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 유혹 강한 ‘CSO' 순기능 회복 시급
'리베이트 제공 우회로 변질' 제기···인증제·MR제 등 자구책 필요
2018.05.15 06:02 댓글쓰기

국내 CSO(Contract Sales Organization)의 등장은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업계에서는 유디스 인터네셔설의 설립 시점을 국내 최초 CSO 출현으로 간주한다.


개발, 제조, 생산,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을 책임지던 당시 제약회사들로서는 생소한 개념이었음에도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기술력보다 판매력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제약환경에서 ‘영업대행 서비스’는 그야말로 획기적이었다. 더욱이 영업조직을 거느리기 어려운 중소제약사들에게는 단비와 같았다.


유디스 인터네셔널을 시작으로 퀸타일즈이노벡스, 인벤티브헬스코리아, 맨파워코리아, MS&C, 평창p&c, 서경실업, 에스메디, 한국메딕스, 포커스메드코리아 등이 잇따라 설립됐다.


여기에 정부의 제약산업육성지원 5개년 계획으로 CSO 육성안이 포함되면서 ‘영업대행’은 제약환경 패러다임 변화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기대감이 고조됐다.


하지만 리베이트 쌍벌제와 투아웃제 등을 계기로 제약업계에 윤리경영 바람이 확산되면서 CSO는 변질되기 시작했다.


연이어 터지는 리베이트 사건에 부담을 느낀 제약회사들이 자사 영업사원을 내보내 그동안 담당해오던 품목의 영업을 맡기는 형태가 일반화됐다.


인건비 부담은 물론 리베이트의 법적 책임에서도 자유로워짐과 동시에 기존 영업망을 유지할 수 있는 만큼 제약회사들의 수요는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CSO는 850곳 정도로 추산되지만 1인 소사장 형태나 2~5인 중소형, 제약사 분사형 등 음성적 형태를 합하면 3000~5000개로 늘어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CSO의 정확한 통계는 물론 제대로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각종 편법과 불법이 횡행하고 있다.


실제 법인을 제외한 소규모 CSO의 경우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Compliance Program)를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리베이트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상황이다.


일부 업체들은 의사에게 리베이트를 제안하면서 ‘법률적 위험성이 없다’는 식으로 회유하기도 하고, 일부 제약사는 수수료를 가장해 리베이트 비자금을 조성하는 경우도 있다.


또 정부의 리베이트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자체 영업조직을 정리하고 CSO를 설립하는 사내 구조조정 방법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있다.


40대 중반 나이에 퇴사한 제약 영업사원들은 개인 CSO 사업자가 되고, 매출이 증가하면 부인 등 가족명의로 사업자를 쪼개며 규모를 늘려나가는 방식이 보편적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판매대행이라는 취지를 벗어나 제약회사들이 우회적인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기 위해 CSO를 활용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일침했다.


고액 수수료, 의약품 유통시장 멍들게 한다


업계는 CSO 문제의 핵심은 ‘고액 수수료’라고 입을 모은다. 지나치게 높은 판매대행 수수료가 우회적인 리베이트를 양산한다는 분석이다.


실제 업계에 따르면 제약회사가 위탁하는 CSO 마진율은 평균 45%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품목별로 다르지만 최소 30%에서 최대 50%까지 수수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얘기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제약사가 생산과 판매를 포기한 품목이거나 재고물량이 많이 남아 있는 경우 60~90%의 마진율을 적용하는 품목도 있다.


제약회사들 입장에서는 폐기처분 하느니 소액이라도 건질 수 있고, CSO 입장에서는 다른 품목에 서비스 개념의 끼워팔기식으로 활용할 수 있어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고액 수수료는 결국 리베이트 가능성을 높이는 만큼 자정노력을 통한 수수료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수료를 합당한 수준으로 조정하지 않으면 CSO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속될 수 밖에 없고 제약사는 점점 음성적으로 CSO를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CSO가 오명을 쓰는 이유는 고액 수수료 때문”이라며 “이제부터라도 자율적인 논의를 통해 적정 수수료를 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에서는 CSO의 수수료율이 30% 정도가 적정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관리비와 판촉비 등 자체경비를 제외하고도 적정한 사업 유지가 가능한 수치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의견조율은 결코 녹록치 않다. 제약사, 법인 CSO, 개인사업자 모두 공감은 하면서도 합의점 찾기는 공회전만 거듭하는 모양새다.


실제 최근 CSO 법인을 중심으로 속도를 내던 협의체 구성 및 수수료 개선 논의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고 답보 상태에 빠졌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역시 ‘CSO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해당 안건은 이사회에 상정되지도 못했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모두 수수료 가이드라인 제정 등 CSO 관련 자정노력에는 공감하면서도 세부적인 논의에 들어가면 이해가 달라 의견조율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 "CSO 오명 벗기 위한 자구책 등 절실"


작금의 상황에 벙어리 냉가슴을 않고 있는 이들은 바로 CSO 업체들이다. 물론 변질된 CSO가 아닌 제대로된 판매대행을 하는 정식업체들이다.


이들은 CSO가 리베이트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순기능 극대화를 위해 오명을 벗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목해야할 점은 CSO의 순기능이다. 제약회사로서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는 영업을 대행해 주는 만큼 중소제약사들은 연구개발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


특히 전문가들이 영업을 담당하는 만큼 매출 확대의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인건비 부담 없이 숙련된 영업전문가들을 간접채용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CSO가 활성화될 경우 많은 제약회사 퇴직자들의 일자리가 보장됨으로써 산업 안정화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덤이다.


문제는 이런 순기능을 어떻게 제고하느냐다. 해답은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은 철저한 MR(Medical Representative)제도를 통해 CSO의 활성화를 도모했다.


실제 일본 제약회사 중 CSO를 활용하는 기업은 2009년 52개사에서 2017년 116개사로 123% 급증했다. 이러한 기저에는 MR인정시험제도가 자리한다.


의약품 영업 전문가들로 구성된 CSO가 말 그대로 보다 전문적인 방식으로 판매를 대행함으로써 제약회사들의 수요를 늘려가는 구조다.


일본 CSO 소속 MR 수는 2009년 1769명에서 2017년 3515명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결국 CSO의 전문성을 스스로 확보해 가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우리나라도 MR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초기 단계로 제약회사 자체적으로 육성, 지원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CSO 자체적인 구조조정 필요성도 제기된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CSO의 질 관리를 위해 법인화를 의무화 하거나 자격기준을 설정해 진입장벽을 높이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CSO 스스로 실체를 등록하고 수수료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등 건정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역시 착한 CSO 활성화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다만 CSO가 독립적 주체가 아닌 제약회사와 함께하는 개념으로 인식하려는 모습이다. 즉, 제약회사에게 CSO의 관리감독 책임이 있다는 시각이다.


복지부 약무정책과 관계자는 “CSO가 불법의 온상이라는 시각은 없다. 순기능 역시 많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점은 제약회사가 CSO의 영업활동에 대해 관리 책임이 있다는 것”이라며 “제약회사와 CSO의 긍정적인 협력이 가능하도록 정책을 이끌어 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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