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수도권을 덮치면서 전문가들이 경고했던 병상부족은 곧 현실이 됐다. 정부는 부랴부랴 민간병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지만 기존 입원환자들에 대한 조치 등 준비가 돼있지 않았던 병원들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지역계에서 반가운 소식들이 들려왔다. 지역 거점 중소병원들이 정부가 모집하는 ‘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에 자원한 것이다. 정부가 보상책을 약속했다지만, 그간 전담병원을 운영했던 의료기관들이 수 년 간 경영난을 면치 못했다는 사실은 병원계에서 잘 알려져 있다. 중장기적인 손해를 예상하면서도 결단을 내린 김부섭 남양주 현대병원장[사진 左]과 백승호 인천백병원장(성수의료재단 이사장)[사진 右](병원장명 가나다순). 감염병 사태가 불식되지 않은 채 맞이한 새해, 국민들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남양주 현대병원과 인천백병원은 각각 수도권 동부·서부에서 지역민 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의료기관이다. 남양주 현대병원은 대형의료기관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경기 동북부에서 300병상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지역 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코로나19 거점 전담 병원으로 일찍이 지정된 남양주 현대병원은 이달 15일까지 중환자 병상 25개, 준중환자 병상 18개, 경증환자 병상 76개 총 119 병상을 제공할 예정이다. 인천백병원은 노령인구가 많은 인천지역에서 20년이 넘게 환자를 보고 있는 중견병원이다. 지난달 27일 인천시 최초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28일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인천백병원은 5개 병동 중 3개 병동 183병상을 전체 음압이 가능한 병상으로 변경해 총 102개 감염병 전담병상을 순차적으로 운영한다. 같은 성수의료재단 산하 강화도 비에스종합병원도 80병상을 제공한다.
Q. 지역에서 자리를 잡은 병원들로 알려져 있다. 병원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
김부섭 남양주 현대병원장(이하 김)- 지난 1998년 현대정형외과·내과로 시작했다. 2002년에는 남양주시 최초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됐으며, 2009년에는 종합병원으로 승격했다. 현재 375병상을 운영 중인데, 2023년에는 500병상 규모로 확장할 계획이다. 경기 동북부에는 현재 큰병원이 의정부 성모병원 정도다. 인구수에 비해 대형의료기관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지역민 의료인프라 확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밖에 지난 2011년부터 몽골 해외의료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백승호 인천백병원장(이하 백)- 2000년 인천 동구에서 ‘백승호 신경외과 의원‘으로 시작했다. 병원이 성장하면서 ’성수의료재단‘을 건립했고, 현재 인천 동구와 강화군에 각각 인천백병원(102병상)·비에스병원(80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재단 산하 두 병원 모두 원도심 특성을 잘 파악해 진료를 하고 있다. 각각 행정단위 안에서 유일한 민간종합병원으로 사회공헌활동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김부섭 원장 “지방에도 병상 없어 이송되지 못하는 환자들 두고 볼 수 없었다”
백승호 원장 “인천시병원회 회장으로서 선제적 참여의무 실천"
Q.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감염병 전담병원 자원을 결정했는데
김- 지난해 12월 초, 이 지역에서 한 부부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근데 이송될 병상이 없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서 병상배정을 하려는데 인천, 파주, 수원, 안성이 여의치 않았고 결국 상주, 안동, 목포 소재 의료기관으로 넘어가게 됐다. 어레인지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환자들 상태는 악화됐다. 더 큰 문제들은 중증환자들이었다. 자택에서 의료기관, 혹은 의료기관에서 더 큰 의료기관으로 이송하려면 인공호흡기를 구비한 차량이 있어야 하는데 그 수가 넉넉지 않다. 이런 상황들이 계속되면서 ‘안 되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병원 같은 경우에는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 이전에도 10명 정도 확진자를 돌보고 있었다. 시설과 장비 등 여력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자’고 직원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
백- 알다시피 우리나라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한 상황이다. 병상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기관장으로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질병관리청과 인천시가 주도한 회의가 열렸지만 많은 의료기관이 망설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이런 흐름을 바꾸기 위해 누군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본인은 현재 대한병원협회 인천시병원회 회장을 맡고 있다. 국난 시국에 선제적으로 참여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인천백병원과 비에스종합병원의 자원을 결정했다. 대구 동산병원 사례를 보며 많은 병원들이 ‘토사구팽’에 대한 걱정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주변 병원장들 중에서도 전담병원 전환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분들이 늘고 있다. 어려운 시기 정부를 믿고 나설 수 있는 병원은 나서보자는 분위기가 인천지역 병원계에서 형성되고 있다.
Q. 전담병원 운영을 위한 병원 시설 재배치·직원 반대 등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김- 중소병원의 경우 감염병 사태에서 방역망이 뚫리면 그야말로 ‘끝났다’고 봐야 한다. 메르스 사태 당시 원내감염이 확산됐다가 문을 닫은 중소병원들이 적잖다. 우리 병원도 언제든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담감이 상당하다. 다만 우리 병원의 경우 앞서 코로나19 확진자를 받으면서 방역대책을 철저히 마련했다. 유사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병상을 20개씩 분리해서 관리 중이다. 의료진들이 진료·생활하는 공간도 확실히 분리했고 환자들의 면회도 제한했다. 유난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신경을 기울였다. 병원 직원들도 ‘웬만해선 안 걸리겠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미 확진자를 치료한 경험도 다수 있는 만큼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을 받은 후에도 직원들의 큰 동요는 없었다. 2명이 사직했는데, 위험한 일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 당연하다. 안전을 위해 매일 방역교육하고 싫은 소리도 많이 하는데, 직원들에게 많이 고맙다.
백- 직원들하고 사전에 많이 얘기했다. 우리 병원의 미션이 '지으신 손과 고치는 손이 함께 해 이 땅에 에덴을 회복한다'다. 다행히 많은 직원들이 건립이념에 동참해 자원에 동의하는 의견이 많았다. 병상을 내놔야 치료가 가능하고, 치료가 돼야 감염병에 대처가 가능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돕자. 감염병이란 호랑이를 잡으러 직접 호랑이 굴에 뛰어들자”는 의견에 동참해줬다. 사명감을 갖고 믿고 따라준 병원 임직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현재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사전조치를 한 상태다. 최신 음압시설을 구비하고 전직원에게 한 달에 1번씩 진단검사를 시행하도록 했으며, 원내감염이 없도록 동선 분리도 철저히 했다. 병원 종사자 모두가 감염에서 자유로워야 안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덧붙여 결정을 내린 병원장으로서 솔선하기 위해 지난 주부터 응급실 당직에 나서고 있다. 시니어·주니어 스텝들 피로감이 상당할 텐데 모쪼록 힘내주길 부탁한다.
김부섭 원장 “‘감염병 전담병원’ 바라보는 시민의식 높아져, 우려보다 격려의 말 들려와”
백승호 원장 “보상에 대해선 정부 믿고, 전담병원 역할 수행 전념할 방침”
Q. 전담병원으로 운영됐던 많은 병원이 경영난에 시달렸다. 정부 보상금·지역민들 인식 등 걱정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닐텐데
김- 감염병 전담병원 자원을 두고 많은 직원들이 우려했던 점이 보상이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선 (운영 후) 6개월 시기까지 보상액을 산정해 지원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앞선 사례들을 봤을 때 이 같은 단기간의 보상으로 회복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정부를 믿고 감염병 전담병원 본연 업무에 충실할 예정이다. 지역민들의 인식은 처음에 큰 걱정이었다. ‘감염병 병원’으로 한번 ‘찍히면’ 여파가 몇 년은 계속될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지난해 3월 처음 확진자를 받았을 때 지역계에서 문의전화가 많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역민분들이 많이 이해해주시고 있다. 감염병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국민들의 인식도 많이 변화하는 것 같다.
백- 공사비 및 병상 운영비는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실비 수준에서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안다. 20년간 병원을 운영했는데, 정상화가 이뤄지는 데는 사태 종료 후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구체적인 협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문제를 따지는 것보다는 원활한 전담병원 운영을 위한 준비가 우선이다. 국난시기에 정부를 믿고 선제적인 병상운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역민들의 걱정은 아직 몸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인천백병원의 경우 지역과 함께 20년 넘게 성장한 병원이기 때문에 오히려 외래진료를 받는 환자분들은 ‘큰 결정 내리셨다’며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강화도에 소재한 비에스병원의 경우 아무래도 고령층 환자분들이 많아 걱정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방역대책에 대해 열심히 설명드리고 있다. 실제로 음압병동은 안전하게 진료공간과 분리되고 있으며, 에어로졸 소독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원내출입을 통제하는 등 환자 안전을 위해서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김부섭 원장 “비상시 의료인력 수급 위한 간호등급제 완화 필요, 요양병원 관리감독 강화”
백승호 원장 “지역 거점병원들이 유사시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의료체계 조성 필요”
Q. 기존 중소병원들 어려움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염병 사태와 같은 비상시 의료체계가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선 정부 차원에서 상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김- 당장 감염병 사태 중에서 건의하고 싶은 게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요양병원 병상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이다. 최근 확진자 35%가 요양병원과 종교시설에서 발생했다. 확진자 발생시 감염이 확산되지 않도록 병상을 확실히 분리하고 시설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꿔야 한다. 종사자들에 대한 감염관리 교육 지원에도 나서야 한다.
둘째는 전문인력 지원이다. 요양병원이 처한 또 다른 어려움은 간호사를 수급하는 것이다. 정부차원에서 권역별 감염전문인력 지원이 고려돼야 한다. 요양병원과 우리 같은 종합병원에 감염전문인력이 배치된다면 지금보다 배는 효과적으로 원내감염 방지책을 세울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중소병원에 대한 의료자원의 효과적인 배분이 필요하다. 감염병을 포함해 각종 재난상황에서 중소병원이 위중증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 중증환자 예비병상을 확충하고 충분한 의료인력을 수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현재 간호등급제가 1~7등급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1~3등급으로 구간을 간소화해 보상 격차를 줄여야 한다. 유휴간호사가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정책적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일선을 떠난 간호사 외에도 상급종합병원 근무를 대기하고 있는 ‘웨이팅 간호사’가 1만명 정도 된다. 이 인력이 중소병원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급종합병원 또한 비상상황에서라도 대기간호사 선발규모를 줄여줄 필요가 있다.
백- (중소병원에 대한 정부정책이 확대돼야 한다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하는 이야기다. 앞서 우리나라는 메르스 사태를 겪었으나 이에 대한 대비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제도 개선을 통해 병원들이 유사시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감염병 등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지방 및 중소병원이 각 지역에서 의료체계를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Q.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정부·의료계·국민들에게 한마디
김- 정부에게는 앞서 말한 정책적 방향에 대한 고민을 말씀드리고 싶다. 의료진들에게는 지난해 내내 너무 고생하셨다고 말하고 싶다. 의료진들이 보상이나 사회적인 명성을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있으면 환자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진료한 것을 잘 안다. 우리 병원에 오시는 파견의사들은 개인 연차를 내서 오신다. 최근에는 전 대한중환자의학회 전 임원 선생님이 개인시간에 도와주러 오셨다. 의료진들의 이런 사명감이 국민 건강을 지키고 있다.
국민 여러분께는 응원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힘든 시기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해외봉사를 가면 고된 하루를 마치고 복귀했을 때 팀원 전체가 모여서 박수를 쳐주곤 했다. 그날의 피로가 싹 달아났다. 관심과 지지가 큰 힘이 된다는 걸 느꼈다. 최근 코로나19 파견 의료진에 대한 보상금과 관련한 뉴스 기사에서 ‘돈 때문에 일하는거 아니냐’란 댓글을 봤다. 마음이 아팠다. 당직 등 밤낮으로 위기상황에 대처하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부디 부탁한다.
백- 정부에게는 의료계가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참여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런 부분이 감안돼 보상이 넉넉히 이뤄지길 바란다. 병원 역시 의사, 약사 간호인력, 진료지원인력, 행정인력, 이송인력, 영양사, 조리사 등 정말 다양한 직군이 오직 환자만을 바라보며 일하고 있다. 정부가 모든 병원종사자에게 보람을 줄 수 있는 정책을 펼쳐주길 바란다. 의료진들에게는, 용기를 갖고 조금만 더 힘내주시길 바란다. 우리가 두려워하면 코로나는 잡을 수 없다.
국민 여러분께는 많은 격려와 응원을 부탁드리고 싶다. 정부 지침을 잘 따라주고, 주변에 병원에서 근무하는 모든이들에게 응원해주길 바란다. 작은 일들이 동기부여가 돼 코로나 종식이라는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현재 본원 코로나 병상에 8살짜리 아이가 입원해있다. 할머니와 함께 확진돼 치료중이다. 병원 임원이 어제 마트에 가서 과자와 과일 같은 간식을 잔뜩 사서 손편지와 함께 아이에게 건네줬다고 한다. 그냥 작은 마음, 작은 실천이 어려운 시기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