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 사회가 고령사회를 지나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필자가 학생 때인 1970년대 중반에는 인구 조절에 관심이 많았던 예방의학 교수님 강의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에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등의 표어와 정관 수술, 불임 수술 등을 장려하던 시기였으니, 30년 사이에 출산과 인구 조절에 대한 개념이 많이 변하게 돼 격세지감이 든다.
초고령 암환자들을 많이 보게 되는 요즈음 수술을 견딜 정도의 건강을 잘 관리 하신 분들이 점차 많아짐을 알 수 있다.
최근에 경험한 90대 중반 환자는 변비 때문에 검사한 결과, 대장암이 에스 결장의 내강을 거의 막고 있어 증상 완화 목적으로 대장 스텐트를 삽입했다. 이후 배변을 하시게 한 뒤 약 5일 후 복강경으로 대장 절제를 하신 분이다.
수술 후 예상치 못하게 심한 장유착이 와서 장폐쇄 소견을 보였다. 식사를 못 한 상태에서 링거에 의존하니 환자가 기운을 못 차리고 계시다 수술 약 10일째 되던 날 저녁에 환자 산소 포화도가 90% 미만으로 나온다는 연락을 받고 병실로 가봤다.
환자는 약간의 호흡 곤란이 있고 복부는 팽창돼 있었다. 장 폐쇄로 토하거나 토물이 폐로 들어간 것 같지는 않지만, 고령에다 오랫동안 금식 상태여서 장내 세균이 충분히 폐렴을 유발할 위험도 있고, 또한 오랜기간 광범위한 항생제 사용은 위막성 대장염을 유발 할 수도 있어서 복잡한 상황이었다.
바로 비위관을 삽입하고 빼내니 약 10분 사이에 2천cc의 위장관액이 배액됐다. 이후 산소를 공급하여도 산소 포화도가 상승하지 않아 중환자실로 이동 후 폐렴이 병발한 것을 확인했고, 이후 기관 삽관 후 인공호흡기 치료를 시행했다.
당시 혈압이 수축기가 100mmHg였는데 이는 패혈증 쇼크였던 것 같다. 항생제 사용을 하면서 치료했는데 장관 폐쇄로 하루에 2천cc 이상 소화액이 배출되는 상황에서 치료에 많은 두려움이 있었다.
소아처럼 초고령 환자의 생리가 다르고 safety margin이 다른 상황이었다. 수액 치료 항생제 치료 등 모든 것이 조심스럽기만 했다. 이런 문제로 노년내과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노년 외과의 경험이 있는 의사가 많지 않고 체계적인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일반적인 외과 환자와 분명 다르고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호흡기 치료는 다행히 잘되고 적합한 항생제 치료로(호흡기내과 교수님의 도움) 폐렴은 잘 회복돼 일주일 만에 일반 병실로 오시게 됐다. 지나친 항생제로 장기 손상이나 대장염도 걱정이 되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링거에만 영양 공급을 의존하다 보니 환자는 계속 기운을 못 차리고 침상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 했다. 물론 경정맥 고영양 치료를 시행했지만, 지속적인 영양 불량 상태였다.
복부 전산화 단층 촬영상 심한 장유착 아니면 장 간막이 꼬인 것 같다는 판독을 받고 대중적인 치료로 해결이 안 될 것 같아 수술적 치료를 내심 계획했다. 그러나 폐 기능이 전신 마취를 견디기 어렵다는 마취과 교수 의견대로 조금 더 대증적인 치료를 계속했다. 이 와중에 원인을 모르게 응고 장애가 지속하고 혈소판이 감소해 항생제를 중단했다. 아울러 혈액내과 교수께 자문하고 정밀 검사 들어갔다.
다행히 자연 출혈 중세는 없었다. 장유착 수술적 치료를 시도하기에는 혈액 상황이 좋지 않았다. 혈액 내과에서는 초고령 환자에서 자가 면역으로 발생하는 후천성 혈우병 의심된다고 했고 정밀 검사를 의뢰했다. 혈장을 주어도 응고 장애 혈액 검사가 개선되지 않아 수술이 계속 지연 되는 상황이었다.
이때 과거 장유착으로 인해 사용, 효과를 본 처방이 문득 생각이 났다. 이 처방에 스테로이드가 포함됐다. 혈액내과에서는 정밀 검사 결과 응고 인자 5번이 결핍되고, 8번도 일부 저하 되어 치료법으로 환자의 혈장을 교환하는 치료법을 제안하고 이 치료를 한 후 바로 수술을 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이 치료를 위해서는 큰 관을 혈관에 넣어야 하고 약 3시간 이상 혈액을 빼서 혈장을 거르는 치료를 해야 하는데, 초고령 환자에게 위험이 크다고 판단해 일단 혈장치환 치료는 진행하지 않았다. 장유착 처방약을 투여한 지 약 3일 지나도 배 사진 상 장 유착으로 인한 지속적인 소장 가스 팽만이 보였다.
그러나 환자 증세가 심하지 않고 가스도 가끔 나와 미음을 먹게 했다. 치료를 같이 담당한 강사나 전공의 선생은 미음을 주는 것보다 다시 비위관을 넣는 것을 권했다. 이유는 장유착 수술을 대비해 장관을 휴식케 하고 장 감압을 하는 것이 복강경 수술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가 강하게 거부하고 나 역시 콧줄을 다시 삽입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처방약을 투여한 지 일주일 되던 날 일요일 아침이었다. 검사상 배사진이 좋아지고 혈액 상태도 개선됐다. 고민하며 생각한 처방약 즉 장유착 치료로 시도했던 약물 중 스테로이드가 장유착 치료도 영향을 줬다. 또한 자가 면역 혈액 이상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하게 됐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가 아닌가 생각했다.
환자는 빠르게 회복돼 죽 잘 드시고 배 사진에서 장 유착 소견과 가스 팽만이 사라졌다. 배변도 잘하시고 수술 후 약 40일째, 혈액 검사상 응고 장애는 없고 정상으로 돌아왔다.
문헌을 살피고 유사한 혈액 소견이 90세 이상 환자에서 잘 발견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 자가 면역 질환이어서 스테로이드가 도움이 된다는 혈액내과 교수님의 조언도 많은 도움이 됐다. 환자 회진 시 회복된 할아버지 환자와 가족을 대할 때 너무 기쁘고 감사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로 한 달 넘게 병원에서 병간호하신 가족 분께 죄송할 뿐이었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치료하면서 노년외과 경험과 지식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여러 돌발 변수에 대해 의사들의 끊임없는 치료에 대한 노력과 협동이 일석이조 효과를 거두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현대의학이 발달해 질병 치료가 잘 되고 이로 인해 인간의 귀중한 생명은 연장되고 있지만, 새로운 영역의 경험과 지식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 의사들은 더욱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