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있는 삶 위해 공공의료 선택, 힘들었지만 3년 보람'
인천보훈병원 김영찬 초대원장
2021.07.26 05:53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잘 나가던 비뇨기과 명의(名醫)가 ‘공공의료’라는 고행(苦行)의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만류는 극심했다. 하지만 그는 확고했다. 개별 환자의 질병 치유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적부조인 ‘공공의료’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 더 가치 있는 삶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공공의료에 발을 들인지가 어느덧 13년째다. 각오는 했지만 현실은 더욱 힘겨웠다. 늘 ‘공익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고, 조직문화 개선에 저항하는 직원들과의 신경전도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기꺼이 그 고행을 받아들였고, 지금도 현장에서 ‘공공의료’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얼마 전 연임이 결정된 인천보훈병원 김영찬 병원장에게서 이젠 공공의료 명의(名醫) 위엄이 느껴졌다.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텐데, 후회는 없나
결단코 없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듀크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등에서 임상강사, 조교수로 일했다. 귀국 후에는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에 몸 담으면서 국내에 ‘갱년기 의학’을 처음 도입했다. 교육과 연구에 어느정도 결실을 맺었다고 판단해 개원을 결심했다. 전국에 네트워크를 확보할 정도로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보다 가치 있는 일을 찾고 싶었고, ‘공공의료’에서 그 답을 얻었다.
 
지난 13년 동안 걸어온 공공의료 행보는
2008년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장으로 공공의료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인천적십자병원장, 인봉의료재단 영등포병원 경영원장,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항노화센터장을 거쳐 2018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인천보훈병원장을 맡아 4년 째 임무를 수행 중이다. 취약계층, 산재환자, 국가 유공자 등 분야가 상이한 만큼 환자군 역시 달랐지만 ‘공공의료’의 매커니즘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천보훈병원 초대 병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는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2018년 5월 1일 부임했다, 당시 대통령이 ‘8월 개원’을 약속한 상태였다. 하지만 40년 만의 폭염, 레미콘업계 파업, 홍수 등으로 공사 진행이 순조롭지 못했다.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집무실을 공사현장으로 옮겨 직접 챙겼다. 화장실도 없고 현장을 돌다 옷에 페인트가 묻는 일이 다반사였다. 천신만고 끝에 2018년 8월 31일 건축공사를 완료하고 진료를 시작했다. 병원 책임자로서 대통령 약속을 지켜드렸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개원 후 3년이 지났다. 병원은 안정궤도에 접어들었나
물론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인천지역에서 나름 자리매김하고 있다. 15개 진료과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현재 응급실 증축공사가 진행 중이다. 공공의료를 수행할 수 있는 병원의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기존 공공병원 운영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인근 병원들 간의 협진체계와 시청, 구청, 경찰서 등 공공기관과의 협조체제를 수립했다. 특히 보훈병원인 만큼 유공자 단체들의 유대관계가 두텁게 형성됐다.

“현장경영‧솔선수범 운영철학 고수”
“의료인력 채용 고충, 다른 공공병원도 마찬가지”
“매년 줄어드는 적자폭, 흑자는 구조적으로 불가”
 
공공의료기관 병원장으로서 경영철학은
‘현장경영’과 ‘솔선수범’이다. 현장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도출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직원들과 공유한다, 그리고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하면서 직원들의 동참을 유도한다. 당직의사 구하기가 어려워 당직을 섰고, 직접 독감 예방백신도 접종했다.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 파견도 나갔다. 직원들과 병원 현안을 논의할 때도 직접 발표자료를 마련해 책임자로서 준비하는 자세를 보이고자 했다.
 
‘덕장(德將)’이라는 평이 상당하다
과찬이다. 신생병원을 알리기 위해 참 많이 뛰었다. 특히 보훈단체를 지속적으로 찾아가 직접 ‘병원현장 설명회’를 진행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도와주기 시작했다. 직원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모든 직원의 이름을 기억하고 정기적인 면담을 진행하며 친밀감을 높이고자 했다. 신규직원들에게는 병원의 비전을 전달하기 위해 입을 열고, 퇴직자들에게는 병원을 위한 제언들을 듣고자 귀를 열었다.
신생병원인 만큼 난관도 적잖았을 것 같다
병원의 구조적인 문제와 인적자원 관리가 가장 어려웠다. 130병상의 소규모로 시작한 병원이지만 무려 15개의 진료과를 운영해야 했다. 때문에 ‘1인 전문의 진료과’가 대부분이었다. 조직의 지배구조로 인천보훈병원은 보훈복지의료공단의 산하기관 중 하나다. 병원에 대한 의사결정을 병원장으로서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신설기관의 책임자로서 안타까운 일이었다.
 
의료인력 수급에 어려움은 없었나
의사 채용 및 관리가 가장 어려웠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민간병원 대비 50~80% 수준의 낮은 급여, 1인 전문의 진료과의 업무 부담, 특히 신설병원으로서 책임감 등으로 의사들이 지원을 기피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3명의 의사를 채용해야 했다. 그 고충은 형용하기 힘들 정도다. 채용하지 못하거나 의사가 사직할 경우 해당 진료과는 폐쇄해야 하는 부담감을 늘 안고 있다. 물론 보훈병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공의료인력 수급 문제 해결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다른 직종의 인력수급과 관리 상황은
의료인력 만큼이나 힘들었다. 공공기관은 강제적으로 직원 이동을 할 수 없다. 철저히 본인 의사에 맡겨야 한다. 진급을 원하는 직원들이 주로 신설 병원으로 이동한다. 중간관리자 대부분이 이러한 경우였다. 간호실은 간호실장을 비롯해 수간호사 전원이 인천보훈병원으로 이동해 진급했다. 신규직원은 70%를 차지했다. 기존 운영되는 병원보다 더 능숙한 직원이 있어야 하는 신설 병원으로서 어려움이 많았다. 
 
지난 3년 간 기억에 남는 활동은
코로나19 사태에 고통 분담 차원에서 4개월 간 급여의 20%를 반납, 관련 정부기관에 기탁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뿐만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 개원 6개월 만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을 개설했다. 그리고 1년 후에 전체 병동의 67%까지 확장했다. 코로나19 대응도 나름 성공적이었다. 초기 대구지역 간호사 파견, 마스크 지원, 전담인력 채용, 예방접종센터 의사파견 등 공공의료기관으로 적절하게 대응했다. 특히 직원들을 비롯한 환자와 보호자 등 중에서 확진자 발생이 전무했다. 
 
신설 병원 운영에 가장 아쉬운 점은
개원 후 순조롭게 자리매김에 성공했다. 하지만 경영수지는 적자다. 2년 7개월의 짧은 기간을 감안해야겠지만 인천보훈병원은 구조적으로 적자이다.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보훈병원의 정체성을 포기해야 한다. 적자는 필연적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매출 대비 적자 폭은 매년 줄고 있다. 그만큼 어려운 상황에서 병원이 성공적으로 경영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초대원장으로서 하고 싶은 말
하늘과 땅을 우러러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직도 어려움은 산적해 있다. 지난 3년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고, 이 시기를 잘 버텼다. 지난 3년의 경험을 토대로 발전할 일만 남았다. 유공자와 가족 그리고 지역주민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지속적으로 병원이 발전해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자리를 굳건히 하고 승승장구했면 하는 게 초대원장의 바람이다. 
 
한편,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은 지난 4월 30일 임기가 만료된 김영찬 원장의 연임을 결정, 5월 1일부터 1년 간 임기를 이어가게 됐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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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3 07.26 12:01
    이 기자 양반 병원장이랑 엄청 친하던가 아니면 ......  똑바로 보고 듣고 느끼며 쓰시오...  저리 잘 했으면 왜 가는 공공기관마다 다 찬밥신세 병원장일까??? 알 수 가 없네....  부임하는 병원 직원들마다 안 좋은 소리들 하고 다닐까... 쯔쯔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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