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양보혜기자/수첩] 새해 시작과 함께 유한양행이 낭보를 전했다. 자체 개발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가 국내 31번째 신약으로 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이다.
레이저티닙은 개발 과정부터 탄생까지 뜨거운 관심을 받아왔다. 국내 개발 신약 최초로 란셋 온콜로지에 게재돼 긍정적인 의학적 평가까지 받으며,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한 치료제다.
실제 글로벌데이터 보고서에 따르면 레이저티닙은 비소세포폐암 분야 유망 신약 7종 중 하나로 지목됐다. 얀센, 존슨앤존슨 등 다국적 제약사들로부터 러브콜이 이어졌다.
게다가 비슷한 적응증으로 앞서 국산 신약 대열에 합류했던 한미약품의 '올리타'가 아쉽게 개발을 포기한 전례가 있던 터라 유한양행의 성과가 더 값지게 다가왔다.
물론 조건부 3상으로 허가를 받았기에 아직 풀어나가야 할 숙제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2019년 3월 HK이노엔의 '케이캡' 이후 오랫만에 등장한 국산신약 렉라자는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우선 유한양행이 'R&D(연구개발)' 강자로 이미지를 쇄신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국내 매출 1위 제약사이지만 R&D 투자 및 성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파이프라인 취약 및 신약 개발 역량이 부족하다는 말은 곧, 미래 성장 잠재력이 낮다는 의미다. 이 같은 외부 평가에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이정희 대표는 취임과 함께 유한양행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이정희 대표는 “신약 개발은 오랜 시간과 많은 투자가 선행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소명으로 이는 미래 희망이 된다는 굳건한 믿음을 갖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R&D를 더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R&D 강화와 미래 신사업 발굴을 위해 2014년 5.7%였던 유한양행 매출액 대비 R&D 비율은 2020년 3분기 10.8%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풍부한 자금 투자가 결국 신약 개발 기회로 이어진 것이다.
또한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신약 개발 성공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뒤쳐졌던 신약 개발 역량을 신속하게 끌어올리기 위해 바이오벤처들과 협업을 선택한 것이 '신의 한 수'로 작용한 셈이다.
유한양행은 미래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렉라자 원개발사인 오스코텍을 비롯해 제네릭신, 앱글론, 바이오니어 등 다양한 바이오벤처들에 투자했다.
렉라자의 경우 유한양행이 2015년 오스코텍으로부터 전임상 단계였던 레이저티닙 개발 권리를 넘겨 받아 물질 최적화 및 공정개발, 임상 단계를 거쳐 기술수출과 조건부 허가까지 성사시켰다.
상용화에 앞서 유한양행은 2018년 11월 미국 얀센바이오텍에 총 12억5000만 달러(약 1조3781만원)에 달하는 기술수출 계약도 체결했다. 국내 제약사의 해외 기술수출 계약 건 중 역대 5위에 달하는 규모다.
아울러 국산 신약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었다. 이는 국내 폐암 환자를 넘어 전세계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연세암병원 조병철 폐암센터장은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항종양 효과 및 안전성을 통해 폐암환자들에게 좋은 치료 대안이 될 것"이라며 "또한 글로벌 임상을 통해 전세계 폐암환자에 희망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한양행은 현재 전 세계 17개국에서 렉라자 단독요법 글로벌 3상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얀센은 자사의 이중항체 항암제 '아미반타맙'과 렉라자의 병용 임상 중이다.
조 울크 J&J 최고재무책임자(CFO)는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아미반타맙은 레이저티닙과 병용요법으로 뛰어난 시너지를 내면서 향후 비소세포폐암 치료에 더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만일 레이저티닙 단독요법과 병용요법을 동시 개발하는 투트랙 전략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 받는 블록버스터 국산 신약이 탄생하게 된다.
물론 이런 낙관적 전망이 시기상조일 수 있다. 임상시험 성공 후 미국과 유럽 규제당국 허가 장벽, 타그리소와 차별화 등 당면한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시판이 된다고 해도 처방이 많이 될지 낙관하기도 아직은 이를 수 없다.
그러나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국산 신약 '렉라자'가 이런 난관을 잘 극복하고, 글로벌 신약으로 무럭무럭 자라나길 바란다. 그리하여 글로벌 무대에서 국산 신약의 새 역사를 쓰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