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민식 기자] 2020년, 온 나라가 그렇지만 의료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폭풍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불청객이 그간 조심스럽게 다뤄지던 의료계의 굵직한 현안들을 수면 위로 마구 끄집어내고 있어서다. 대구에서 단시간에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면서 불거진 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공공의대와 의대정원 확대 이슈로 번져갔다. 의료기관에서 확진자들이 속출하면서 비대면진료 역시 강력 추진되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의 거센 반발로 밀어붙이지 못했던 정책들이 예고없이 찾아온 코로나19를 계기로 힘을 얻은 것이다. 그렇게 코로나19의 나비효과는 천천히 준비돼오던 전국의대교수노조(가칭) 설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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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교수노조 필요성은 그 기원을 찾으면 결국 2000년 의약분업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지금 각 의대교수협 회장을 맡고있는 분들은 나와 비슷한 연배인데 모두 가슴에 의약분업 사태에 대한 응어리가 있다.”
소산별노조 형태의 전국의대교수노조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권성택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은 노조 설립 추진 배경을 설명하며 과거 의약분업 이야기를 꺼냈다. 공교롭게도 정확히 20년 전인 2000년 7월, 큰 파고가 있은 끝에 결국 의약분업이 시행됐다.
당시 의약분업이 정부와 국민을 대상으로 의대 교수들 목소리를 강력하게 낼 수 있는 단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된 계기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권 회장은 “노조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교수들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기 때문이 아니다”라며 “많은 교수들이 노조 설립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유는 결국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체가 만들어져 있지 않으면 그러한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또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가 교수노조 설립을 불가능케 하는 교원노조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린 후 법 개정안이 마련됐고, 올해 6월부터 비로소 교수노조 설립이 가능해졌다. 이후 전의교협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전국의대교수노조 설립을 천천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만일의 사태’가 지난 1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코로나19로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등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전의교협도 노조 설립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게 됐다.
"대접 받을려고 하는 것이 아닌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비하기 위해 노조 추진"
“의대정원 확대·공공의대 신설 등 사안은 폭탄 격, 정부 일방추진 묵과 안할 것”
“의협은 신망 잃었고 앞으로 비대면진료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권성택 회장은 노조가 설립 이후 목소리를 내게 될 첫 번째 이슈가 의대정원 확대 문제임을 명확히 했다.
그는 “지금은 정말 폭탄이 떨어진 상황이다. 의대정원 확대 등을 정부가 재검토한다면 노조 설립도 여유롭게 진행하겠지만 지금처럼 정부가 밀어붙인다면 8월에 임시회의를 열어 노조설립 추진위를 만들고 11월께라도 출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의협이 정부와 여당의 의대정원 확대 추진에 파업까지 거론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권 회장은 의대교수노조 설립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의협이 의료계의 목소리를 내는 종주단체로서 신망을 잃은 탓도 크다고 꼬집었다.
그는 의협이 ‘4대악’으로 규정한 이슈에 대해서도 의대정원 확대 문제 외에는 의협과 목소리를 달리했다. 특히 비대면진료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권성택 회장은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관련 논의에 참여해 비대면진료에 의료계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단계별로 조건을 잘 갖춰 시행되도록 해서 부작용 등이 발생치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대면진료가 이상적으로 잘 자리를 잡으면 현재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첩약 급여화 문제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첩약에 대한 선호가 있는 부분을 어떻게 하겠는가”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권성택 회장은 끝으로 "의료계 이슈는 물론 전국의대교수노조가 향후 전국국공립대교수회연합회(이하 국교련), 전국사립대교수회연합회(이하 사교련) 등과도 힘을 모아 교수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대 교수들의 이슈가 전체 교수들의 이슈가 될 수 있고,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라며 “의대교수노조가 생긴다면 국교련, 사교련이 만들게 될 노조 등과도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