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공단 강압적 현지조사, 울분 토하는 의사들
박정연기자
2019.08.06 05:39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수첩] "10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무죄추정 원칙을 준수해야 하는 법(法)의 대원칙이다. 지난 2009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황우석 박사 논문조작' 사건 재판 직전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취재진에 전한 코멘트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의료계에서는 "1명의 죄인을 잡기 위해 100명의 억울한 의사들이 쏟아져 나올 지경"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강압적인 현지조사에 대한 불만이 근원이다.

지난 달 24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현지조사 과정에서 허락없이 서랍을 뒤져 증거자료를 확보하려 한 건보공단 직원 행위에 대해 '인권침해'라고 결론 내리고 조사 관행 개선 및 관련 지침 개정을 권고했다.

인권위 자료에 따르면 당시 조사단은 “그 직원은 왜 그렇게 나이를 먹어서 애를 낳았냐”, “여기 센터장은 부모한테 받은 재산이 많냐” 등의 부적절한 질문을 하며 고압적 자세로 조사를 진행했다.

또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현지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며 복지부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한의원 원장이 제기한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몸이 아파 출근을 하지 못하고 있던 원장은 "지금 당장 병원에 출근해 조사를 받아라"고 말하는 조사단에 "다른 날 조사를 받거나 서면으로 자료를 제출케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조사단은 "출근하지 않으면 조사 거부로 간주하고 현지조사를 종료하겠다"는 답장을 보낸 후 한 달의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변호를 맡은 현두륜 변호사는 "오래 전부터 복지부의 강압적 현지조사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됐다"며 "특히 강압적인 현지조사로 인해 의료기관 대표자의 절차적 기본권이 늘 무시돼 왔다"고 지적했다.

조사기관들도 고충을 토로한다. 막상 현지조사가 이뤄지면 비협조적인 조사인이 협조적인 조사인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일부 조사관들이 다소 호전적 언동을 하게 되는 일도 생긴다는 얘기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강압적인 현지조사가 오랫동안 문제가 되다보니 조사단 차원에서도 메뉴얼을 정확히 준수하고자 한다"며 "조사과정이 워낙 힘들다보니 일부 조사관들의 일탈행위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지조사의 문제점이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6년 안산에서 비뇨기과 개원의가 강압적인 현지조사에 못이겨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공분을 일으킨 이후 건보공단은 방문확인 표준운영 지침(SOP)을 개선하며 조사 관행을 바꾸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의료인들은 근래 현지조사 분위기가 다시 이전 상황으로 원대복귀하고 있다고 말한다. 세간에는 "현지조사 때문에 제2의 '안산 비뇨기과 개원의'가 나오겠다"는 푸념이 나오기도 한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형사사건 용의자에게도 적용되는 게 무죄추정 원칙인데, 현지조사를 받은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강력범죄 용의자보다도 더 한 취급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의료인에 대한 강압적인 현지조사'는 해묵은 관행이다. 한 개원의가 목숨을 끊고 나서야 비로소 움직이려는듯 했던 관행 제어는 시간이 지나자 다시 예전의 모습을 유지하고자 하는 현실이 목격되고 있다.

강압적 현지조사로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의사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10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비효율적인 원칙을 다시 새겨야 하는 이유다. 조사기관인 복지부와 건보공단이 소위 갑질 논란이 벌어지지 않게 적법한 절차를 준수하는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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