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 꼬박
5년이다
.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장이
3명이나 바뀌었고
, 논의에 참여한 다른 유관단체 담당자들도 모두 교체됐다
. 그만큼 고단한 작업이었다
. 판도라의 상자는 지난
2017년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열렸다
. 의료계 국제학술대회가 리베이트로 얼룩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주도 하에 관련 규정을 정비하라는 주문이 내려졌다
. 복지부는 의료계
, 제약계
, 의료기기업계 등과 학술대회 지원 규정을 명시한 공정경쟁규약 개정안 논의를 시작했다
. 하지만 워낙 이해관계가 첨예했던 탓에 논의는 공회전을 거듭하기 일쑤였다
. 그렇게 흐른 세월이 무려
5년이다
. 다행히 최근 천신만고 노력의 결과물이 도출됐다
. 협의체가 꾸려진 이후 유일하게 모든 논의 과정을 지켜본 만큼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 대한의사협회 이우용 학술이사
(삼성서울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는
‘자율 규제
’라는 짧고 굵은 표현으로 이번 개정안을 총평했다
.
“무늬만 국제행사는 퇴출”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국제학술대회는 국제행사 답게!’로 귀결된다. 적어도 무늬만 국제행사처럼 꾸미는 행태는 없도록 했다.
그렇다고 비현실적인 기준을 과감히 완화시켜 일선 학회들의 고충을 덜었고, 학술활동을 지원하는 업체들의 부담 경감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우선 초미의 관심사였던 국제학술대회 인정 기준은 현행 5개국 이상, 외국인 150명 참가, 2일 이상 개최 기준을 5개국 이상, 외국인 50명 이상, 2일 이상 개최로 새롭게 정비했다.
국제학술대회 위상을 감안, 학회 규모와 무관하게 최소 50명 이상 외국인 참석인원의 마지노선을 설정한 셈이다. 여기에는 발표자를 비롯해 좌장, 토론자 모두 포함된다.
기부금 외에 부스와 광고비 추가 제공 금지는 업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다.
국제학술대회에서 다이아몬드, 골드, 실버, 브론즈 등 등급에 따라 수 억원에서 수 천만원의 기부금을 제공한 업체에게 별도의 부스비나 학술책자 광고비를 받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학술대회 종료 후에는 인건비, 대관료, 식음료비 등 세부 지출내역 보고를 의무화 함으로써 투명성 제고에도 신경을 썼다.
이우용 학술이사는 “정상적인 학술활동에 대한 지원과 후원은 보장하되 상식을 넘어서는 행태들은 사전에 차단하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20~30% 국제학회 자격 박탈”
‘자율규제’ 역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앞으로 국제학술대회 업체 후원을 받기 위해서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제3자가 아닌 의료계 스스로 옥석가리기를 통해 건전한 학술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최종 결정권은 대한의사협회가 갖는다. 대한의학회의 경우 산하 학회들로부터 접수된 신청건을 심사해 그 결과를 의사협회에 전달하는 역할이다.
의협으로부터 인정받은 행사에 한해 국제학술대회 규정에 입각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심사기준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참가자수 △프로그램 내용 △영어강좌 △비용의 적절성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전해졌다.
‘자율규제’에 입각해 해당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과감하게 국제학술대회 신청을 반려한다는 게 의협과 의학회의 단호한 입장이다.
의사협회와 의학회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새롭게 마련된 공정경쟁규약 개정안을 적용할 경우 현행 국제학술행사 중 20~30%는 심사에서 탈락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우용 학술이사는 “결코 탈락을 위한 심사가 아닌 제대로된 국제학회의 위용을 판단하는 작업이 될 것”이라며 “현재 10개 국제학회 중 2개 정도는 반려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제적으로 자정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프레임에 주목해야 한다”며 “정상적인 학술활동마저 도매급으로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학회 활성화 유도”
사실 이번 개정안은 국제학술대회 범람에 기인한다. 국내학술대회 규정이 과도해지면서 상대적으로 기준이 느슨한 국제학회로의 전환이 봇물을 이뤘고, 이 과정에서 각종 폐단이 불거진 탓이다.
실제 국내 학술대회의 경우 학회가 등록비나 회비 등 자체 예산으로 행사에 소요된 총비용의 30% 이상을 충당해야 한다. 지원된 비용의 사용내역에 대한 사후통보도 의무화 돼 있다.
만약 학회가 이 규정을 지키지 않거나 비용결산 내역 등을 공개하지 않을 경우 한국바이오제약협회나 다국적의약산업협회는 회원사의 지원을 금지시킬 수 있다.
공정경쟁규약 개정안 협의체는 작금의 기형적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국내학술대회 규제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
국내학회 활성화를 위해 그동안 학회들에게 최대 부담으로 작용하던 자부담율 30% 적용 조항을 삭제했고, 잉여금 반환 조건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비용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국내학회는 개괄적인 지출내역을 사전에 제출해 의협이나 의학회의 심사를 받도록 했다.
이우용 학술이사는 “적어도 과도한 규제로 국내학회를 꺼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맞지 않은 국제학회로의 변신을 시도하기 보다 탄탄한 국내행사를 치르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어 “정상적인 학술활동은 국민건강 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만큼 적극 독려되고 보호받아야 한다”며 “이번 개정안이 그 옥석을 가려낼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제약계, 의료기기업계가 공동으로 도출한 공정경쟁규약 개정안은 현재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로 이관됐다.
공정위가 해당 개정안을 최종 승인할 경우 이르면 하반기, 늦어도 내년부터는 시행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