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고재우 기자/
수첩] 미국의 코닥사가 필름 그자체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흑백사진을 좋아하는 일부 애호가들에게나 쓰이는 사진용 필름이지만, 지난 2001년 사상 최고 필름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최전성기를 누렸다. 불과 20년 전이다.
이렇듯 기술 발달은 돌이킬 수 없는 ‘사회의 변화’를 노정한다. 기술의 변화 자체를 전 세계가 나서서 막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기술 변화를 선도 혹은 받아들일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이를 거부할 것인지 등이다. 단 후자를 택했던 코닥을 비롯한 ‘최강자’들은 과거의 영광 속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원격의료에 대한 지난한 논쟁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난 2월 복지부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전화상담을 통한 처방을 허용했는데, 2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12일까지 전체 전화상담과 처방이 이뤄진 횟수는 총 10만 3998건이었다.
진료금액은 12억 8812만 7000원이었고, 참여한 의료기관은 3072개(의원 2231개, 병원 275개, 종합병원 109개, 상급종합병원 14개) 등이었다.
어느새 원격의료는 우리의 일상이 됐다. 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는 의미다.
정부 의지도 뚜렷해졌다.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비대면 의료서비스 등을 적극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압승으로 원격의료 드라이브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를 비롯해 문재인 대통령의 비대면 의료 육성 방침 천명, 그리고 여당의 4.15 총선 압승 등이 원격의료 판을 깔아준 셈이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을 중심으로 한 의료계, 특히 개원가 중심의 대응은 여전히 완고하다. 초지일관 반대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감염병 사태에서 떠밀리듯 전화상담을 통한 처방 시행을 바라보기만 했는데, 해당 사태가 종결되면 회귀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모양새다. 그러면서 원격의료 불가 이유로 ‘대면의료 원칙’,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쏠림과 이로 인한 의료전달체계 붕괴 우려’ 등을 내세우고 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지난 4월13일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코로나19 상황에서 전화 진료가 일시적으로 허용됐는데 의협은 원칙적으로 원격진료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개원가·병원·의료기관 등 상황에 따라 개별 판단에 맡겼다”며 “코로나19 비상사태에 처했다고 해서 원격의료에 대한 입장이 변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원격의료 논란이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기술 발전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진행되는데 반대 논리는 여전히 과거에만 머무르고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원격의료 시대를 염두에 두고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의료계 인사는 “정부가 강하게 원격진료를 밀어붙일 것으로 보여 정식 도입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원격진료로 인한 의료사고 시 의료진 손해배상 책임, 1차 의료 위주의 원격진료 등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계 최고라는 우리나라 의료가 다시 발전과 회귀 사이에 놓여 있다. 상기해야 할 사실은 우리나라 선택과는 관계없이 원격의료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대세가 됐다는 점이다.
22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원격의료시장 규모는 305억 달러(37조 5000억원)였고, 이중 중국 39억 달러(4조 8000억원)·일본 2억달러(2460억원) 등으로 추정했다. 세계 원격의료 시장 연평균 성장률도 14.7%(2015~2021년)에 달한다고 했다.
원격의료를 선도할 것인지, 아니면 과거에 머물러 잊혀질 것인지는 오늘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