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허리 통증으로 고민하던 직장인 김지수(가명)씨는 도수치료를 받기위해 병원을 알아봤다. 보험도 가입돼 있겠다, 이왕이면 큰 병원을 찾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그는 대학병원에 어렵사리 진료 예약을 했다. 그러나 치료는 순식간에 끝났으며 다음 예약도 한 달을 넘게 기다려야 가능했다. 2주 후 허리통증이 심해진 김지수씨는 집 근처 정형외과를 찾았다. 넉넉한 시간동안 시시콜콜한 증상에 대한 상담을 할 수 있었으며, 예약 시간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다. 접근성도 좋아 퇴근 후 귀갓길에 잠시 들리면 돼 부담도 덜했다. 김지수씨는 “도수치료를 받으려는 지인이 있으면 집 근처 병원을 추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급종합병원에 적합한 시술이 있는가 하면 개원가에서 더 높은 환자 만족도를 보이는 시술이 있습니다. ‘개원의가 더 잘하는 시술’을 환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통계가 필요합니다. 개원가를 중심으로 데이터 풀을 형성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22일 쉐라톤 서울 팔레스 강남에서 열린 '대한병원데이터협회 창립총회 및 발기인대회'에서 초대 회장에 추대된 이광열 준비위원장(나누리병원 병원장)[사진]은 이같이 말하며 "이곳 학회는 병원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병원에서 일어나는 진료행위와 관련해 다양한 데이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정형외과에서 도수치료를 할 때 어떤 방식의 치료법을 선택했는지, 병행 시술은 어떤걸 사용했는지, 시술한 환자의 나이대와 병력 등 개별특성은 어떠했는지, 시술 후 만족도는 어땠는지 등의 정보가 생기게 된다.
이렇게 모아진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시술법이 주효했는지 객관적인 통계자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객관적인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개원가에서 더 효과적인 시술을 데이터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그는 “의료분야 데이터 활용은 이미 정부 과제 등에서도 많이 다뤄졌지만, 주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며 “그런데 사실 정말 데이터 활용이 필요한 곳은 개원가”라고 강조했다.
이어 “체계적인 데이터 관리가 이뤄지는 대학병원과 달리 개원의들은 효과적인 치료법을 독자적으로 개발해도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자료가 없어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PRP 혈소판 치료가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PRP 자가혈소판 주사요법은 체내 혈액을 채취해 원심분리기로 돌려 혈소판을 분리, 관절강에 주사해서 관절 통증과 염증을 완화시키는 치료법이다.
그러나 안전성과 효과성을 충분히 입증 못해 식품의약안전처로부터 신의료기술로 허가를 받지 못했다. 현재 비용을 받고 치료를 진행하는 것은 피부과에서는 가능하나 관절염 치료에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이 회장은 “대학병원의 경우 원내 의료데이터 체계가 잘 잡혀 있기 때문에 이미 다방면으로 활용 가능한 데이터가 산적해있다”며 “그러나 개원가는 데이터 풀이 아예 형성돼 있지 않아 독자적인 의료기술 발전이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원가 빅데이터 풀 마련, 의료서비스 상향평준화 추진"
"어렵고 방대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표준화 작업부터 시작, 미래에는 개원가 큰 자산될 것"
개원가의 데이터 풀 형성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개원가 전체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다.
개별 의원마다 더 잘하는 시술이 있다. 또 어떤 병행 치료를 하면 효과가 좋은지 등 개별 의사마다 각자의 노하우가 있다. 때문에 같은 시술이라도 병원마다 환자 만족도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데이터로 가공하고 병원끼리 공유하며 효과적인 시술법을 벤치마킹하면 개원가 의료서비스의 상향평준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같은 시술에 대해 환자만족도가 90점인 병원과 50점인 병원이 있다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은 병원의 특성을 다른 병원들이 배워 활용할 수 있다”며 “모든 병원에서 높은 만족도가 담보된다면 개원가에 대한 환자들의 신뢰도 역시 자연스럽게 제고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물론 이 회장이 말한 것과 같은 데이터 활용 활성화를 위해선 방대한 양의 정보가 모여야 한다. 이를 위해 학회는 우선 정돈된 데이터 풀 형성을 위한 표준화 작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는 “개원가 의사들은 의료행위에 대한 정보를 개별적으로 처리하다 보니 각각 서식이나 표현이 중구난방이라 가치 있는 데이터가 나오지 않는다”며 “먼저 질환명과 치료방법의 표준화 작업을 통해서 데이터를 모으고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연구회의 목표”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같은 도수치료라도 한 병원에서는 수기치료만 할 수 있고 다른 병원에서는 디스크 치료기를 함께 사용할 수 있다. 둘 다 도수치료지만 실제 이뤄지는 의료행위는 다르다. 때문에 질환명과 이에 따른 치료법을 명확히 구분하고 정확한 명칭을 부여해 체계적인 데이터를 수집할 필요가 있게 된다.
이 회장은 “수 만 가지 의료행위 표준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주요 질환과 치료법부터 시작해 확대해 나간다면 일정 부분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어렵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내심을 갖고 접근하면 나중에는 개원가 전체의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최근 상급종합병원 쏠림현상이 심각하다는 얘기가 많이 들려오는데, 데이터 활용이 환자 발걸음을 다시 개원가로 돌리는 경쟁력이 될 수 있다”며 “개원가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연구회가 시발점이자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이날 발기인 대회를 가진 대한병원데이터협회는 병원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현장에서 제공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를 연구한다. 학회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전문가 집단과 교류하고 인프라를 형성할 계획이다.
현재 31개 병원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연구회는 올해 말까지 참여 병원을 100여 곳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