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동족방뇨
(凍足放尿)’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언 발등에 오줌누기
’라는 뜻으로 임시변통일 뿐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
이런 현상을 예로 든다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것는 우리의 일상사에는 그만큼 확실성이 없고 엉거주춤한 일이 많다는 사실의 반증일 것이다.
특별한 규정없이 상호 양해 속에 눈을 감고 지나쳤던 일이지만 내용을 따져 보니 그렇게 넘길 수 없는 경우임이 발견되면 어떤 누군가가 그것을 따져 나오고, 그렇게 되면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최근 의료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대표적인 일이 PA(진료보조인력) 문제다. 비의료인의 의료행위에 관한 의료법 위반과 관련된 고발 사건이다.
한 의료단체가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보조인력이 의료행위를 했거나 의료행위를 방조한 것에 대해 당국에 고발을 했다.
이로 인해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적으로 여러 상급병원들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고 있어서 의료계는 다시 한번 국민들로부터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당하는 중이다.
"비의사 의료행위 불법 맞지만 원칙 적용했을 때 대한민국 진료행위 지속 가능할지 의문"
하지만 정작 이 문제에 대해 누구도 정확한 답을 쉽게 내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의사가 아닌 자의 의료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의사들이 양보할 수도, 양보해서도 안되는 절대적 가치를 갖는다.
한편 이 원칙을 칼 같이 적용했을 때 진료행위 지속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엄격한 기준으로 수사 받을 대상이 과연 상급종합병원에만 국한될까? 등등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엄격한 적용을 했을 때 ‘의료행위가 불가능하면 진료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나’라는 대답은 정답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실을 고려한 현답(賢答)은 될 수 없다,
아울러 정답을 기준으로 고발하는 것은 그야말로 동족방뇨는 될지 몰라도 해결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의료행위는 의사만이 할 수 있다’라는 명제는 그 어떤 논리보다 법적 근거에 의한 합리적인 주장이다.
문제는 부당의료행위로부터 의권(醫權)을 지킨다는 명분과 그 해결 방법으로 선택한 고발이라는 행위는 이제 고발자가 고발을 취하해도 멈출 수 없는 횃불이 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강건너 횃불이 아니고 바로 내 발등으로 번지고 있는 불길이 됐다. 아주 쉽게 말해 의사들의 운명을 법이라는 칼날을 번뜩이는 사람들에게 통째로 내 놓은 것이다.
그들은 아주 호재를 만났다. 적 속의 내 편은 영원한 내편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권부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애증이 교차하는 가운데 존재하고 있는 우리나라 의사들은 이제 강제적으로 판을 완전히 바꿔야 될 운명이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는 틀린 말이 아니고, 누구나 그렇게 알고 있지만 과연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감히 자신할 수 없다.
국체가 지켜지지 못하는 이유를 정치권에 책임을 돌리는 사람도 있고, 재벌에 책임을 돌리는 사람도 있고, 진영 논리에 빠진 정치꾼들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인 책임은 국민들 각자에게 있다. 국민들이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선거라는 분명한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선거제도 때문에 책임 소재도 분명해진다.
"의료계 PA 문제, 결국 외부 힘에 의해 운명 맡겨지는 상황 안타까워"
"汎의료계 내부적으로 지혜 모아 해법 모색 절실"
앞에서 언급한 의료계 문제의 책임이 누구한테 있을까? 도대체 ‘진료보조인력’이라는 실체의 태생 배경부터 생각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의사들에게 우리가 진료보조인력원이 되겠다고 얘기한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눈 앞의 펼쳐지고 있는 문제들이 현실화 될 것이라고 예견된 것은 벌써 10여 년 전이다. 해방직후 대진의(代診醫) 제도 피해를 상기하면서 다양한 대책을 논의했던 기억이 필자의 머릿속에 생생하다. 무슨 일인지 그 뒤에 논의가 중단됐다.
어쨌던 진료보조인력과 연관 된 문제의 현실적 책임은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의사 모두에게 있다.
의료계 내부적으로 해결에 의지를 갖고 논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은 의지가 없어 등한시 했고,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의료계 내부의 진영 논리는 정치권을 뺌치고 있어 진정한 논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의료계 각 직역이 처하고 있는 어려움을 내 어려움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상호 쳐다보지도 않았고, 결국은 우리 운명의 결정을 남의 손에 맡겨 놓은 꼴이 돼 버렸다.
여기서 우려되는 점이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당국은 의사 역할 재정립에 나서려 할 것이고, 아마도 의사 증원을 강력히 주장할 것이다. 의사가 모자라기 때문에 진료보조인력에 의존해서 진료를 하는것 아니냐 하는 아주 단순 논리로 의료계를 압박할 것이다.
선거를 앞 둔 마당에 이 논리는 아주 강력한 힘을 받게 될 것이다. 전후좌우 사정이 어떠했던 간에 의료계 내부에서 자체 촉발된 문제를 이제 의료계 스스로가 적극 봉합해야 한다.
여기서 또 다시 옳고 그르고, 네 편, 내 편 따지면 구제 불능의 의료계가 될 뿐아니라 어떤 대안을 제시해도 동족방뇨가 될 것이다. 아주 공세적이며 현실적인 대책을 개발,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의료 전문가, 즉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 범위·정의 등 명확히 재설정 시급"
이제는 소위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 범위와 정의를 의료계 스스로가 새롭게 명시해야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국이 행정력을 동원해 강력하게 밀어부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선진국 의사들과 비교해 의료행위 독점권이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를 면밀히 따져 버릴 것은 버리고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그래야 큰 범주 속에 진료권 전체를 지킬 수 있다. 내 손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내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편협한 생각이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가운데 영역을 확대 할 줄 알아야 한다. 독점권이 너무 강하다 보니 이것의 수성이 그 무엇 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지나치게 앞서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벌어진 일을 갖고 갑론을박해서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또 다시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발 빠르게 논의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발 빠르게 그리고 의료계의 단합된 힘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매사 공염불에 그치게 될 것이며 결국 피동적인 노예 같은 괴물이 될 것이다.
언 발등에 떨어지는 오줌 방울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주 잠시 뿐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계란이 깨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병아리가 태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