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 연구용역 해서 뭐하냐' 무용론 대두
2010.10.14 02:00 댓글쓰기
[기획 2]이상과 현실의 괴리란 이런 것일까. 2007년 유형별 수가계약이 도입된 이래 각 직역 단체들이 바라는 인상률과 최종 조정률의 격차는 컸다. 데일리메디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병·의원의 경우 작게는 6배에서 최대 8~9배까지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단체들이 원하는 두 자릿수 인상은커녕 대다수가 5% 미만에 머무는 실정. 한마디로 ‘꿈’에 가까운 얘기일 뿐이다.

대다수 직역 단체들은 수가협상 돌입 시 각기 진행한 연구용역 결과를 내세우며 두 자릿수 인상을 요구한다. 매년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을 통해 조정률이 결정된 의원과 지난해 조정 결렬로 '건정심행'을 택한 병원은 낙관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줄기차게 11~18.5% 인상을 건의했다.

최초 제시안 평균치는 의원이 15.6%, 병원이 12.2%에 달하지만 실제 얻어낸 결과는 전자가 2.2%, 후자가 1.9%에 불과하다. 이 쯤 되면 “협상은 해서 뭐하냐”는 탄식이 흘러나올 법도 하다.

처음부터 한 자릿수 인상을 요구한 사례는 한계를 인식하고 용역결과를 왜곡(?)해 합의에 빠르게 이르게 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설명도 있다. 유형별 수가계약이 도입된 첫해 8% 인상안을 제시한 병원계가 대표적인 예다.

대한병원협회 정영호 보험위원장은 “애초 협회 차원에서 진행한 연구용역에서는 15%를 인상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무리수일 것을 감안해 그 절반인 8% 정도로 얘기했다”면서 “의사들이 느끼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고 말했다.



그는 “기대에 못 미치는 최종 조정률을 통보받을 때마다 허탈하고, 불합리하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전의가 불타오른다. 이제 병원도 수가를 올려달라고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수가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고찰해보고 국가 정책에 보다 거시적인 관점을 갖고 접근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회의적인 입장은 대한치과협회도 마찬가지다. 최초 제시안 수준 공개를 거부한 대한치과협회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는 밝힐 수 없지만 우리도 연구용역을 진행하면 두 자릿수 인상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며 “매년 ‘올해는 잘해보자’고 다짐해도 불만족스런 결과가 나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협상 대상 직역단체 중 약국과 치과계에서 최초 제시안 비공개를 고수한 다른 이유도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다. 이들 단체는 조정률 수치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에 대해 심한 부담감을 토로했다.

해당 단체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최초로 제시한 조정 수준이 알려지면 결과를 놓고 협회에 대한 회원들의 질타가 쏟아질 수 있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매년 ‘그래도 최선을 다한 결과’임을 강조해온 그들로서는 회원들의 눈초리를 어느 정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매년 수가 조정률의 구체적인 수치를 결정하는 연구용역으로 원망의 화살이 집중된다. 최초 제시안과 최종 조정율의 격차가 이토록 큰 것은 각기 다른 기준으로 진행하는 연구용역 결과의 차이를 반영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각 직역 단체들은 매년 공모를 통해 수가 환산지수 연구용역을 선정, 협상에 반영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협상에 나서기 위해 다시 각자의 ‘입맛’에 맞는 연구용역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두 자릿수 인상이 당연하다”는 이들 단체 연구용역 결론과 “수가인상 요인이 없다”는 공단 측 결론이 배치되면서 ‘약발이 먹히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다. 이에 “괜한 용역비만 낭비하지 말고 협상에만 힘쓰자”는 얘기가 나도는 실정이다.

“환산지수 연구에 공단+공급자 힘 합쳐야”

실제로 각 단체들은 매년 새로이 진행하던 연구용역을 아예 없애거나 부분 보완하는 정도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해도 소용없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비용 절감책의 일환으로 나온 방안이다. 대한의사협회 양훈식 보험이사는 “재작년에는 연구용역을 진행했지만 작년부터 안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 무모하게 진행해봤자 코웃음만 나오지 않겠냐”고 꼬집었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공급자 입장에서 만족할만한 수가협상이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공단과 공급자단체의 경영수지분석에서 오는 시각차가 크다”면서 “연구용역을 진행해도 공단이 인정을 안 해주니 차라리 그 돈 아껴서 회원들을 위해 쓰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도하는 환산지수 연구를 그간 특정 교수가 독점하다시피 하는 등 관행상 문제점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공급자 측에 유리한 용역은 아예 맡기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양 보험이사는 “공단이 하는 연구용역을 어떻게 믿겠냐”며 “우리 쪽에서 연구를 해보려고 해도 필요한 것은 공단 데이터인데 말이 그렇지 연구가 쉽지 않다. 연구용역에 의존하는 수가 계약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병원협회 정영호 보험위원장은 “김진현 교수의 개인적인 캐릭터가 작용하기도 했지만, 환산지수 점수는 적정점수를 산출하기 위한 방식이자 연구 틀”이라며 그 동안 쓰인 SGR(지속성장률) 모형을 적용할 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5년 이하는 맞아 떨어지지만, 장기적으로 가면 통계적으로 카오스이론상 나비효과처럼 바이어스가 쌓인다. 누적된 바이어스가 절벽으로 떨어질 수 있다”면서 “미국에서는 이미 이 같은 문제점이 밝혀져 SGR 모형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는 적절한 연구 틀이 없는 상황에서 SGR 모형을 써서 연구를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보험위원장에 따르면 SGR 모형 특성상 연구를 하면 할수록 수가 조정률이 마이너스로 나올 수밖에 없고, 지난해 병원 수가를 15% 깎아야 한다고 나온 이유도 따지고 보면 해당 모형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다.

환산지수 연구용역 제도의 부작용이 대두되면서 별도로 수행해온 연구를 표준모형 개발을 통해 통일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매년 같은 연구를 각기 다른 단체가 별도로 수행, 협상하는 것은 소모적인 과정이라는 문제의식에서다.

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부연구위원은 올해 초 ‘2010년 유형별 환산지수 산정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제안하고 환산지수 연구를 3~5년 단위로 공동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표본병원을 의료기관 종별로 정하고 일정기간 의료기관에서 통계 비용 자료를 입수해서 연구를 수행, 이외의 기간은 물가지수에 연동해 환산지수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앞서 병원협회 또한 공신력 있는 제3의 전문연구기관에 의뢰해 환산지수 공동연구를 수행할 것을 공단 측에 건의한 바 있다. 병협 정영호 보험위원장은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물가지수 다 감안해서 현실적인 기준의 조정을 받는 것”이라며 “공동의 연구 틀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지만, 연구를 하다 보니 흐름이 공급자 쪽으로 흘러 공단에서 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정국면 부회장은 “공단에서 진행하는 환산지수 연구가 적정한지,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이 미흡했던 것 같다”며 “저수가가 시정돼야 한다는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고 보는 만큼 합리적인 연구를 통해 문제점을 고쳐나가는 지혜를 모아나가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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