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1개소법 합헌, '의료=공공성' 기본적 가치 재확인'
김준래 국민건강보험공단 선임전문연구위원
2019.09.09 06:05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제출한 자료와 의견서 분량만으로도 다른 사건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합니다. ‘1인 1개소법’ 위헌 여부는 드물게 하급심에서 판단이 엇갈렸던 중요한 사안으로 면밀한 검토를 위해선 많은 자료가 필요했습니다. 양측 입장에 대한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의견을 살폈던 헌법재판소는 마침내 ‘국민 건강을 위한 의료공공성 보장’이라는 기본적인 가치에 방점을 두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오랜 시간 이 사안을 쫓아온 법조인으로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김준래[사진] 국민건강보험공단 선임전문연구위원(변호사)는 최근 데일리메디와 만나 “의료법 제33조 8항, 일명 ‘1인 1개소법’에 대한 헌재 합헌 결정으로 의료영리화 저지를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 지켜졌다”며 안도감을 드러냈다.
 

개인 및 단체가 무분별한 영리추구를 위해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행위를 법(法)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헌재가 재확인 했다는 것이다.


지난 8월29일 헌법재판소는 "'의료인은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를 규정하는 의료법 제33조 제8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5년 만에 결론이 난 해당 사건은 일반인이 구제를 청구하는 헌법소원심판청구와 함께 법원이 직접 헌재에 판단을 요청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이 병합된 건이었다. 그만큼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 했던 사안이 ‘1인 1개소법 논란’이었다.


1인 1개소법 본래 취지는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의료인이 한 개 의료기관만을 운영하며  본연의 업무인 의료행위에 전념, 책임감을 갖고 업무를 수행해 의료행위의 질적 저하를 막는 것이다.


1인 1개소법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규정이 새로운 형태의 경쟁력 있는 의료기관 출현을 막는다고
주장했다.


성공한 병원운영 경험을 가진 의료인을 주축으로 의료기관 '브랜드'와 진료 및 경영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을 통해 낮은 가격에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이야기다.
 

또 의료인이 자신의 역량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법이 침해하고 있다는 근거도 더해졌다.


이 같은 1인 1개소법에 반대하는 입장의 논리가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고민이 깊었던 것이다.

"의료기관 원가 절감 등 1인 1개소법 유지하면서도 충분히 가능"
 

그러나 김 선임전문위원은 반대 측에서 이야기하는 진료원가 절감 등은 1인 1개소법을 유지하면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각각의 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인들이 서로 의기투합해 원자재를 공동구매하는 방식으로 진료 원가를 낮출 수 있다. 또 의료기관 개설 및 운영 주체인 의료인의 전속적인 운영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구매대행, 인력관리, 법률, 회계 컨설팅 등 비용절감에 도움을 주는 순수한 의미의 병원경영지원회사(MSO)를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법 테두리 내에서도 경쟁력 있는 의료기관 발전이 가능한 상황에서 1인 1개소법을 배제하는 것은 영리추구가 목적인 소수 의료기관들의 이익만 챙기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 선임전문위원은 “건전한 경영자문 등이 모두 합법인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다수의 의료기관을 개설하고자 하는 행위는 공동구매 등 네트워크병원 본연의 장점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영리사업을 확장하려고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특정 1인이 운영하는 네트워크 의료기관은 영리목적 의료행위가 의심되는 경우가 발견되기도 했다.
 

김 선임선문위원이 논문에서 제시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16년 '일반 병원 및 네트워크병원 진료행태 비교' 에 따르면 일반 의료기관에 비해 특정 1인이 소유한 네트워크 의료기관의 경우 입원치료 편중과 친인척 외래진료 비율이 높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일례로 2010년부터 2011년 사이 치과 행위별 진료현황을 살펴보면 네트워크 치과의 경우 일반 치과보다 비급여 처치율이 높고 건강보험 급여대상 가운데서는 진료 난이도가 낮은 치석제거율과 구치 발치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업계에 따르면 일부 네트워크 병원에서는 새로운 지점이 개설될 때마다 리베이트를 수수하고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가 지급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네트워크병원의 지점들은 진료 수익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산상 손실이 발생하는 기형적인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네트워크병원이 의료계 독식하면 새내기 의사들이 대기업 등 특정의료기관 쏠려"

 

김 선임전문위원은 “이러한 네트워크병원이 의료계를 독식하게 됐을 때 더욱 심각해지는 문제는 갓 졸업한 새내기 의사들이 ‘대기업’이 된 특정 네트워크병원에 몰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수의 자본력 있는 의료인이 의료기관 개설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게 되면, 개원을 준비하는 의사들의 진입장벽이 더욱 높아지고 결국 취업시장처럼 ‘대기업 네트워크병원’ ‘입사’ 준비를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의료는 민간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특정 의료인의 독점이 발생했을 때 더욱 폐해가 심각해질 것”이라며 “헌법재판소가 이런 우리나라 의료시장 특성을 고려해 결정을 내린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선임전문위원 논문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 공공의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4.3%로, 민간의료 비율이 95%를 넘는다.
 

때문에 민간의료시장 질서가 와해됐을 때 환자들에게 돌아가는 피해는 더욱 막대하다. 헌재의 이번 판결 또한 이 같은 우리나라 의료상황을 적극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문에서 헌재는 “이 조항은 지나친 영리추구로 인한 의료의 공공성 훼손 및 의료서비스 수급의 불균형을 방지하며 소수의 의료인에 의한 의료시장의 독과점 및 의료시장의 양극화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김 선임전문위원은 “의료계에서 언제나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국민의 건강”이라며 “어떤 경우에서든 의료는 상거래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마무리 된 1인 1개소법 합헌은 의료공공성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며 “많은 쟁점들이 있었고 긴 시간이 걸렸지만 국민 건강을 위한 올바른 판단에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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