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피해자는 환자들. 모두가 책임감 가져야"
갑작스러운 낙마사고로 한쪽 눈을 실명(失明)해 '윙크 의사'로 불리는 서연주 소화기내과 전문의는 최근 데일리메디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여의도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전임의였던 2022년 11월 승마 도중 사고를 당해 눈을 다쳤다. 1년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총 7번의 수술을 받을 정도로 큰 사고였다.
의사에서 환자가 돼 5년 간 근무하던 병원에 응급환자로 입원하는 경험을 겪으며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술회했다.
서연주 전문의는 "병원은 일터이자 쉼터였다. 환자가 돼서도 병실에서 먹고 자고 치료를 받으면서 생존을 위해 싸웠다. 같은 공간이지만 너무 다르게 느껴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환자가 돼 병원을 보니 환자와 의사 감정 거리가 너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 오해가 쌓일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신뢰가 깨지면서 결국 의사집단이 힘을 받지 못하게 된 것 같다.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환자는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데 서로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최근 1년 반 동안 의사보다 환자로 지낸 시간이 더 많았다며 그간 느꼈던 감정들을 털어놨다.
그는 "환자가 되어 보니 불안감이 많았는데 의사 선생님의 말 한 마디가 가장 큰 도움이 됐다"며 "현재 진료환경에서는 환자와 얘기 나눌 시간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의대 증원보다 필수의료 유인책 마련이 절실"
환자가 돼 느낀 생각은 그의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2년 간의 소화기내과 펠로우 과정이 끝날 무렵 정부의 갑작스러운 2000명 의대 증원 발표가 있었고, 이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단체로 사직하며 의료공백 사태가 불거졌다.
당시 추가 수술 후 병가 휴직 중이던 그는 고민 끝에 병원으로 돌아갔다. 지난 2020년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으로 의료계 파업을 선도했던 그가 이번에는 병원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그는 "수술한 지 한 달도 안 됐을 시점이라서 건강이 좋지는 않았지만 정부와 의료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고민 끝에 마음이 편한 길을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복귀를 결정했다"며 "정년을 넘긴 교수님들이 당직을 서고, 전공의 업무를 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고 덧붙였다.
특히 "전공의들이 미래를 걸고 투쟁하는 상황에서 병원 복귀가 맞는지 고민이 많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비슷한 선택을 할 것 같다"며 "다만 무엇이 맞는 선택인지 아직도 판단이 어렵다"고 전했다.
서연주 전문의는 환자를 돌보기 위해 복귀를 결정했지만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 정책에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는 "바이탈을 다루는 의사들이 더 많이 확보돼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의대 증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숫자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가장 쉽고 돈이 들지 않는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이고, 의료진은 현장 분위기나 처우를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작정 의대 정원을 늘리기 보다는 필수의료 유인책 마련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저출생과 초고령화로 의료비는 계속 증가하고 건보 재정은 바닥나고 있다"며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필수의료로 젊은세대를 끌어들일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공백 사태 속 병원에 복귀했는데 이유는 '환자 피해' 없도록 하기 위해"
서연주 전문의는 지난달 7번째 수술을 마치고 회복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응급 의료센터 내과전담의와 우리베스트내과 소화기내과 원장으로 복귀했다.
의사와 환자 처우에 집중하기 위해 본래 자리로 복귀해서 환자들을 살피기로 한 것이다.
그는 "의사는 환자를 봐야 하고, 환자는 피해자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복귀를 결정했다"며 "환자 중심으로 생각했다면 이번 사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사태 최대 피해자는 환자다. 이에 대해 모든 사람이 부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저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서 교수는 특히 "환자들이 겪고 있는 불편에 대해 매 순간 느끼고 있다. 입원이 불가능한 상황을 환자에게 전달할 때 상당히 미안하고 자괴감이 든다.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면 조율 없이 갑작스럽게 의대 증원 정책을 내지 못했을 것이고, 감정적으로 치달아 장기적으로 문제를 끌고 가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갈등 상황에 대한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병원들은 폐업 직전이고, 의료진은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다"며 "그럼에도 정부는 무조건을 외친다. 과연 옳은 방향인지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해결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국민 입장에서 생각하고 좀 더 전략적인 정책을 펼쳤으면 좋겠다. 정부와 의사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얘기를 할 수 있는 창구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