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중심 의과대학 설립과 불편한 진실
한해진기자
2021.11.27 05:41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수첩] 우리나라에 ‘연구하는 의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바이오산업이 각광 받고, 디지털 헬스케어가 발전하면서 이들 영역에서의 의사 수요는 늘고 있지만 공급은 태부족이다.
 
진단기술 발전에 힘입어 같은 암종이더라도 다른 치료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연구들이 잇따르고 있다. 술기 또한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어 끊임없는 연구 없이는 의료현장의 발전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사과학자를 희망하는 의사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에 최근에는 포스텍(포항공과대학교)이나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에서 공학 기반 의과대학을 설립, 연구 중심의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교육위원회 김병욱 의원(국민의힘)이 연구중심 의대를 설립해 바이오산업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의사과학자 양성에 공과대학과 의과대학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포스텍의 경우 생명공학연구센터, 포항 테크노파트 첨단바이오융합센터 등 바이오산업 관련 연구에 요구되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카이스트 또한 기업 및 의료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첨단의료기술 제품화에 앞장서는 중이다. ‘카이스트 출신’ 디지털 헬스케어 CEO들도 활발한 활동을 보인다.
 
그러나 의사과학자 양성은 좋은 인프라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 입장에서 의사과학자는 ‘양질의 재원’이지만 의사 개인에게는 여러 진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국내 연구하는 의사의 진로 전망을 살펴야 한다.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각종 정부 부처에서 의료산업에 투자하는 지원금액은 어마어마하지만, 단기적 성과를 내야 하는 게 대부분이다. 임상의사에게 진료가 아닌 연구를 주문하려면 그만한 유인책이 필요하다.
 
과연 현재 우리나라 환경에서 연구만 하는 의사가 연구비 수주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자신의 연구실 소속 연구원들에게 책상 없어질 걱정하지 말고 연구만 해도 된다고 독려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와 관련, 서울의대에서 융합형의사과학자 양성사업 책임을 맡고 있는 김종일 서울의대 생화학 교수는 “의생명과학 연구에 참여하는 연구진의 대부분이 비의사출신 혹은 임상수련이 부족한 의대 출신 연구자다. 충분한 수련과 연구 모두를 만족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미국은 우수한 의사 양성을 위해 미국국립보건원이 직접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매년 전체 의대생의 4% 가량이 MD-PHD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등 정부 지원에 따라 많은 인재가 뛰어드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지원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정책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연구중심의대’가 ‘연구중심의사’를 양성한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의사면허를 받은 의사들에게 강제로 진료를 금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실제로 금년도 국정감사 당시 교육부 신익현 고등교육정책관은 “의과학자 양성을 융합형으로 진행하는 것은 의사 정원 문제와 연결돼 있다”고 밝혔다.
 
결국 현재 의사과학자 장려책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또 다른 의대를 설립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최근 경기과학고는 설립 취지와 달리 의대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늘자 이들의 장학금을 전액 회수한 바 있다. 학생들이 의사과학자가 된다는 보장이 있다면 학교도 장학금을 회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봤다.
 
의대가 임상의사 길을 택하는 졸업생들에게 행정처분을 내릴 강제력이 부여되지 않는 이상, 현 시점에서 연구중심 의대라는 모델은 보다 현실적 상황 기반하에 정부와 설립 대학은 물론 의료계의 삼각협력이 잘 이뤄질 때 성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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