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수 많은 환자를 떠나 보내야 했고, 그 만큼 아파야 했습니다. 이제는 버거운 짐을 내려 놓고 싶었어요.”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항암치료 권위자로 명성이 높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 방영주 교수는 암환자와 함께한 동고동락 30년 세월을 이렇게 술회했다.
항암치료로 상태가 호전이 되는 환자를 보며 보람과 희열을 느꼈지만 역으로 증상이 악화되는 환자의 경우 더 좋은 치료법을 찾아주고픈 마음에 밤샘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식과 경험 공유하는 의미 있는 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힘들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정년 이후의 삶을 놓고 여러 고민을 했고,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암환자 곁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지난 30여 년간 임상현장에서 암환자 진료와 암 치료법 개발 연구에 쏟은 열정을 이번에는 암환자들에게 보다 나은 치료기회를 제공해 줄 수 회사에서 펼쳐 보기로 했다.
이번 달 정년을 맞는 방영주 교수는 현재 임상시험 컨설팅 회사 창업 준비에 한창이다. 정든 교정과 진료실을 떠나 임상의와 교수 신분이 아닌 경영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예정이다.
방영주 교수는 “정년을 준비하면서 여러 옵션을 고민한 끝에 지난 20년 동안 쌓아온 임상시험 관련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결론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바이오벤처는 물론 다국적제약사들의 신약개발 전략 컨설팅을 통해 환자들에게 보다 나은 치료법을 제시하고 나아가 인류 건강에도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제자와 동행 선택한 스승
방영주 교수의 이 같은 결심에 제자이자 동료였던 옥찬영 前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의기투합했다.
현재 의료 AI 개발 전문 루닛에서 메디컬 디렉터로 활동 중인 옥찬영 前 교수는 서울의대 출신으로,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에서 방영주 교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다.
일찍이 탁월한 창의력과 탄탄한 연구력을 눈여겨 본 방영주 교수가 창업을 결심하면서 손을 내밀었고, 스승의 제안에 주저없이 합류를 결정했다.
회사 이름도 두 교수의 성(姓)을 하나씩 딴 ‘방&옥 컨설팅'으로 지었다. 현재 법인 설립 관련 막바지 작업이 진행 중으로, 회사는 양재동에 마련해 뒀다.
방영주 교수는 “같은 지향점을 향해 가는 파트너라는 의미를 담았다. 나이는 중요치 않다. 가치에 공감하고 동일한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러닝메이트”라고 말했다.
“항암제는 기본 다른 치료제도 가능”
두 교수 모두 혈액종양 전문가인 만큼 ‘방&옥 컨설팅’ 역시 항암제 비중이 높을 수 밖에 없지만 굳이 영역 제한을 두지는 않을 예정이다.
국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임상시험 40%가 항암제이고, 전세계적으로도 30%를 넘는 만큼 항암제에 주력은 하되 다른 치료제 임상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모든 임상시험 절차나 디자인 등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다른 분야 서비스도 가능하다는 게 방영주 교수의 판단이다. 물론 해당 분야 권위자들에게 자문을 구할 생각이다.
궁극적으로는 파트너를 추가로 영입할 의향도 있다. 현재로써는 최대 7명까지 예상하고 있다.
방영주 교수는 “현재 임상현장에서 활동 중인 동료, 후배, 제자들 모두 잠재적 파트너”라며 “5년 후에는 보다 많은 파트너들과 호흡을 같이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상의 전략 제시, 선택은 고객의 몫···임상시험 등 신약개발 조력자 역할 매진”
‘방&옥 컨설팅’는 철저히 신약개발 길라잡이를 지향한다. 전임상 단계에 있는 신약 후보물질의 시장성, 경쟁품목 임상정보 제공 등을 통해 제품화 가능성을 높여주는 서비스다.
뿐만 아니라 의료진의 눈높이에 맞춰 임상시험 연구를 설계하거나 제품, 기술 등의 수입을 계획 중인 제약회사에는 가능성 등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한다.
방 교수는 “컨설턴트는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고객에게 최상의 전략을 제시하는 역할”이라며 “최종 결정은 제약회사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임상현장에서 임상시험을 이끄는 주연이었지만 앞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연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창업을 계기로 모든 진료와 연구를 중단할 생각이다. 다만 임상시험 컨설턴트 업무와 별도로 그동안의 경륜을 사회에 환원할 예정이다.
먼저 20년 넘게 라파엘클리닉을 이끌어 온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안규리 교수를 도와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의 종양학 의료인력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일 예정이다.
방영주 교수는 “치료환경이 열악한 지역의 의료인력 양성을 통해 보다 많은 암환자들이 치료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며 재능기부를 통한 인류애 실천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