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샌드박스와 소비자 직접의뢰 유전자검사 확대
김종원 교수(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2019.06.10 11:08 댓글쓰기

[특별기고] 규제 샌드박스란 새로운 기술, 제품, 서비스 등에 대해 일정한 기간을 정해 규제를 면제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에서도 현행 법률과 규제체계로는 신기술 및 신산업의 빠른 변화를 신속히 반영할 수 없다는 배경 하에 2019년 1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했다.

유전자검사와 관련한 규제 샌드박스의 경우, 소비자가 비의료기관에 직접 검사를 의뢰하는 제도인 소비자직접의뢰(direct-to-consumer, DTC) 유전자검사의 대상 항목을 질병 관련 유전자를 포함해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회를 통해 승인받는 절차가 있다. 

DTC에 포함된 유전자검사
 
기업들이 신청한 질병 관련 유전자검사 중 암 관련 검사에는 위암, 폐암, 간암, 전립선암 등이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들 검사를 어떻게 시행할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필자가 검색한 보도자료에서는 특정 질환에서 어떤 유전자를 분석해 얻어진 결과를 모아 어떻게 결과 해석을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명확하지 못하다.

의료기관들이 새로운 검사법과 같은 신의료기술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신청하는 경우 동료평가 학술지에 발표된 방법 또는 문헌을 기준으로 허가된 기기나 시약 등을 이용해 그 근거 서류를 첨부해 제출한다. 또 해당 검사의 예민도, 특이도, 정확도 및 검사 한계, 검사 유용성에 대한 정보를 제시해야 하고,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이 모든 정보를 정리 검토해 신의료기술 여부를 판정한다.
 

예를 들어 간암의 경우, 건강한 사람에서 간암 발생을 예측하는 유전자검사의 방법론이나 그 결과가 발표된 국내외 문헌을 찾을 수 없다.

우리나라 간암 환자의 경우를 보면, 유전자검사로 간암을 예측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나라 간암 환자는 B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에 기원한 간암이 압도적으로 많다. 즉, 간암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B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 여부나 항체 보유 여부가 훨씬 더 중요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같은 검사를 하지 않고 DTC 유전검사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물론 간염 환자에서 간암 발생 가능성을 유전자로 예측하는 것은 기존 연구와 문헌에도 발표돼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의료기관에서 진료하고 있는 간염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며, DTC는 정상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큰 차이가 있다.
 

어떤 회사가 발표하지 않은 그들만의 고유한 방법에 의해 간암 예측 유전검사 방법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의학 및 의료 관련 원칙과 환경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의료에서 질병 진단과 치료 방법은 상세한 관찰과 연구 결과를 동료평가 학술지에 발표하고, 의학계에서는 이를 검토하고 개선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사람 생명을 다루는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거나 검증될 수 없는 주장이나 결과가 있다면, 그것은 의료체계 내에 도입될 수 없을 것이다. 유전검사는 최신과학 성과를 바탕으로 하므로 이런 입장은 더욱 확고하다.
한국에서 근거기반의학은 의료체계 기본이다. 유전의학 분야에서 연구와 진료를 하는 의료인 입장에서 볼 때, 이들 회사가 어떻게 간암 예측 DTC 검사를 시행할 지 의문이 생기게 된다.
 

실증특례를 2년간 시행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위암이 가장 흔한데 위암 발생률은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16년 통계 기준 10만 명당 연간 59.7명이다. 위의 실증특례 2,000명을 기준으로 보면 연간 1.19명이며, 2년 동안 평균 2~3명의 발생이 예상된다.
 
하지만 단 일회성 사업의 통계적 신뢰구간을 생각하면 2,000명에서는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동일한 2016년 통계 기준으로 간암은 10만 명당 30.9명이고, 2년동안 평균 한 명이 발생할 수 있다. 전립선암은 2011년 통계 기준 남성 10만 명당 27.4명이다.

만약 대상자가 남녀 같은 수 1,000명씩이라면, 2년간 한 명도 발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실증특례 사업에서 예측검사의 정확도 평가는 거의 기대할 수 없어 보인다. 정확도 평가가 제대로 수행될 수 없는 실증특례 기간 동안에 어떤 실증 특례 데이터를 기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또 정확도 측면에서 유전자검사를 3명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국내 2개 회사와 미국 23개사(社)가 동시에 수행한 결과, 15개질환의 예측 해석에서 3개 회사가 일치하는 경우는 3개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됐다.

더불어 혈액응고억제제의 용량 조정도 3개사가 모두 서로 다른 결과를 보였다. 즉, 예측 유전자검사 결과 해석은 시행하는 회사마다 다를 가능성이 높고, 의료에서 강조되는 객관적 타당성이 이 검사들에서는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역차별에 신음하는 의료기관 분자유전검사실
 

만약 현재 DTC로 신청한 유전자 검사들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신청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실증특례가 끝나는 2년 후까지도 현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기준으로는 단 한 종목도 승인을 받지 못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만큼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자부는 “이번 실증으로 유전체 분석 서비스 활용의 문턱을 낮추어, 바이오 신시장 확대뿐만 아니라 국민건강 증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현재 유전체 분석 서비스 활용은 의료계가 할 능력도 없으면서 기업체가 수행하는 것을 방해하고 문턱을 높였을까? 유감스럽게도 그 반대다.

의료기관 분자유전검사실은 시설, 장비, 인력 등 모든 측면에서 법률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정부 부처의 감독과 규제를 받는다. 그리고 시행하는 검사에 대해서는 요양급여 등재항목에 한정한다. 그리고 그 수준은 미국 등 해외 기관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DTC를 시행하는 기업들은 항목 신청을 통해 실증특례를 받지만 시설을 비롯해 장비, 인력에 대한 제약이 없다. 의료기관의 분자유전검사실이 현재 기업들이 DTC로 하겠다는 검사가 아닌 이미 해외 의료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새로운 유전검사를 도입해 시행하기를 원해도 의료기관 검사실에만 가해지는 과도한 규제 때문에 아예 시도조차 포기하는 유전검사 항목들이 너무 많다.

시설, 장비, 인력에 대한 법률적 규제와 개별 항목에 대한 과도한 심사와 규제가 가해지는 의료기관들은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검사를 시행하지 못하고 있으나, 시설, 장비, 인력에 대한 규제가 없는 기업들은 과학적 증명이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검사임에도 수행이 허용되는 이러한 현실은 개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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