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재활치료, 선택 아닌 필수'
김희재 과장(시흥시화병원 재활의학과)
2020.11.09 16:00 댓글쓰기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끼리 언성을 높이던 중 별안간 ‘억’ 하고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장면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크게 낯설지 않을 것이다. 십중팔구 급성 뇌졸중이 그 원인이 아니었을까 한다.

뇌졸중은 흔히 ‘중풍’ 이라 불리고 뇌혈관의 병적 이상으로 인해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과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로 나눌 수 있다. 발병 위치에 따라 운동, 감각, 언어, 인지, 삼킴, 배뇨, 배변장애뿐만 아니라 통증과 우울증까지 동반된다.

이 중 마비 증상으로 인한 운동장애는 환자를 경제적 빈곤상태로 빠뜨리고 사회적 고립상태로 이끄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에서 10년간 뇌졸중 환자 4만 9726명을 대상으로 추적 관찰한 결과 소득 저하 환자는 10명 중 1명꼴로 (4546명, 9%) 그 중 다수가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으로 떨어졌다.(3697명, 81%)

또한 한국뇌졸중재활코호트연구단(KOSCO) 발표에서 뇌졸중 발병 전과 비교하여 발병 3개월 후 직업이 있는 환자 비율은 약 50% 감소하였고 3명 중 1명의 환자가 발병 2년 뒤 독립적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이처럼 뇌졸중은 장애라는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남겨 여생을 괴롭히는 잔인한 병이다.


재활치료는 손상된 기능의 회복을 촉진하고 합병증을 예방하여 뇌졸중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번 손상된 뇌 조직 자체의 재생은 어렵지만 인접 또는 원거리 조직의 재배치를 통해 뇌 안에 새로운 연결망을 만들어 소실된 기능을 보상하는데 이를 뇌의 ‘신경 가소성’ 이라 한다. 기능 회복의 핵심 요소로 재활치료는 이를 증진시키는데 집중한다.


뇌졸중 환자의 재활치료에도 신경회복과 기능호전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골든타임’ 이 있다. 초기 기능 손상 정도와 장애 부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운동 기능은 발병 후 3개월까지 빠르게 회복되고 3~6개월까지 그 보다 더딘 호전을 보인다.

이후에는 미미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이 시기에 집중적 재활치료 여부가 향후 환자의 운동 기능 회복의 성패를 좌우한다. 물론 6개월 이후에도 환자의 노력과 적절한 재활치료를 통해 기능 회복이 가능하나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예상 회복 수준도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혹자는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재활치료 없이 보호자가 환자의 마비된 팔, 다리를 열심히 마사지하고 움직여 주면 되지 않을까? 물론 환자-보호자 간 유대감 향상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 운동 기능 회복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피아노 연주를 잘하고 싶다면 악보에 맞게 건반 위 손가락 움직임을 부단히 연습해야 한다. 단순히 손을 주무르고 쥐었다 펴는 동작의 반복만으로 능숙한 연주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운동 기능의 회복은 그에 맞는 특이적 과제의 반복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마비 측으로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숟가락, 젓가락 사용법을 익히고 선반에 캔을 꺼내기 위해서는 어떤 높이로 팔을 뻗어 캔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어떤 형태로 잡을지에 대한 연습을 해야 한다. 즉 구체적이고 목적이 있는 반복 훈련이 운동 기능을 호전시키는 것이다. 체계적 재활치료가 필요한 이유가 이러한 것이다.


현재 뇌졸중 재활치료는 신경학적 안정이 확인되면 가능한 빠른 시간 내 시작된다. 의료진과 함께 운동치료, 작업치료, 인지치료, 언어치료 등 각 분야 전문가들에 의한 포괄적 팀 접근방식으로 치료가 이루어지고 상호 피드백을 통해 수정과 보완을 지속해 나간다.

또한 반복적 경두개 자기자극술을 비롯해 로봇보조보행훈련, 가상현실(VR) 등 최신 기술을 도입하여 기존 치료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고생 끝에 낙(樂)이 온다’라는 속담이 있다. 말 그대로 고된 일을 견뎌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고생 끝에 또 다른 고생이 오는 일이 허다하다. 뇌졸중을 극복, 어렵게 생존한 환자에게 남겨진 장애는 그와 가족들에게 모진 시련의 시작일 수 있다.

재활의학은 환자의 육체적 문제를 넘어 인간적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환자의 장애를 최소화하고 최대 기능적 회복을 유도하여 조기에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 집중적 치료를 진행한다.

여기에 환자 치료에 대한 의지와 가족들의 헌신적 노력이 더해진다면 분명 뇌졸중 이후 삶에 낙(樂)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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