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ARPA-H 프로젝트가 기술 개발과 사업화 사이 '죽음의 계곡(Death Valley)'를 잇는 마중물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실패를 용인하는 R&D'를 벤치마킹해 만든 'KARPA-H 프로젝트'를 이끌 K-헬스미래추진단 초대 수장을 맡은 선경 단장은 이 같은 포부를 밝혔다. 선 단장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의 흉부외과 전문의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R&D진흥본부장과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등 임상과 R&D 현장을 두루 거친 의사과학자다. 그를 만나 추진단이 그리는 K-바이오 미래 육성 방안을 들어봤다.
Q. 지난 4월 출범 당시 'KARPA-H 프로젝트 추진단'으로 불렸다
프로젝트 사업명과 이를 추진할 조직명이 달라야 한다고 보고, 대국민 공모를 통해 조직명을 새롭게 선정했다. 한국이 야심차게 도전하는 사업이기에, 우리만의 정체성을 담을 조직명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400여건이 넘는 응모작 중 'K-미래(MIRAE)'에 보건의료 전문성을 강조한 K-헬스미래추진단으로 최종 확정했다. 미래(MIRAE)는 Medical Innovation and ReseArch Evolution의 약자로 보건의료 연구의 혁신을 통해 미래 의료 분야를 선도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Q. 초기 수장으로서 포부는
넥스트 팬데믹, 초고령화, 필수의료 위기 등 중대한 보건의료 난제 해결을 통해 국민의 건강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혁신 바이오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R&D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세계적으로 기술 경쟁이 심화되고 있으며 미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주도권 확보를 위한 도전적‧혁신적 R&D에 과감히 투자하고 기술 격차를 확대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K-헬스미래추진단은 한국 보건의료 및 안보를 위한 ARPA형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미래 의료 분야를 선도할 계획이다.
Q. K-바이오 현 주소를 평가한다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경우 인더스트리 분야가 약하다. 바이오 인더스트리의 경우 대기업이 대략 0.5~2%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복제약을 팔아서 영업이익을 남기는 사업구조를 가졌다. R&D를 통한 혁신적인 기업은 거의 없다. 나머지 98%는 영세 중소기업이다. 바이오 육성을 위해선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Q. '규모의 경제' 실현이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형 ARPA-H를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기존처럼 좋은 논문 발간, 특허 확보, 인력 양성이나 이미 개발된 기술이나 물질을 PoC(Proof of concept) 단계까지 끌고 가는 게 목표라면 100% 성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젠 다른 것을 해야 한다. 남들이 안하는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혁신 기술이 가졌으나 펀딩이 부족해 데스밸리를 넘지 못하는 업체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사실 규제 장벽보다 투자 부족이 바이오 성장의 더 큰 걸림돌이다. 가령 스타트업이 좋은 물질을 개발해 임상시험에 들어가더라도 민간 펀드가 무서워서 들어오질 못한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업체가 죽음의 계곡을 간신히 넘고 나면 그제서야 슬그머니 들어온다. 민간펀드와 공공펀드가 중첩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제약산업에 민관협력파트너십(PPP)을 통해 도전하는 회사들을 지원하고 싶다. 글로벌 제약사와 5000억원대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큐어버스도 펀딩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졌다면 좀더 개발 단계를 진행해 조(兆) 단위 계약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1조1600억 프로젝트 기반 '미래 의료' 로드맵 제시"
"유럽‧독일 등과 혁신형 R&D 지원 방안 협의"
"예비타당성 시간 허비하는 동안 선진국 R&D 4~5년 앞서 나가"
"K-바이오 양질의 성장을 돕고, '퍼스트무버' 탄생하는 도전적 R&D 이끌 마중물 되겠다"
Q. 글로벌 협력도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글로벌 대기업 및 선두국가의 프로젝트에 공조하고, 협력할 계획이다. 최근 개최된 '2024 세계바이오서밋'에서도 '하이 리스크-하이 리워드' 연구개발의 국가별 접근 방식을 공유하고, 혁신·도전형 보건의료 R&D 국제 공조 강화 방안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유럽의 ARPA-H인 JEDI, 독일의 SPRIN-D, 덴마크 ICDK 등 각국의 혁신적 R&D 담당자들과 글로벌 협업 방안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Q. 9년간 총사업비 1조1628억원이 투입된다. 운영 방안은
고령화, 만성질환 증가, 감염병 위협, 필수의료 지역 완결체계 구축 등 한국사회가 직면한 보건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두면서 국민건강 증진과 바이오헬스 산업 성장을 동시에 추구한다. 올해까지 5개의 임무 아래 10개의 과제가 도출됐다. 해당 과제에 5년간 1770억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Q. 기존 프로젝트와 차이점은
기존의 국내 R&D 사업은 정부가 주제를 선정, 연구자가 연구비를 지원받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전문성과 역량 있는 PM(프로젝트 매니저)가 중심이 돼 과제 기획부터 선정 평가까지 전주기를 관리하며 현장적용실증은 물론 사업화까지 지원하게 된다. PM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최대한 보장하되 과제 운영에 대한 책임도 부여한다.
Q. 추진단 프로젝트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았다
한국형ARPA-H 프로젝트의 예비타당성 면제를 두고 여러 말이 있었다. 하지만 예타를 하면 4~6년이 허비돼 '퍼스트무버'가 되는 연구를 할 수 없다. 그 기간 선진국은 4~5년 더 앞서 나간다. 한국은 결국 '퍼스트 무버'가 아닌 '패스트 팔로어'로 머물게 된다. 우리가 의료 선진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선진국 연구를 카피, 발전시키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도전 및 혁신형 보건의료 R&D 육성을 위해선 예타를 면제하는 것이 타당하다.
Q. 마지막으로 전할 말
대한민국이 정말 큰 투자에 나섰다. 성공을 전제로 한 '안전한 ' 연구가 아닌 도전적인 R&D를 하는데 국민 혈세를 사용하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실패해도 좋으니 도전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국민 허락이 필요하다. 선도형 R&D를 위해 실패해도 걱정말고 덤벼보라고 기다려주는 국민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권도, 행정부도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지원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 추진단은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하며 K-바이오 양질의 성장을 돕고, '퍼스트무버'가 탄생하는 도전적 R&D를 이끌 마중물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