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기자/수첩] 전례 없는 감염병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나라 의료진에 대한 국민들의 자부심과 신뢰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혼신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을 격려하기 위해 시작된 ‘덕분에 챌린지’에는 정치인과 연예인, 회사원과 군인 장병, 운동선수와 학생 등 온국민이 나서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료진 여러분의 헌신에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며 캠페인에 동참했다.
한 번 착용하면 몇 시간 동안 식사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가는 레벨D 보호복을 입고 현장에 나선 의료진의 모습은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감염병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의사가 무서워해서 되겠냐”고 답하는 듬직한 모습은 불안감에 찬 마음에 위안이 됐다.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드라이브스루 검사소에는 지난 2월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의료진이 자리를 지켰다. 인력이 부족할 것이란 우려와 달리 많은 의료진이 지원해 무사히 검사가 이뤄졌다.
미처 조명되지 않은 고충도 많다.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한 대구 지역 개원의들은 본업을 잠시 뒤로 하고 밤새 대책회의에 나섰다.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의 베테랑 의사들은 수 십년 간 몸담고 있던 진료과를 잠시 떠나 호흡기질환인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팀원’이 돼 발로 뛰었다.
대규모·치명적인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강화된 내원절차에 따라 일일이 환자들을 확인하며 평소 보다 배가 넘는 업무를 소화했다.
'마스크 대란' 사태에서는 약사들이 분투했다. 마스크 5부제 시행 후 매일 아침 일찍 약국 문을 열고 본업을 제쳐둔 채 수 백명의 시민들에게 마스크를 판매했다.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껴 공적마스크 판매중단을 고민했던 한 약사는 "내 몸이 망가질까봐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스크가 없이 불안감을 느끼는 시민들을 보고 '한번 해 보자'라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전했다.
물심양면으로 국민건강을 위해 몸을 던지는 의료진의 모습에 국민들은 진심 어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의료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의료진을 ‘기득권’이라고 칭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던 이들도 기꺼이 박수를 보냈다.
과잉진료, 의료과실 등 멀어지고 있던 국민과 의료진이 다시 가까워지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국민과 의료진의 화합의 계기가 된 코로나19.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를 계기로 의료진과 환자의 신뢰관계가 금이 가는 일이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
코로나19 사태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술 마케팅’이 대표적이다.
실제 경기도 A의원에서는 '자가면역 강화를 위해 호르몬주사 또는 100배 이상 농도의 면역력 강화 비타민이 필요한 때'라며 마치 해당 주사가 코로나19 예방과 치료에 특효가 있는 것처럼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 소재 B한의원은 ‘코로나 바이러스 면역강화 주사치료’라는 내용으로 바이러스는 물론 암세포까지 치료할 수 있다는 광고를 내걸었다.
일부 의료기관의 이 같은 무분별한 홍보에 네티즌은 “건강수호를 가장 우선시한다는 사명감을 내던지고 돈과 수익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윤리의식을 저버린 의료인들의 ‘불편한’ 소식은 이 뿐만 아니다. 최근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한 교수가 교통사고로 실려 온 환자의 사망 장면 등을 유튜브에 올려 논란이 일었다.
그는 “교육목적의 영상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정작 당사자와 보호자 동의 없이 영상을 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성희롱·비방 논란도 불거졌다.
한 의사 전용 커뮤니티에서는 환자, 간호사, 제약회사 여성 영업사원 등에 대한 성희롱 글이 무분별하게 올라온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이 분노했다.
“의사들은 원래 이런 이미지였다”는 반응 속에서 ‘백의(白衣)의 영웅’으로 찬사 받던 의료진들 노고가 상쇄되는 게 아는지 우려가 앞선다.
코로나19 사태에서 헌신한 의료진 덕분에 모처럼 돈독해진 국민-의료인 관계에 또 다시 금이 가고 있는 안타까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의료가 이뤄지기 위해 국민과 의료진 간 신뢰 형성이 중요하다. 고단한 감염병 사태에서 분투한 의료진들이 쌓아올린 믿음이 순간에 무너지지 않도록 의료인 개개인의 윤리의식이 더욱 강조되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