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건의료정책과 임중도원(任重道遠)
데일리메디 박대진 부장
2019.01.02 05:35 댓글쓰기
전국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지난 2018년 대한민국 사자성어는 임중도원(任重道遠)’이었다. 논어 태백편(泰伯篇)에 실린 이 성어는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의미다.
 
위로는 대통령부터 아래로는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작금의 상황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평가다. 교수들 역시 문재인 정부의 개혁과제에 대한 당부를 담았다고 부연했다.
 
취임 3년 차를 맞는 문재인 대통령은 말 그대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형국이다. 야심차게 출발한 한반도 비핵화는 지지부진한 모양새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도 미미하다. 약자의 편에서 결단을 내린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은 전 사회의 지축을 흔들었고,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지지율도 곤두박질 쳤다.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정권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총체적 난국이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문재인 정부가 짊어진 짐은 물을 머금은 듯 무거워져 간다.
 
문재인 케어로 대변되는 의료정책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국민들의 의료비 경감을 기치로 내건 정책 대부분이 여러 저항에 부딪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60% 초반에 머물고 있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70%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3800여개의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한다는 게 문케어의 핵심이었다. 이를 위한 재정은 30조원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환자 부담률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던 문재인 케어 도입 효과는 미미했다. 20178월 이후 약 5개월 시행했지만 환자 부담을 0.1% 포인트 밖에 줄이지 못했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건강보험이 환자 진료비의 62.7%를 보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환자가 부담했다.
 
이는 전년(62.6%)보다 0.1% 상승에 불과한 수치다.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965%를 정점으로 떨어져 60% 초반에 머물러 있고, 여전히 그 추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문케어 발표 이후 정부는 20174834억원, 2018년 약 32000억원 등 4조에 가까운 재정을 투입했지만 기대효과는 크지 않았다는 얘기다.
 
물론 2018년 투입분은 이번 실태조사에 반영되지 않았고, 의료기관들의 실제 청구 시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문 대통령이 호언장담했던 진료비 경감 체감효과는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지난해 4월 상복부 초음파, 7월 상급병실료 등에 본격적으로 문케어를 시행했음에도 환자 부담률을 1% 정도 낮아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보장성 확대에 회의론은 성립 불가다. 진료비 부담을 줄이고 상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해준다는 정책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효과의 정도를 차치하고 이러한 정책이 국민들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고 의료비 부담을 덜어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의료보장성이 계속 높아진다고 반드시 부담이 줄고 의료비 상승이 수그러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료쇼핑 등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다.
 
아무리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도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지속할 수 없다면 대안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문케어의 핵심은 경제적 부담 줄이기. 따라서 보장성 확대에 따른 의료수요 및 지출 변화, 건강개선 효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예방과 건강관리를 통한 의료 효율성 확보에도 주목해야 한다. 늘어나는 만성질환자의 치료를 위한 정책 확대는 매우 중요하다.
 
예방과 관리투자를 소홀히 하면 본래 정책 취지와 효과가 퇴색할 수 있다. 치료에서 예방과 관리로의 전환은 세계적인 의료패러다임 변화임에 순응해야 하는 이유다.
 
장기적 관점에서의 보건의료정책 수립도 필요하다. 치료 효과는 즉각적이지만 예방과 관리 효과는 장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기술 접목을 통해 의료의 한계비용을 낮추는 정책 역시 필수적이다. 국민건강증진 수요 변화뿐만 아니라 공급 확대로 비용을 낮추는 노력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
 
임중도원(任重道遠)을 추천한 경희대학교 철학과 전호근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이 이뤄지기 위해 난제가 많다굳센 의지로 잘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골랐다고 밝혔다.
 
성과를 과소평가하고, 과오를 과대포장할 필요는 없다. 정부가 구상하고 추진하는 모든 정책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지켜봐야 한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파생된 예기치 않은 부작용은 정책 입안자인 정부의 거시적 혜안 부재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의료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취지와 목적지 모두 국민을 향해 있지만 이해당사자인 의료계와의 호흡 없이는 앞선 실패의 기억을 재소환할 수 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기해년 새해. 임중도원의 상황에 놓인 문재인 정부가 의료정책에 있어서 만큼은 동일한 우(愚)를 범하지 않기를 기원, 또 기원해 본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