가 많이 감소했다. 관절염 계통의 질환을 가진 60세 이상 고령환자가 많다 보니 병원 방문을 꺼리는 것이다. 무릎의 심각한 통증 등 당장 거동이 불편한 상태가 되면 병원을 찾는다. 다행히 지난해 말부터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는 중이다. 델타 변이 때 가장 큰 폭으로 줄었고 오미크론을 거치면서는 심각한 변화는 없다.
Q. 4월 춘계학술대회는 어떤 측면에 방점을 두고 있나
교육에 많은 비중을 뒀다. 특히 정형외과 의사들은 초음파 진단과 수술 등 술기 교육이 많이 필요하지만 수련기간 동안 직접 시행할 기회가 적다. 견학만으로는 충족하기 어려운 레지던트 실기교육에 많은 비중을 둘 생각이다. 환자를 볼 때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강의를 목표로 했다. 이와 함께 고령화에 대비해 세부학회인 대한노인근골격학회(가칭)를 논의 중이다. 같은 관절 질환이라도 기저질환이 많은 노인환자는 젊은환자들과 치료 접근법이 달라야 한다. 좀더 나은 치료 제공을 목적으로 고민할 부분이 많다. 이번에 처음 심포지엄을 진행한다. 아직은 기획단계다.
Q. 프로그램 중 비의료인 수술실 출입 관련 동영상 교육이 눈길을 끈다
2019년 의료법 시행규칙 변동으로 수술방에 출입하는 비의료인에 대한 교육이 필수가 됐다. 정형외과는 새로운 장비가 많아 의료기기 관계자 출입이 빈번한 만큼 그들을 위한 교육 세션을 따로 마련했다. 의료법, 감염관리, 개인정보관리 등에 대한 교육을 진행한다.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해 학회는 여전히 반대입장이다. 일부 의사의 일탈 때문에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는 결과가 될 것이다. 수술 교육 등을 위해 필요한 녹화와 감시 목적의 CCTV 중 어느 것이 더 의사의 위축을 가져오는지는 뻔한 일이고 환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 의료 분쟁에서 활용 가능성도 확실하지 않은 자료를 의료기관에서 보유했다가 유출될 우려도 있다. 정형외과는 특히 무릎, 허리 등의 수술부위 특성상 개인의 신체 부위가 모두 드러나게 되는데 그런 영상이 병원에 남는 것 자체의 우려도 있다. 해외에서도 CCTV를 설치하는 곳은 드물다.
"10년 넘게 저수가 고착돼 병원서 홀대, 천덕꾸러기 신세 답답"
"이익률이 너무 안좋아서 수술 제한하는 병원까지 있는 실정"
"정형외과 중증도 분류 모순, 대학병원 힘들고 전공의 수련교육마저 위협 당할 상황"
Q. 정형외과 저수가에 대해 학회도 고민이 크다는데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수술수가는 특히 처음 책정될 때 지나치게 저평가로 시작했다. 과거에 비해 인상이 계속 되고 있긴 하지만 인상 수준이 외부 변화 요인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하다. 특히 정형외과는 최근 의료기술 발달로 혁신적 장비가 많이 나오고 있다. 많이 알려진 인공관절 수술로봇이나, 연골수술을 할 수 있는 관절경 등 선진화된 기술이 등장하는 중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장비를 사용해도 같은 수가가 책정되다 보니 적자가 불가피하다. 또 정형외과 수술은 치료재료를 많이 사용하는데 일회용이 대부분이다. 세척이나 소독을 한다고 해도 감염 우려가 있어 재사용은 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하나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Q. 병원 내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 예를 들어 인공관절 수술은 전공의까지 합해 4명 정도의 의사가 필요하다. 1시간 가량이 소요되는데 수가는 60만원이다. 그러니 병원 입장에서는 정형외과가 탐탁치 않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눈치가 보이는 아이러니를 겪고 있다. 심지어 어떤 대학병원에서는 견주관절수술을 한달에 2건 이내로 하라는 등 제한을 건 곳도 있다. 수술을 하지 말라는 데도 있다.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중증도도 떨어지고, 적자가 나는 만큼 차라리 환자를 안 보는게 낫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Q. 중증도 측면에서도 홀대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증도 정의가 잘못됐다. 보건당국에 의해 대학병원에서 많이 하면 중증도가 높고, 개원가에서 많이 하면 낮은 것으로 정했다. 암환자 진료는 이 기준에 부합한다. 하지만 다른 정책과 겹쳐지면 모순이 발생한다. 보건복지부가 전문병원을 만들었다. 특정 분야는 대학병원만큼 잘 하는 병원을 만들자는 목표로 지원했다. 그래서 정형외과 전문병원이 활성화됐다. 어려운 수술도 잘 하는 병원이 만들어진 것이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이런 상황에서 ‘대학병원에서 안 하는 수술은 중증도가 낮은 것’이라고 정의를 내려버리는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다.
Q. 정형외과 전공의 수련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
지금 대학병원에 남은 수술은 소위 돈 안 되는 것, 까다로워서 웬만하면 안 하려고 하는 것들이다. 중증도 분류 기준이 결코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 또 대학병원은 마음대로 비급여를 받을 수도 없다. 그러니 수술하는 의사들이 미움 아닌 미움을 사는 실정이다. 수술을 많이 할수록 성과를 인정받을 수 없는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 전공의 교육도 문제다. 중증도를 위해 손익을 맞춘다는 목적으로 수술을 제한하면 전공의 교육 기회는 점차 축소된다. 간단한 수술조차 해 본 적 없는 의사가 배출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환자에게도 악영향이다.
Q. 학회에서 마련할 수 있는 개선책은 없나
그동안 보건복지부에 수 차례 심각성을 알렸다. 정부도 필요성에 공감은 하지만 형평성 차원에서 고민하는 것 같다. 하지만 수술수가 문제는 정형외과뿐만 아니라 다른 외과도 문제다. 최신 장비와 치료재료가 발전하고 있는데 보상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정책적으로 현 상황을 넓게 알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술기로는 우리나라 정형외과가 해외에서 최상위 수준이다. 고령환자에 맞는 수술법과 처치 등 고민과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과목의 입지가 흔들리고 교육체계에 위기가 올 우려가 있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