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연속이었다. 변곡점 마다 사연은 있었다. 예기치 못한 외부 변수에 가슴을 쳐야 했고, 그 아픔을 딛고 당당히 명성을 회복했다. 이 모든 반전은 3년 만에 이뤄졌다. ‘최고 대우’와 ‘최상 환경’으로 지방 명문 수련병원의 입지를 굳혀온 울산대병원은 정제되지 않은 수련병원별 급여 통계자료에 직격탄을 맞으며 부인하고 싶은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그러나 결코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기에 다부진 각오로 명예회복에 나섰다. 인턴 연봉 8400만원이라는 파격적인 대우과 각종 복지제도로 예비의사들에게 다가갔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이듬해 인턴모집에서 1.07:1의 경쟁률로 정원을 초과하며 반전에 성공했다. 이후 인턴은 물론 레지던트 모집에서도 선전을 거듭하며 완연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2019년 이후 3년 만에 다시찾은 울산대병원에 그동안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민영주 교육부원장과 함께 곽동윤, 신우섭 인턴에게 비결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전공의 만족도 변화 이끌어낸 절치부심
울산대병원의 지원율 상승은 수치상으로도 확연하다. 인턴 충원율은 이미 100%를 넘은지 오래고, 레지던트 지원율 역시 매년 오름세를 기록 중이다.
실제 2020년 0.72:1이던 레지던트 지원율은 2021년 0.88:1, 2022년 0.92:1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일부 기피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전문과목에서 충원에 성공하고 있다는 얘기다. 인기과 정원 채우기도 힘겨운 다른 지방대병원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주목할 점은 전공의들의 만족도 변화다. 3년 전 아픔을 안겼던 대한전공의협의회 주관 ‘전국 전공의 병원평가’에서 매년 최상위 그룹에 이름을 올리며 달라진 입지를 방증시켰다.
실제 2020년 평가에서 중소형병원(전공의 100~200명)에 중 전체 2위에 올랐던 울산대병원은 2021년에는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자체적으로 실시 중인 수련만족도 조사에서도 호성적이 이어지고 있다.
△업무강도 △근무시간 준수 △소통 및 협력도 △근무환경 △급여 등 5개 항목으로 이뤄진 설문결과 2019년 3.7점(5점 만점)이던 만족도가 최근에는 4.3점까지 올랐다.
이는 절치부심의 결과다. 2019년 호되게 치른 홍역을 계기로 정융기 병원장을 위시한 주요 보직 교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체질 개선에 나섰고, 작금의 결과로 이어졌다.
병원은 우선 전공의 업무강도를 대폭 줄이기 위해 드레싱 등 단순 반복업무를 전담하는 ‘시술지원팀’을 신설했고, 병동 업무 시스템 혁신을 통해 적정 업무량 유지에 심혈을 기울였다.
△2인 1실 아파트형 기숙사 제공 △연간 휴가 11일 부여 △경조휴가 및 경조사비 지급 △본인 및 직계가족 진료비 감면 등 복리후생도 신경을 썼다.
민영주 교육부원장은 “전공의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복지 개선에 힘쓴 결과”라며 “전공의를 대하는 병원의 진정성이 통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곽동윤(울산의대), 신우섭(경북의대) 인턴 역시 울산대병원을 선택한 이유로 주저없이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꼽았다.
Q. 여러 수련기관 중 울산대병원을 선택한 이유는
곽동윤 : 삭막한 분위기였지만 제대 이후 많은 변화가 느껴졌다. 과거 대비 역동적이고 활기찬 의국 분위기에 지원을 결심했다. 물론 전반적인 업무강도, 복지제도 등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신우섭 : 결정적 이유는 분위기였다.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가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인상 깊었다. 실제 들어와 생활해 보니 새내기 의사임에도 교수님과 선배님들로부터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민영주 교육부원장 : 전국 최고 수준의 연봉이 ‘결정적 한방’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다.(웃음) 젊어진 분위기는 역동성을 발휘할 수 있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아픈 부분이기도 하다. 경륜으로 보살펴 줄 시니어급 교수들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가 적잖다.
Q. 직접 체감한 입장에서 가장 만족감이 높은 제도는
곽동윤 : 단연 ‘시술지원팀’이다. 전담인력이 단순 반복 업무를 수행해 주는 덕에 업무강도가 과거 대비 확연히 줄었다. 때문에 과중한 업무에 허덕이지 않고 각 전문과목의 특성과 장단점을 보다 세밀하게 배우고 느낄 수 있다.
신우섭 : 당직근무 배정 등 전반적인 업무 분배가 공정하고 수평적으로 이뤄지는 부분이다. 고된 수련생활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울산대병원은 확실히 달랐다. 일부 진료과에서는 전공의 당직을 줄이기 위해 교수님들이 당직을 서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민영주 교육부원장 : 과거에는 교육자 중심의 수련이었다면 요즘은 철저히 전공의 중심 수련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울산대병원은 다른 수련기관 대비 시대적 변화에 조금 더 선제적으로 대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Q. 순혈주의 부분도 짚어보자. 마침 자교, 타교 출신인데, 각자의 느낌이 궁금하다
신우섭 : 물론 타교 출신인 만큼 초반에는 환경 변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울산대병원원은 다양한 대학 출신들이 많아 순혈주의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오히려 사고와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곽동윤 : 울산대병원 전공의 중 자교 출신 비중은 25~30%에 불과하다. 교수님들 역시 출신 학교가 다양하다. 합리적이고 수평적 조직 문화가 자연스레 형성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요즘은 융합의 시대다. 다양성이 모이면 시너지가 발휘된다.
민영주 교육부원장 : 2022년 울산대병원 인턴들의 출신 대학이 무려 14개다. 교수와 레지던트까지 합하면 전국 37개 대학 출신들이 생활하고 있다. 그만큼 전공의 선발에도 자교, 타교 구분이 없음을 방증한다. 순혈주의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명제다.
"역동적이고 활기찬 의국 분위기 매료"
"공정하고 수평적인 업무 분배 합리적"
"젊은세대들도 틀림 아닌 다름 인정하는 분위기 필요"
Q. 젊은세대들은 수련기관 선택에 어떤 부분을 가장 중시하나
곽동윤 : 전공과목이다. 물론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전공과목을 염두하고 수련기관을 선택한다는 친구들이 적잖다. 이미 의과대학 진학 당시부터 마음에 둔 전공과목이 있고, 그 과목의 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진 수련기관을 우선 선호한다.
신우섭 : 곽 선생 말에 동의한다. 본인의 수련이력은 평생 남는 기록인 만큼 수련기관 선택에 중요한 기준일 수 밖에 없다. 조금은 힘겹고 지리적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전공과목에 강점이 있는 수련기관을 선택하려는 생각들이 지배적이다.
Q. 기피과 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
신우섭 : 그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동족방뇨(凍足放尿)식 접근이 이뤄지다 보니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전공의들에게 지원금 일부를 준다고 지원할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곽동윤 : 삶의 질 문제다. 더욱이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을 중시하는 MZ세대들에게는 더 크게 느껴진다. 일률적으로 선발해 진로 선택의 기회를 부여하는 작금의 방식이 아닌 선발 당시부터 진로를 선택하는 방식으로의 대전환은 어떨지 생각해 봤다.
민영주 교육부원장 : 기피과 문제는 해결책 찾기가 쉽지 않다. 해당 과목에 대한 국가적 지원 확대를 통해 삶의 질이 보장되는 구조의 시동을 걸고, 의과대학에서는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필수의료에 대한 인식 전환을 시켜주는 복합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Q. 상호에게 당부나 바람이 있다면
민영주 교육부원장 : 수련기간의 소중함을 절감하길 바란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들인 만큼 최대한 많이, 그리고 열심히 배우길 바란다. 병원 입장에서도 전공의들이 근로자가 아닌 피교육자로서 수련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다.
신우섭 : 시대가, 그리고 세대가 변하고 있음을 인정해 주시길 바란다. 마냥 편하게 수련받겠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틀림이 아닌 다름의 간극을 인정하고 이해해 주신다면 수련에 더 정진하고 사제지간의 정을 더 돈독하게 쌓아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곽동윤 : 기성세대와 젊은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MZ세대들이 편함만 추구하고 일과 배움에 대한 열정이 없다고 속단하지는 말아주셨으면 한다. 열정은 결코 ‘요구’에서 발현되지 않는다. 열정에 대한 ‘욕구’를 일깨워 주시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