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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올해로 의사가 된지
23년이 됐지만 항상 이해할 수 없던 게 있었다
. 항상 최선을 다해 환자나 보호자들을 이해하려고 하는데 나중에 보면 내가 불친절하다고 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
거꾸로, 내가 환자나 보호자 입장이 됐을 때 의료진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성심껏 대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환자나 보호자들이 요구하는 게 너무 많은 것 같고, 반대로 환자나 보호자들은 의료진이 불친절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다반사다.
왜 그럴까? 그런 의문을 갖고 있다가 얼마 전 머리를 탁 치는 것 같은 개념을 알게 됐다.
가끔 시간이 나면 큰 서점에 가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책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책을 보는 것을 소일 삼아 하고 있는데 눈에 뜨이는 책 하나가 있었다.
진화심리학자인 로빈 던바 교수가 쓴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는 책이다.
여러분들은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트위터같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하고 있는가? 로빈 던바는 진화심리학 중에 특히 인간행동의 진화론적 특성에 주목했다.
인간의 뇌(腦)는 진화론적으로 적절한 관리가 가능한 최대 인간관계가 평균 150명에 불과하다는 소위 ‘던바의 수’를 말한 바 있다.
던바의 수는 인기가 많은 사람은 SNS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등록돼 있지만 실제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150명 정도라는 이론이다.
던바 교수는 이런 적절한 인간관계의 최대치인 150명이 고대부터 이어온 인간의 특성이며, 로마 군대도 150명 정도가 지휘관 1명의 통솔을 받는 숫자라고 설파했다.
심지어는 원시시대 마을이나 촌락도 유물을 보면 150명이 한계로, 이 숫자를 넘으면 2개의 촌락으로 분리가 된다는 점을 밝혀낸 바 있다.
최근 현대사회 군대의 한 지휘관에 편제된 대대 숫자도 150명 정도이며, 벤처 사업도 구성원 150명이 넘으면 두 개 이상의 부서로 분리가 되는 점 등 다양한 예시를 들며 ‘던바의 수’는 인간이 갖고 있는 자연스러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150명 정도는 소위 알고 지내는 지인의 범위인데, 통상 1년에 한 번정도 서로 만나는 동창회나 동호회 멤버들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150명 보다 중요한 것은 친밀집단이다. 150명에 제곱근(√150)을 한 숫자와 비슷한 12명이 친밀집단 숫자다.
이 12명은 통상 1달에 한번 정도는 만나는 사이로, 친한 친구나 가까운 친척이나 가족에 해당하며, 12명의 제곱근(√12)의 근사치인 3명 정도의 인원은 소위 한 인간의 ‘핵인싸’에 해당하는 초친밀집단이다.
같이 사는 가족이나 베스트 프렌드에 해당하는 사람이며, 힘이 들 때 서로 위로해 주는 사람들이다. 3~4명의 초친밀집단의 경우 최소 1주일에 한번은 만나는 친구사이를 생각하면 된다.
갑자기 아프고 병에 걸려 입원한 사람들은 감정적으로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힘이 든 상태일 것이다.
"의사-환자, 또는 의료진 간에 상호 조금씩 공감하며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자세 필요"
게다가 입원 후 만나는 의료진은 자기의 아픈 부분을 모두 알고 있고, 진료를 위해 가슴이나 배 등의 속살도 보여줘야 하는 만큼 일종의 초친밀집단, 혹은 친밀집단에 해당하는 인간관계라고 진화심리학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기의 약점(특정 질환에 걸렸다는 점)은 일반적으로 150명에 해당하는 지인에게도 잘 말하지 않는다는 측면은 일반적인 인간관계를 생각하면 당연할 것 같다.
하지만 의료진 입장에서는 하루에도 수 십 명씩 만나는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아무리 친절하게 대하더라도 던바의 수 150명에 해당하는 정도의 친절만이 가능할 것이다.
의료진도 사람이므로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지인에 해당하는 던바의 수 150명을 넘는 사람으로 대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만나는 모든 환자나 보호자들을 친밀 혹은 초친밀집단처럼 대한다면 의료진의 감정적인 소모도 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친한 친구에게 내 개인적인 비밀을 알려주고 공감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그 친구는 그냥 지인 혹은 남처럼 대한다면 아주 심한 배신감과 섭섭함을 느낄 것이다.
환자나 보호자들은 의료진을 친밀집단인 12명 이내로 생각하는데, 의료진 입장에서는 환자나 보호자들을 150명 혹은 그 밖에 있는 남으로 대하는 데서 상호 입장 차가 생길 수 있다.
가끔 후배나 제자들이 힘들었던 일을 상담하는 경우가 있다. 모두들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데 상대방은 나한테 너무한 것 같다는 얘기다.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상대편 입장에서는 항상 서운한 점이 생기는 것 같다.
환자-의사 관계에서든 의료진 사이에서든 어쩔 수 없는 오해로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항상 상대편의 눈으로,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조금은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대화하지만 결국 사람이 사는 사회는 이타적인 작은행동 하나, 하나가 모여 조금씩 따뜻해 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즈음 많이 든다.
오늘도 외래 진료를 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묻고, 검사결과를 친절히 설명하고 약을 처방할 때 상대방의 입장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했었는지를 생각해보면 항상 부끄러울 따름이다.
항상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사람이 될 순 없지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조금 더 마음을 열고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관계가 개인적인 친분이 아니라 의사와 환자 관계라 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어차피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씩 공감하며 마음을 열고 다가간다면 세상은 조금씩 더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의료진 입장에서든,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든 상호 입장을 따뜻하게 공감하면서 다만 한 걸음, 아니 반걸음이라도 서로에게 다가가며 살아갔으면 싶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누구나 존중받을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