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
수첩] 제약·바이오 업종은 유독 '정보 비대칭'이 큰 산업이다.
'정보 비대칭'은 시장에서 쌍방이 보유한 정보에 차이가 있는 현상을 의미한다. 상대적으로 정보가 많은 쪽을 정보 우위, 반대는 열위에 있다고 한다.
제약·바이오기업의 임상 결과, 기술이전 계약 등에 관한 정보가 워낙 전문적이고 폐쇄성이 강해 투자자들은 늘 경영진에 비해 정보 열위에 놓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정보의 진입장벽을 조금 낮추고, 투명성을 높여 투자자들 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한 안전장치 중 하나가 '공시(公示)'제도다.
사업 내용이나 재무 상황, 영업 실적 등 기업 정보를 이해관계자들에게 알려 투자자가 투자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공정한 주식 가격 및 거래 형성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일부 제약·바이오기업들은 임상 실패, 기술수출 반환 등에 관한 정보를 늦게 알리거나 악재 소식을 공개하기 전(前) 미리 자사주를 매각한 뒤 공시하기도 했다.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이의를 제기하자 금융당국이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공시 기준을 강화했다. 2020년 마련된 '제약·바이오 업종 기업을 위한 포괄공시 가이드라인'이 그 결과물이다. 경고의 휘슬을 분 것이다.
포괄공시는 상장법인이 의무 공시사항 외에 임상시험이나 품목허가 등 모든 중요 정보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 공시토록 한다.
하지만 포괄공시 가이드라인이 도입된 후에도 투자자를 울리는 행태는 계속 반복됐다. 최근 오스템임플란트의 횡령 사건을 비롯해 상장폐지 위기까지 간 신라젠 사태 등이 대표적이다.
주가를 띄우려는 '불량 공시',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기술이전 계약을 한 사례도 여전하다. 선계약금 대비 총계약 규모를 부풀리기도 한다.
실제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사들은 '올빼미 공시'로 질타를 받기도 했다. 제넥신은 주가 부양에 도움이 될 만한 백신 개발 정보는 장초반에 공시했다. 하지만 임상시험 포기 소식은 장 마감 직후 전했다.
가이드라인이 있음에도 부실한 공시행위가 이어지자 금융당국은 더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댔다. 한층 까다로운 포괄공시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제시한 것. 지뢰밭 같은 코스닥 시장이 대상이다.
임상시험 종료 가이드라인을 정비하고, 품목허가 범위를 명확히 했다. 기술이전 및 도입 공시도 구체화했다. 핵심 내용은 주식 가격에 영향을 미칠 정보를 구체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강력한 규제를 들이민다 하더라도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지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규제가 가진 사각지대를 찾아 감추려들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업계 내부의 자정 노력이다. 투명하고 성실한 정보 공개를 통해 스스로 신뢰도 회복에 나서야 한다.
이런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규정을 제대로 지키며 연구개발을 하는 기업과 바이오벤처들이 선의의 피해를 볼 수 있다. 연구개발에만 집중해도 자원과 인력이 부족한데 부수적인 업무 증가로 전력이 분산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K-바이오' 성장 동력이 꺼지지 않도록 산업계 내부의 자성과 변화를 위한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