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현실에서 묵묵히 환자에 헌신하는 외과 의사들 존경”
박대진 데일리메디 취재부장
2021.07.20 15:12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먹먹했다. 그동안 다룬 기사가 부지기수였다. 때문에 어림 짐작은 했다. 하지만 막상 맞닥뜨린 상황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생명을 살리는 필수과이지만 누구도 가려하지 않는 기피과. 대한민국 외과의 암울한 상황은 현장을 비로소 직접 목도하고서야 절감할 수 있었다.
 
공직자들의 ‘탁상행정’을 신날하게 비판만 했지 정작 책상머리에서 자판기를 두드리며 각종 부조리와 불합리를 읊어대는 ‘탁상보도’에 젖어 있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세계적 수준의 술기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처우에 지원자까지 줄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외과. 그럼에도 지역에서 수 십년 동안 묵묵하게 ‘수술’ 외길을 걷고 있는 병원들.
 
데일리메디가 대한외과학회와 공동으로 기획한 ‘대한민국 필수의료 책임지는 지방 외과병원을 가다’ 프로젝트는 바로 그 병원들의 분투(奮鬪)를 세상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면 많은 외과병원들이 ‘술기’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조성하는 울림의 시작이기를 기대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숭고한 행보에 아낌없는 박수를!!
 
그 첫 번째 행선지는 경남 진주에 소재한 진주제일병원이었다.
 
무려 반세기가 넘는 세월 한 자리에서 지역민의 건강을 지켜온 이 병원은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외과수술의 메카’로 칭송이 자자했다.
 
설립자인 정회교 대표원장에 이어 아들인 정의철 병원장이 이끌고 있는 진주제일병원은 환자뿐만 아니라 외과의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그렇다고 윤택한 삶이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진주제일병원 의사의 삶은 고행(苦行) 그 자체다. 야간당직 후 진료를 보는 게 일상이고, 새벽에도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서야 한다.
 
그럼에도 외과의사들은 이 병원 멤버가 되기 위해 기나긴 대기도 기꺼이 감수했다. ‘칼잡이의 진정한 자존감을 지켜주는 병원 문화’가 결정적 요인이었다.
 
두 번째 행선지는 메디시티 대구에 소재한 구병원이었다. 대장·항문 분야에서 이미 전국구 병원으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었다.
 
특히 ‘구병원 방식(Goo’s Methods)’라는 독특한 수술기법은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세계 각국 의료진이 배우러 올 정도로 위상이 대단했다.
 
최신 술기 습득을 위한 외과의사 해외 학술대회 지원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술기 발전이 빠르게 이뤄지는 만큼 새로운 수술법을 계속 접해야 한다는 구자일 병원장의 소신이었다.
 
밤바다의 낭만이 넘실대는 전라남도 여수의 기억도 또렷하다. 외과의사 형제가 나란히 종합병원을 운영하며 지역의 필수의료를 사수하는 모습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들 4명은 의사, 딸 3명은 약사로 7남매 모두를 의·약사로 키운 故 정명민 선생의 교육철학과 선친의 뜻을 이어 지역 응급환자들의 생명을 사수하는 형제의 얘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큰아들 정웅길 원장이 운영하는 여천전남병원은 개원 이래 단 한번도 응급실 불이 꺼지지 않았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응급 콜을 받고 병원으로 뛰어오는 그의 열정은 경의로웠다.
 
큰형과 둘째형에 이어 여수전남병원을 이끌고 있는 정종길 원장 역시 뼛속까지 ‘칼잡이’였다. 그 어느 수식어 보다 ‘수술 잘하는 병원’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그였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한사랑병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외과전문병원’이었다. 이천환 병원장을 비롯해 13명의 외과의사가 24시간 상주하며 지역의 필수의료를 사수하고 있었다.
 
한사랑병원은 2015년 이후 3회 연속 보건복지부로부터 ‘외과전문병원’으로 지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외과전문병원’은 전국에 2곳 밖에 없다.
 
특히 개원과 동시에 설립한 의료법인 이름을 ‘Surgeon’에서 착안한 ‘서전의료재단’으로 지었다는 설명에 외과의사의 자부심과 자존감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입원환자 구성비율 등을 이유로 부득이 응급실을 폐쇄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에서는 안타까움과 울분이 동시에 몰려왔다.
 
외과 중흥의 역사, 마중물 기원
 
각자의 지역에서 숭고한 행보를 이어왔지만 이들 병원 공히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진중한 물음표를 던졌다.
 
주변에 야간이나 휴일에도 24시간 응급수술이 가능한 곳이 없다보니 이들 병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지만 수술을 할수록, 응급실을 운영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는 서글픈 고민이다.
 
사실 현행 제도 하에서 공휴일이나 야간 응급수술은 ‘적자’가 불가피하다. 나름의 가산수가가 적용되지만 현실과는 확연하게 동떨어진 수준이다.
 
마진이 적은 수술로 어렵사리 발생시킨 수익을 고스란히 응급실 운영에 재투입하고 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하석상대(下石上臺)’ 형국인 셈이다.
 
“우리 모두 정상이 아니다”라는 이들 병원 의사들의 자조섞인 농담의 무게는 천근, 아니 만근을 넘기고도 남음이었다.
 
뻔한 적자 구조를 의료진의 희생으로 메꾸는 서글픈 구조에서 외과의사라는 사명감 하나로 그 상황을 견디고 있는 그들은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원장들과 외과의사들은 ‘앞으로도 지금의 생활을 고수하겠냐’는 질문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과거 외과의사들은 자부심과 사명감, 의업(醫業)을 그저 돈벌이로 여기지 않는 숭고한 이상을 품고 환자를 만났다. 때문에 가장 실력 있는 인재들이 외과로 몰렸다. 
 
하지만 작금의 외과 위상은 참담한 수준이다. 힘들고, 돈 안 되고, 의료분쟁 많은 ‘3D’과로 전락했다. 수 년째 반복되는 전공의 미달 사태는 그 심각성의 방증이다.
 
올해 초 대한외과학회와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할 당시만 하더라도 병원 선별작업에 대한 고민이 적잖았다. 당연히 모수가 많을 것이라는 전제였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고민이 커졌다. ‘선별’이 아닌 ‘발굴’ 수준이었다. 지방에서 필수의료를 책임지는 외과병원을 찾는게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다.
 
결국 고심 끝에 이번 프로젝트는 4회를 끝으로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선발을 하다가 자칫 앞서 조명했던 병원들에게 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더 많은 외과병원들의 헌신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지만 과욕임을 인정해야 했다. 특히 강원, 충청 지역에는 그러한 외과병원이 없음에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척박한 대한민국 외과에 아직 감동과 희망을 전하는 병원들이 있음을 확인한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시간들이었다고 위안을 삼는다.
 
특히 이들 병원의 고귀한 울림이 제도 변화로 이어져 외과 부흥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아울러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내내 전국의 취재현장에 기꺼이 동행하며 외과병원들의 상흔을 어루만져 준 대한외과학회 이우용 이사장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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