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결과적으로 의학전문대학원 정책은 실패했고 거의 모든 의전원이 의과대학으로 회귀했다. 엄청난 국가재정 낭비는 물론 사회적으로 적잖은 손실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정책을 만든 사람들 가운데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정치인이고 정부는 의전원 정책 중단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를 표명해야 한다.
최근에 다시금 이런 악몽(惡夢)이 재현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표(票)를 의식해서 의과대학을 지역마다 세우겠다고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는 속된 말로 ‘돌팔이 의사’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자명하다.
왜냐하면 부실한 의과대학 설립 후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시골이라는 표현이 좀 과하지만 지방에 의대 부속병원을 만들어봤자 환자들이 찾지 않을 확률이 높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서든지 2시간 이내에 서울에 올 수 있을 정도로 교통편이 잘돼 있다. 또한 대형병원과 훌륭한 의료진들은 거의 서울에 편중돼 있는 실정이다. 환자들이 몇개월, 심지어 1년이 넘어도 서울 대형병원 의사들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방대학병원이나 신설 병원에는 환자가 적다보니 의과대학생은 물론 수련이 핵심인 전공의들이 배울 것이 별로 없다. 실제로 가장 최근에 지방에 있던 모(某) 의과대학이 학생 교육과 수련 부재 등으로 없어졌다. 폐교 과정에서 적잖은 내홍과 사회적 비용을 감내해야만 했지만 이 역시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력 있는 의사 양성 위해서는 우수한 의대 교수진과 다양한 환자 찾는 수련병원 필수"
실력 있고 옳바른 의사를 키우려면 우수한 교수진과 다양한 경험을 해 볼수 있는 환자가 기본적으로 전제돼야 한다.
일반인들은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의사는 의과대학, 즉 학부 졸업이 중요한 게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졸업 후 병원 수련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실력있는 교수 밑에서 체계적으로 잘 배워야만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수련교육이 중요하고 서울 대형병원으로 지방 의과대학 톱 학생들이 대거 몰리는 이유도 그중 하나다.
무턱대고 의과대학 졸업생만 늘리다가는 구소련연방국가(CIS) 국가들처럼 될 수 있다.
필자의 경험을 소개하겠다. 1995년부터 구(舊 )소련연방 국가에서 10여 년 의료봉사를 했다. 헌데 그곳에서 의과대학을 1등으로 졸업한 사람이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것을 봤다. 그는 환자를 본 적이 없어서 의학용어나 좀 알고 있을 뿐 임상에 관해서는 너무나도 무지했다. 극단적 사례일지 모르지만 그만큼 의대에 있어서는 교육과 수련이 중요하다.
근래 정부와 여당이 공공의대를 포함 의과대학생을 늘려서 의사가 부족한 지방에 의무 배치토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근시안적 전시행정의 대표적 사례다. 이 정책이 잘못하다가 우리나라도 구소련연방처럼 될 것 같아서 펜을 들었다.
산부인과·외과·흉부외과 등 존립 위태···전공의 등 젊은의사들 왜 지원 안할까?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산부인과, 외과, 흉부외과 등의 분야는 전공의를 구하기가 힘들다. 최근에만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아청소년과나 이비인후과 수십 군데가 폐업을 했다. 외과 계통은 전공의가 부족해 서울 유명 대학병원에서 조차 의사보조인력(PA)을 채용, 수술이나 환자진료 보조원으로 근무토록 하고 있다.
지방대학병원의 일반외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등은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많다. 여기에 업무 강도는 물론 일도 많은데 의료수가 낮으니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정부와 여당은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지방에 의사가 부족하니 의과대학생을 많이 뽑아 의무적으로 배치하면 된다는 단편적 생각으로 밀어 부치고 있다. 하지만 근본 원인을 살펴보면 잘못된 의료보험제도와 저비용 의료수가가 꼽힌다. 이런 원인을 처방, 해결하지 않고 단순 인력증원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니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것이다.
북한군 병사 수술을 담당했던 유명한 아주대병원 외과 이국종 교수가 언급한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자기가 수술을 많이 하면 할수록 병원은 손해가 나는 구조라고···.” 대한민국 의료, 병원 현실이 이러하니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성형외과나 피부과에 지원자가 많다.
어떻게 '인명은 재천'이라는데 사람 분만이 개 분만비보다도 싸단 말인가. 정말 사람이 개보다 못하다는 말이 나오는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내과에서 수액이나 항생제 등 정맥주사를 하면 주사 행위료만 몇 천원 받는게 현 실정이다. 주사제는 원가에 사서 원가에 주라는 식이다. 병원은 원가에 덧붙여 이윤을 남길 수 없는 구조다.
게다가 밤을 새우고, 또 분만하다가 의료사고라도 나면 전부 의사 책임이다. 일반외과에서 맹장염 수술을 받으면 병원은 적자라서 안하는 편이 더 낫다고 한다. 과연 이런 부분이 의과대학생을 늘려서 해결이 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매번 OECD 평균 의사 수와 우리나라 실정을 비교, 발표 한다. 미국은 워낙 큰 나라여서 국토 면적 대비하면 아마도 우리나라가 의사 수가 제일 많을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서양의학 교육을 받지 않은 한의사들에게 의사면허를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필자도 의과대학에서 31년간 근무했고, 미국 연수도 다녀왔고, 매년 유럽과 미국 등을 포함해 세계학회에 참석하여 논문도 발표하고 다양한 초록도 리뷰한다. 그런데도 아직도 부족한게 많다고 느끼고 있다. 정말 제대로 된 의사를 교육시키고 육성할려면 비행기 조종사 키우는 것 보다도 훨씬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 그 과정 역시 힘들다.
제대로 된 교육과 수련을 받지 못하는 실력 없는 의사들을 양산한다고 해도 결국 환자들과 국민만 손해보게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의대 증원 및 의사 수 확대 같은 정책은 전문가인 의료인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가장 효율적이고 모두 상생(相生)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당정청이 무조건 법을 만들어놓고 따르라는 식으로는 절대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