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최근 몇 년동안 마취 중 환자 사망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마취 환자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됐다. 사고 원인은 대부분 무자격자 마취행위에 따른 사고였다. 큰 수술에서 필수적인 전신마취는 고도의 의학적 지식과 풍부한 임상경험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마취 환자 안전제고를 위한 정부와 학계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정부는 마취적정성 평가를 도입했으며, 대한마취통증의학회는 임상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고 있다. 나아가 의료계는 중장기적인 마취환자 안전 관리를 위해선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취 관련 수가를 개선하고 출장마취의사가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법적 기반의 마련 등이다. 최근 마취환자 안전 이슈를 두고 분주한 마취통증의학회의 사정을 김재환 이사장(고대안산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사진]에게 들어봤다.
[편집자주]
Q. 마취 환자 안전 제고를 위해 최근 정부차원의 노력이 관측된다. 과거와 비교해 마취환자 안전사고 빈도는
수술실에서 발생하는 순수한 마취로 인한 환자안전사고 빈도는 확률이 아주 낮아 경향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마취과학회에서 접수된 분쟁 사례들을 분석한 논문을 살펴보면, 2009-2014년에 비해 2015년~2018년 동안 뇌손상이나 사망 같은 치명적 손상의 비율이 유의하게 감소하고 있다. 또 사고원인 중 기도관련 사고, 심근경색 등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장비와 기술 발달이 이뤄졌고 마취 전·중·후 환자를 평가하고 관리하는 노력이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즉, 충분한 시설과 마취인력이 있는 의료기관에서 마취안전사고 빈도와 치명율은 분명히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기도 관련 사고 감소는 실제로 현장에서 많이 체감하고 있다.
Q. 환자 모니터링 기술·약제 개발로 마취환자 안전도는 획기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역, 기관별 격차로 '안전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마취환자 안전 이슈가 발생하는 주 원인은
2009~2014년과 2015~2018년 기간 동안 마취 관련 분쟁을 비교분석한 결과, 치명적 손상 비율은 감소한 모습이다. 진정 관련 사고는 전신마취와 유사한 정도로 계속 발생했으며, 새로운 수술 기법(어깨관절경)과 관련한 사고는 증가한 경향을 보였다. 상당한 정도의 국소마취제 독성으로 인한 사고도 일어났다는 특징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진정(속칭 수면마취)의 경우 수술 자체의 위험도가 극히 적은 내시경, 검사, 소수술 등에서 사망이나 뇌손상 같은 치명적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사고가 충분히 예방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새로운 수술기법 도입 관련한 사고도 이러한 마취를 안전하게 관리할 능력이 부족한 무자격자의 마취로 인한 경우가 빈번하다. 국소마취제 독성 사고의 경우는 비교적 국민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특정 미용수술에서 많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어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이런 사고의 경우 대형 의료기관에서는 잘 발생하지 않고 대부분 소형 의료기관에 집중된다. 또한 특정 지역에서 무면허 마취의료 행위와 관련해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의료 소외지역이 아닌 특정 대도시란 특징이 있다. 의료기관 규모에 따라 마취안전에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주목해야 하는데, 특정 지역과 특정 전문병원이 무면허 마취행위를 통해 환자의 안전을 도외시하고 특정인들의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있어 문제가 크다.
마취사고 사후조치에 따라 나타나는 문제점도 있다. 관련법에 따라 마취의사 신원이 정확히 고지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한 것이다. 법적인 설명의무에 따라 병원은 전신마취를 시행하는 의사의 이름을 알리고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런 절차도 밟지 않고 환자는 자기가 누구에게 마취 받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마취를 받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마취시행자를 은폐하기 급급한 경우가 흔히 있다.
Q. 학회는 '마취환자안전 관련기관' 업무를 파악해 국내 실정에 맞게 도입할 수 있는 방안 계획 중인데
국제보건기구(WHO)와 세계마취학회협회(WFSA)에서 발표한 ‘안전한 마취를 위한 국제기준’을 국내법과 면허체계, 의료실정에 맞는 지침서로 제정하려는 계획이다. 임상지침개발 위원회에서는 안전한 임상지침 개발에 대해 의학회와 협력하고 있다. 국제 학계와의 연계도 지속하고 있다. 미국, 유럽 마취과 학회 등과의 상호 교류를 통해 환자안전에 관한 선진 기술과 교육방법을 전수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충분히 예방 가능한 수면마취 사고, 특정 지역 특정 전문병원에서 빈번하게 발생”
“마취전담의사 수가차등제 도입 필요"
"마취 전 평가 외래수가 인정하고 마취진료 한정 이중개설 금지조항 예외 인정해야”
Q. 국내 도입 고려할만한 해외기관 업무사례는, 그리고 새롭게 도입이 시급한 제도적 장치는
우선 새로운 제도 도입에 앞서 많은 진통에도 불구하고 의료계가 합의한 규범들과 정부가 정비한 법규들이 철저히 지켜지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포폴로 인한 사고가 빈발하자 대한의사협회에서는 프로포폴 사용을 위한 지침을 만들고 관여 의료진은 반드시 교육을 받도록 했다. 학회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일단 환자 안전을 위한 시급성을 고려해 여러 학회들이 합의했다.
하지만 실제 사고 발생 사례들을 보면 이 지침이 지켜지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설명의무에 따라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들이 마취 책임이 변경되는 경우 환자에게 서면으로 동의서를 받고 있지만, 작은 의료기관에선 마취 사망사고가 발생하였는데도 마취의사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도 많다. 많은 진통 끝에 만들어진 기존의 합의와 법률만이라도 충실히 지키도록, 마취를 누가 시행하는지 환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최소한의 권리가 지켜지도록, 이러한 기본적인 원칙만 준수해도 최소한의 안전사고와 무면허 마취인력에 의한 의료사고를 많은 부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환자 안전에 소홀한 의료기관들이 성실하게 법규를 지키도록 하고, 환자안전을 위해 수가상의 손해를 감수하는 의료기관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당장 개선이 시급한 제도들이 있다. 첫째, 마취 주의의무 수준 유지와 관련한 수가 개선책이다. 여러 전문과목 술기나 의료행위의 차등 수가제로 인한 논란이 많으나 마취에 있어서는 이와 다른 면이 분명히 있다. 마취는 환자의 통증을 차단하는 것뿐만 아니라, 수술이나 검사의 전기간 동안 수술과 검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환자를 관찰하고 활력징후를 유지하고 안전을 확보하다가 마취 전(前) 상태로 회복시키는 진료행위다. 모든 의사가 마취를 시행할 수 있지만 수술기간 동안 환자의 안전을 확보하고 관찰하는 마취에만 집중하는 의사의 마취수가와, 대부분 수술에 집중하고 있으면서 마취를 동시에 시행했다고 하는 의사의 마취 수가가 동일한 것은 모순이다. 당연히 수술과 마취를 동시에 청구 하는 수가와 전임으로 마취만 수행하여 청구하는 수가는 차등이 있어야 한다.
둘째, 마취 전 평가의 외래수가 인정이다. 일반 환자군에서 심근경색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마취, 수술 중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이 감소한 결과를 보인 것은 적절한 수술 전 평가와 수술중 관리 덕분이다. 최근 의료비 절감을 위하여 외래나 당일 수술 마취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데, 수술 전에 마취전 평가를 위해 내원하는 경우 마취 전 평가를 목적으로 한 외래진료가 인정이 되지 않아 심각한 문제다. 다른 전문과목의 경우 집중 설명을 위한 수가 시범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마취안전은 적절한 마취 전 평가로부터 시작되므로 이에 대한 외래수가를 인정해야 전체적인 입원일수 증가 등으로 인한 의료비도 줄이고 환자안전을 증대시킬 수 있다.
셋째, 마취진료에 한해 이중개설 금지조항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 마취의를 고용하기 어려워 마취의를 초빙하는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출장마취 전문의원을 개설한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은 이중개설 금지조항에 걸려 실정법상 다른 병의원에 출장 마취를 가기 어렵다. 출장마취는 당연히 타 병원에 대한 서비스를 전제로 하는 의료행위이므로 이중개설 금지 조항의 예외를 둬야 한다.
Q. 마취환자안전 문제와 관련 향후 학회 계획은
국회와 환자 안전을 위한 논의를 준비 중이다. 행정부도 적극 협조하고 있으며 개선사항 등을 협의하고 있다.
학회 내부적으로는 윤리위원회를 만들어 환자안전과 관련한 회원들의 윤리의식을 고취하고 일탈을 방지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학술이사 휘하에 있던 환자안전 소위원회에서 환자안전이사직을 신설하고 독립위원회로 확대 개편해 환자안전과 관련한 지침을 개발하고 적극적인 제도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수련 과정에서 환자안전을 위해 임상에서 만나기 힘든 상황들에 대한 시뮬레이션 교육을 통해 비상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향상시킬 예정이다. 이를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 학회 사무실을 이전해 시뮬레이션 센터를 만들었다. 이밖에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면 전공의를 대상으로 시뮬레이션 워크숍을 시행할 예정이며 추후 워크샵 등을 수련과정의 필수항목으로 지정하는 것을 논의 중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전문의들 교육을 위해 산하 분과학회가 시니어 전문의만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