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성은 기자] 간호사를 위로하는 그림을 그리던 간호사가 코로나19 최전방인 경북 청도대남병원에 의료인력으로 자원하고 나섰다. 리딩널스라는 이름으로 간호사 업무 고충을 일러스트로 재밌게 그려내 약 4만명의 팔로워를 지닌 오성훈 간호사 이야기다. 전남대병원을 사직한 후 1년 동안 간호 업무를 쉬면서 간호사 어플리케이션 사업을 하고 있는 그가 신종 감염병 환자를 돌보기로 결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간호사로서의 사명감과 더불어 간호사들의 고충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결심이 그를 현장으로 이끌었다. 방호복을 입고 간호하는 어려움부터 다수 확진자가 발생한 병원만의 긴장감까지. 지난 2월29일부터 청도대남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를 돌보고 있는 그는 하루 24시간을 그림과 글로 풀어내며 4만명의 간호사들을 현장으로 안내하고 있다.[편집자주]
의료인으로서 처음엔 상황이 금방 종식될 거라 믿었다. 원래 해오던 대로 그림과 글로 사람들을 위로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구·경북 지역에서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거리가 조용해지고 주변 사람들은 온통 코로나19를 이야기하며 불안해했다. 이후 며칠만에 코로나19 확진자는 3000명, 4000명이 넘어갔고 국가적 재난상태에 이르렀다.
이때 오성훈 간호사는 “간호사로 이러한 상황에서 나서지 않는다면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간호사들을 간호하는 간호사로서 현장을 직접 경험해야지만 공감이 가는 글과 그림을 만들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스타트업 기업의 대표이자 신혼부부, 부모님의 소중한 아들이기에 최전방 간호사로 나서는 것에 주변의 반대도 많았다.
오 간호사는 “대표가 한 달 이상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해 널스노트 회사 식구들이 반대했다. 화상채팅 등 인터넷 회의를 진행한다고 해도 통상 대표가 자리를 비우면 중요한 미팅을 진행하지 못하고 계약도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가족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내는 남편을 걱정하는 동시에 어린이집 교사로서 감염 위험이 커지는 것에 대해 염려했다. 부모님 역시 “아들이 사지(死地)로 떠나는 심정”이라며 오 간호사를 말렸다.
대구·경북지역 간호사 자원인력 신청은 지원부터 합격 발표까지 하루 만에 모든 과정이 끝났다.
오 간호사는 “전화로 지원 합격 소식을 듣고 당장 내일까지 와달라는 소식을 들으니 순간적으로 ‘내가 정말로 할 수 있을까?’하는 망설임도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절차가 하루 만에 끝날 만큼 도움의 손길이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더욱 굳게 마음을 먹었다. 막상 합격 발표 소식을 알리니 주변에서는 염려하기보단 응원을 보내줬다.
정신의료기관 특수성 관련 돌발상황 대비 항상 긴장-감염·방호복 착용 간호 어려움 등 경험
병원에 파견된 간호사들이 코로나19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은 환자들의 활력징후(V/S) 확인, 산소포화도 확인, 라인 관리, 주사 투여, 약물 투여, 이송 환자 인계, 컴플레인 대응, 환자에 대한 정서적지지 등 전반적인 간호업무다.
오성훈 간호사는 “코로나19가 호흡기 관련 전염병이다보니 활력징후가 굉장히 중요해서 매 근무 때마다 측정하고, 비정상적인 환자분들은 1시간마다 특별 활력징후를 측정해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음성과 양성 환자가 동시에 있는 병동은 모든 처치를 음성 환자 위주로 진행하고, 양성 환자 대상으로는 더욱 신경을 곤두세워 감염 위험을 최소화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청도대남병원은 국가 비상체제로 운영되는 만큼 대다수 의료진이 국립정신건강센터 등에서 파견된 의료인력인 상황이다.
인력이 대폭 파견된 이후 업무량은 많이 줄었지만 최소한의 접촉과 검사 등을 통해 최대한 빨리 환자들을 회복, 퇴원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환자들이 정신질환과 함께 감염병을 앓고 있는 만큼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 쉽기에 업무시간 내내 긴장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5분만 지나도 땀 범벅 되는 방호복 2시간 이상 입고 묵묵히 환자 돌보는 간호사들 헌신
오성훈 간호사는 “한 번의 실수도 용납이 안되는 상황이기에 그만큼 항시 긴장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 정신질환자이다보니 감염 환자가 종종 돌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과정에서 상처가 나거나 체액이 튀고 보호복이 찢어지면 의료진 감염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격리돼 업무에 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항시 긴장한다. 똑같이 주사를 놓더라도 주사에 찔리는 경우에 대비하는 등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레벨D 수준의 보호복을 입고 장시간 환자를 봐야하는 것은 코로나19 현장의 모든 의료진이 감당해야 할 어려움이다.
오 간호사는 “전신 보호의, 덧신 2겹, 장갑 2겹, N95 이상의 마스크, 고글 혹은 페이스 쉴드, 헤어 캡, 후드까지 온몸을 빈틈 없이 꽁꽁 감싸기 때문에 열기가 빠져나갈 곳도 없어 입고 나면 5분 안에 온 몸이 땀에 젖는다. N95 마스크를 얼굴에 딱 맞게 써야 하기에 숨 쉬는 것 조차 쉽지 않아 보호장비를 착용한 것만으로도 체력 소모가 심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일을 하다보면 고글에 습기가 차고, 그 습기로 인해 시야까지 흐려진다. 땀방울이 눈에 타고 들어가 눈물이 나지만 감염 위험 때문에 닦을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5분만 입어도 땀범벅이 되는 방호복을 병원에서는 통상 2시간동안 연속으로 입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현재 청도대남병원에서 간호사들은 1시간 혹은 2시간 단위로 방호복을 입고, 같은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고 다시 업무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이 부족하고 일이 급박한 상황에서는 4시간에서 6시간까지 방호복을 착용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 간호사는 “10일 전까지만 해도 청도대남병원 의료진에게 4~5시간 방호복 착용은 기본이었다”고 강조했다.
현재 청도대남병원에서 간호사들은 하루 9시간씩 2교대 체제로 업무를 보고 있다. 매일 업무를 마친 후 오성훈 간호사는 리딩널스로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다른 간호사들에게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오성훈 간호사는 “태움 등 간호사에 대해 부정적인 소식이 많이 전해지는 가운데 선별진료소, 병원 등 각자의 자리에서 헌신하는 간호사들의 노고를 조명하고 싶었다. 매 게시글마다 2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리는데 이 중 ‘빨리 간호사가 돼서 현장에 동참하고 싶다’라는 내용도 많다”고 말했다.
현장에 참여하기 망설이는 유휴간호사들에게도 그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독려했다.
오 간호사는 “나도 파견업무를 시작하기 전 1년 동안 간호사 일을 쉬었기에 해낼 수 있을지 염려했다. 하지만 차팅이 아닌 라인, 주사 등 간호행위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기억하는 것 같다. 실제로 한두번 해보니 기억이 되살아났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이번 계기를 통해 간호사 업무가 숙련된 전문적 행위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