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고재우 기자/
수첩] 지난해 말 발생한 故 임세원 교수의 피습 사건은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전국적으로 임 교수에 대한 추모 물결이 일었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비자의 입원’이 사회적 화두로 다시금 부상했다.
그로부터 석달 후 국회는 비자의 입원을 골자로 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일명 임세원법을 보류했다.
정신건강복지법 관련부처와 단체에서는 ‘인권’을 이유로 들었고, 결국 기존 임세원법에서 한참 후퇴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만이 문턱을 넘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조현병 치료 병력이 있는 남성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방화와 살인으로 5명이 숨지고 15명이 부상을 당했다. 경찰은 이번 범죄가 조현병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계획범죄인지 여부를 수사 중이다.
우려되는 점은 가해자의 조현병 병력이 밝혀지면서 일반국민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공포가 일상화 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가해자가 범행동기를 두고 횡설수설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에는 '조현병'이 올랐고, 각종 커뮤니티와 블로그 등에서는 조현병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글이 다수 등장했다.
정신질환자 범죄율은 전체 범죄와 비교했을 때 미미한 수준이지만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임세원 교수 피습 등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살인’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국민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정신질환자 범죄의 경우 범행 대상이나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일반 국민은 공포에 떨고 있다.
그렇다면 국회는 일상이 된 ‘조현병포비아’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임세원 교수 피습사건이 발생할 당시만 해도 일사천리로 보였던 사법입원제는 여전히 계류 중이다.
사법입원제는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사법기관이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강제입원에 대해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고 환자의 인권 보호와 가족 및 의료인의 부담을 경감시켜 입원치료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제도다.
이미 우리나라를 제외한 OECD 대부분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다.
정신건강복지법 수정안이 법안소위에서조차 불발된 표면적인 이유는 역시 과거 비자의 입원 요건을 강화했던 ‘인권’이었다.
하지만 의료계는 환자 인권을 위해서라도 사법입원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치료와 인권은 공존할 수 있다”며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통해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 및 복지지원과 함께 재발위험이 높은 환자에 대한 의무적인 치료서비스가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윤일규 의원은 정신건강복지법 수정안에서 환자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정신질환자가 후견인을 지정하고, 후견인에 의한 비자의입원만을 인정토록 했다.
정신질환자가 정상일 때 믿을 만한 후견인을 지정해 자신에 대한 비자의 입원 여부를 맡김으로써, 정신질환자의 의사에 반하는 무분별한 강제입원을 지양하는 게 핵심이다.
윤일규 의원실 관계자는 “입법취지가 강제입원 강화가 아니라 정신질환자 인신 구금에 의한 책임을 국가가 지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사법입원제는 강제로라도 치료를 진행하느냐 혹은 인권이라는 미명 하에 환자를 방치하느냐의 언저리에 있다.
그리고 사법입원제의 도입이 늦어질수록 조현병 환자가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시간도 미뤄질 것이다. 이제는 관점을 바꿔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