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새로운 임무 하나가 추가됐다. 그것은 바로 ‘시장질서 확립’이다.
식약처가 경제부처도 아닌데 어떤 연유로 이 문제 해결에 동참하게 된 걸까. 사연인 즉, 의약외품으로 분류된 '마스크' 안전관리 업무가 '코로나19 사태'로 급반전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국내로 유입돼 1월말~2월초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대구 신천지 교인들의 예배활동으로 다시 급증해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전국 마스크 수요도 덩달아 급증했다.
그러나 국내 마스크 공급량은 적잖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 업체들의 1일 생산량은 1200만장으로, 이중 일부는 해외에 수출되고 있다. 외국 수출분을 제외하더라도 상당한 양인데, 매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 원인을 살펴보니 유통단계에서 마스크를 빼돌리거나 매점매석하는 사례들이 포착됐다. 이에 식약처는 공정위·국세청 등 관계부처들과 TF를 꾸려 '물가안정에 관한 법'에 근거한 특별단속에 나섰다.
특별단속에는 의약외품 담당 바이오생약국 외에 여러 부서들이 동참하고 있다. 매점매석 근절을 통한 물가안정, 시장질서 확립 등이 중요한 과제임은 틀림없지만 식약처까지 현장에 투입해야 되는지 의문을 안고 말이다.
사실 식약처는 마스크 수급 안정화 외에도 국민건강 및 생명과 직결된 과제들을 산더미처럼 갖고 있다. 의약품 불순물 이슈부터 콜린알포세레이트 재평가, 제네릭 종합대책 시행 등등.
이중 의약품 불순물 이슈만 하더라도 관련 부서 인력이 모두 매달려 불철주야 처리해도 단기간에 마무리하기 어렵다. 정리가 될 만하면 비슷한듯 다른 사건들이 연이어 생겨서다.
재작년 고혈압약 성분 '발사르탄 사건'을 시작으로 지난해 위장약 성분 '라니티딘'과 당뇨약 성분 '메트포르민' 까지 모두 암 발생 가능성이 보고됐다. 물론 발암 원인은 각기 상이하다.
세 가지 사건이 완전히 수습되기도 전에 올해 초에는 비만약 성분 '로카세린'에서도 발암 가능성이 보고됐다. 쉼없이 터지는 이 같은 의약품 안전성 이슈들의 공통점은 모두 사망 위험과 관련이 있다.
병을 낫기 위해 먹은 약으로 암이 생길 수 있다고 하니 환자와 의료진 모두 충격을 받았고, 원료의약품에서 생긴 문제로 하루 아침에 수 백억원의 매출을 내던 품목을 잃은 제약사들 역시 멘붕에 빠졌다.
특히 '메트포르민'은 환자가 당뇨에 걸릴 위험이 높거나 진단을 받았을 때 복용하는 1차 약제로, 품목 수만 640개에 달한다. 이에 해당 품목 검사를 통해 암 발생 위험이 있다면 '복용 금지' 등의 결정을 빨리 내려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시작된 메트포르민 조사 결과는 2월말이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그 이유는 현재 코로나19로 식약처의 업무가 '마스크' 전담 마크(관리)로 바뀌다시피 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 식약처 관계자는 "할 일이 산더미인데 마스크 공급업체 단속, 물가안정 등 낯선 업무까지 맡으니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며 "시간을 쪼개가며 마스크 전담 마크하는 일에 거의 올인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팬더믹(세계적 대유행)'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코로나19 확산 및 예방이 최우선 과제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를 필두로 정부가 진두지휘를 하고 있고, 지자체와 의료계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식약처의 마스크 전담 마크맨 역할은 조금 축소해도 되지 않을까. 마스크 생산, 공급, 출고까지는 관리하더라도 매점매석 단속과 같은 시장질서 교란 방지 업무는 다른 전문가가 맡는 게 효과적이다.
오히려 코로나19에 맞선 식약처 역할은 속속 개발되고 있는 진단키트 신속 심사 및 허가, 국내 제약 및 바이오기업들의 신종 감염병 치료제 개발 지원 등이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 대유행을 대비해 미국 FDA, 유럽 EMA 등 규제기관들과의 채널 구축 및 해외 업체들의 백신 및 치료제 개발 현황 및 정보 공유 등과 같이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업무가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가뜩이나 적은 인력으로 돌아가는 식약처가 '마스크 전담 마크맨'으로 활약하는 게 전시행정은 아닌지 사회 전체적으로 정말 유익한지 한번쯤 고민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