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
수첩] 유한양행이 1조4000억원대 기술 수출로 '대박'을 터뜨렸다. 올해 3분기 실적이 큰 폭으로 하락하며 터져나왔던 우려를 한 방에 불식시키는 '가뭄의 단비' 같은 성과였다.
수익성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R&D 비용 증가가 꼽혔다. 유한양행은 3분기 R&D 비용으로 전년 동기보다 23% 증가한 298억원을 투입했다. 이는 내년 2분기 폐암신약 '레이저티닙' 글로벌 임상 3상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3분기 실적 발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한양행은 비소세포폐암 표적항암제 '레이저티닙'을 얀센바이오테크에 기술이전하는 내용을 담은 계약 체결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1월5일 관련 내용이 공시되자 유한양행 주가는 상한가로 직행했다. 유한양행은 물론 신약 개발을 진행 중인 한미약품, 동성제약, 한올바이오파마 등 일부 제약사들의 주가도 동반 상승했다.
이에 증권사마다 목표가를 27만원에서 35만원까지 상향 조정했다. 기술수출 계약 체결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낙관적으로 전망한 것이다.
하지만 유한양행 주가는 이틀만에 약세로 돌아섰으며, 주가 상승폭도 지난 2015년 한미약품의 대규모 기술 수출 때와 비교하면 이상하게 고요했다.
한미약품은 2015년 다국적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과 폐암 신약 '올무티닙' 기술 이전계약을 맺으면서 주가가 폭등했다. 당시 10만원 수준이었던 한미약품 주가는 그해 11월 87만원까지 오르며 8배 이상 뛰어올랐다.
단숨에 대장주로 우뚝 섰던 한미의 선전으로 제약·바이오주들이 무더기 폭등하는 장세가 연출됐다. 코스피 의약품업종 지수는 2014년 말 대비 88% 급증했다. 코스닥 제약업종 지수 역시 75% 뛰었다.
하지만 베링거인겔하임은 기술반환을 요구했고, 한미약품 역시 3상 임상 조건부로 승인됐던 올리타 개발 중단을 선언하면서 소위 '백지수표'가 자칫 '부도수표'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을 시장에 학습시켰다.
이런 학습효과가 대형 호재를 통해 도약을 앞둔 유한양행의 주가 성장 모멘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증권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물론 국내 주식시장 자체가 침체 국면에 놓여 타이밍이 좋지 못한 부분도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시장이 침체기에 있다고 하더라도 일부 제약사들은 작은 이슈에도 주가가 큰 폭으로 움직이고 있다.
대형 호재라도 '묻고 따지고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태도가 투자자들에게 싹튼 것이다. 한미약품의 경우 최초 사례여서 임팩트가 컸지만, 이번 계약은 새로운 것이 아니기에 파급력이 작을 수 밖에 없었다.
오랫만에 성사된 조(兆) 단위 기술수출 계약이 예상 외로 저평가 되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반대로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정보 공개도 활발해지면서 시장이 건전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대형 호재에도 미지근한 시장의 반응에 연연하기 보다는 레이저티닙의 임상 3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개발된 치료제의 상품성을 인정 받는다면 유한양행에 대한 가치는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정희 사장의 '뚝심 있는 R&D 투자' 행보가 흔들리지 말고 이어져 폐암환자들에게는 질병 극복의 희망을 제시하고 도입 품목 비중이 높아 매출 1위라는 타이틀에도 웃지 못했던 유한양행에는 '신약 보유 회사'라는 자신감과 자긍심을 불어넣는 기회가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