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수첩] 개나 동물이 섭취하는 구충제로 암(癌)을 극복했다는 유튜브 영상이 센세이션을 일츠키면서 사회적으로 '펜벤다졸 품귀현상'이 일어났다.
말기 암환자와 가족들이 약국이나 동물병원에서 펜벤다졸 성분이 들어 있는 약품 사재기에 나선 후 국내에서 구충제가 동이 났고, 해외 직구로 주문하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최근에는 구충제가 당뇨 치료에도 효과적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일부 당뇨환자들도 구충제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펜벤다졸이 함유돼 있는 의약품 복용을 금지한다"는 경고문을 발표했다.
구충제의 주성분인 펜벤다졸은 사람을 대상으로 효능‧효과를 평가하는 임상시험을 하지 않은 물질로, 안전성과 유효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아 부작용 발생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말기 암환자는 항암치료로 체력이 저하된 상태이므로 복용을 삼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만약 복용을 원한다면 반드시 의사, 약사 등과 상의할 것을 권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등 유관단체들도 잇따라 "펜벤다졸을 암 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식약처와 의료 전문가 단체들의 이 같은 발표에 말기 암환자들은 항의했다. 의사가 더 이상 손 쓸 수 없다고 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펜벤다졸 제품을 복용하려는데, 왜 이마저도 막느냐는 것이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는 환자들의 항변은 십분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다.
하지만 말기 암환자들의 이 같은 벼랑 끝 전술의 이유가 '생존'이라면 한번쯤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유튜브발 유사의학으로 생존을 꿈꾸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비슷한 행위다.
즉, 죽어도 그만 안 죽어도 그만이라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구충제를 복용하는 게 아니라 "꼭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구충제를 복용한다면, 정부가 환자들의 선택에 개입할 여지가 있다.
삶을 지속하는 게 목적이라면 스스로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암환자의 행동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실제 구충제 복용의 항암효과에 대한 의학적 근거가 전무하고, 환자 상태가 제각각이라 예측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 사람의 암 극복 경험담을 토대로 말기 암환자들이 구충제를 복용하는 일은 식약처 입장에서 규제할 수 밖에 없다.
말기 암환자의 의약품 접근권을 보장해줘야 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무모한 도전을 무조건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곤란할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오히려 정부와 의료계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말기 암환자에 대한 보조요법을 어디까지 허용해줘야 할지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말기 암환자의 의약품 선택권을 무조건적으로 규제할 게 아니라 어떤 기준에 의거해 제재할지 혹은 풀어줄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말기 암환자들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유통되는 '카더라~'식 정보를 맹신해 따른다기보다는 한 명이라도 효과를 본 대체요법이라면 자신도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 때문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제2, 제3의 구충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위험하다'고 경고할 게 아니라 말기 암환자들이 음지에서 복용하는 약물을 조사 및 검수해 검증하고, 관련 지침을 마련하는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