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꽃이 하루 아침에 기피 대상 '제약사 MR'
선샤인액트 시행 등 어려움 가중···디지털 채널·역할 대체 가능여부 주목
2018.11.07 06:49 댓글쓰기

공정경쟁규약 강화에 이은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까지 불법 리베이트 관행을 내몰기 위한 제약계 내외부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올해부터 경제적이익 지출보고서, 이른바 ‘선샤인 액트’까지 시행됐다. 의료진에게 제공하는 경제적 이익에 관한 내용을 항상 준비하고 관계당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언제든 제출해야 한다.

이에 따라 제약사들은 자체적으로 공정거래자율준수프로그램 (CP)을 도입, 운영하면서 내부 단속에 힘을 쏟고 있다.

“도시락 배달·테이크아웃 커피 받지 않겠습니다”

대학병원 등 대형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제약 영업사원들의 접대 커피 및 도시락 주의보가 내려졌다.

지난 5월 수도권 소재 한 종합병원 교수가 동료 교수들에게 메일을 보내 제약사 등 이해관계가 있는 단체로부터 커피나 도시락을 받지 말라고 당부한 사실이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해당 병원에 근무 중인 전공의가 리베이트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라는 통지를 받았으며, 전임의를 마치고 개원한 의사도 출석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을 같이 전했다.

그러면서 전공의는 제약사 영업사원을 대면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직실 등에 식음료를 놓고 간 게 리베이트로 오인된 것 같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타 병원 전공의들의 소환 소식도 접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해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커피나 도시락을 제공받는 것을 중단하라고 당부했다.

지출보고서 작성이 시행되면서 1만원 미만 기념품비와 식음료비는 생략할 수 있음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타 대형병원으로 확산되고 있어 제약 영업현장은 한층 위축되고 있다.

대학병원 담당 국내 제약사 영업사원은 “1만원 미만의 커피 제공도 금지하는 병원이 늘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며 “불필요한 오해는 미연에 방지하자는 차원이지만 점점 가능한 활동이 축소되면서 방문 횟수도 줄어 고민”이라고 전했다.

최근 영업사원이 거래처 의사 대신 예비군 훈련에 대리출석해 적발된 경우도 있었다. 이번 사건은 활동에 제약이 많아지자 이른바 영업사원이 ‘몸빵’을 한 사례다.

다른 제약사 영업사원은 “예비군 훈련을 대신 가 달라고 요구한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지만 지금과 같이 영업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영업사원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업사원들 “의사 만나기 더 어려워졌다” 어려움 호소

마케팅 최전선에서 의사들을 만나는 영업사원들이 느끼는 지출 보고서 작성 파급력은 크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한 탓이다.

보고서 노출을 꺼리는 의사들이 제약사 영업인력과 만남을 피하며 영업활동에 애를 먹고 있다. 그나마 다행은 ‘달라진 환경’에 적응단계라는 것이다.

법인카드 금지령도 영업사원들을 옥죄고 있다. 의사가 영업 사원 만남을 꺼리는 동시에 영업사원이 의사를 자신 있게 만나기 힘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최근 들어 회의감을 호소하는 제약 영업사원들이 크게 늘었고, 회의감의 농도 역시 더욱 짙어지고 있다. 그동안에도 대학병원 교수연구동에 제약·의료기기 영업사원 출입금지 팻말을 걸어놓은 경우가 많았지만, 선샤인 액트 시행 후에는 주차장부터 출입통제를 고지하는 경우도 생겼다.

출입 통제가 심한 병원의 경우 영업사원들이 로비나 커피숍에서 의사에게 전화나 문자로 미팅을 요청하지만 거부 당하기 일쑤다.

영업사원임을 숨기려고 양복을 입지 않고 환자인 척 기다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한 다국적사 영업사원은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화가 시작된 시점에는 만남을 피하는 의사들이 있었다. 지금도 기조를 유지하는 거래처가 있고, 아닌 곳도 있다”며 “확실히 제품 정보 제공 외 유대를 위한 만남은 줄어든 것 같다”고 전했다.

국내사 개원가 담당자는 “오랜기간 담당했던 지역이라 만나지 않겠다는 의사는 없지만 예전보다 제품설명회나 식사 등의 횟수는 줄었다”며 “신규 거래처 방문도 어렵다. 품목 수가 늘어나 목표는 올라가는데 달성하기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지출보고서 때문에 명절선물 크게 줄어

금년 추석 명젤때도 병·의원 및 약국에 제공되는 제약사들의 명절 선물은 눈에 띄게 줄었다. 다만 최근 공포된 김영란법 개정안에 따라 10만원까지 금액 상한선이 풀린 농수산물 가공품, 화훼, 임산물 수요는 늘었다.

해당 선물에 대해서는 당연히 지출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 때문에 받는 입장인 의료진들도 부담을 느껴 거부하는 상황이 적잖게 발생했다는 전언이다.

서울시 마포구의 한 내과 개원의는 “주 거래처도 아니고 낯선 MR일 경우 선물을 들고 와도 받지 않고 돌려 보낸다”며 “민감한 분위기 탓인지, MR과의 관계가 철저히 ‘라포 (Rapport)’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고 상황을 전했다.

다만 확실한(?) 관계, 즉 영업사원과 병·의원 의사 간 신뢰가 존재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더 나은 성의 표시를 잊지 않는 형국이다.

따라서 몇몇 회사들은 영업부가 아닌 마케팅부 예산을 별도로 돌려 선물비로 지급하고 있고 대부분 MR들은 개인 판단에 따라 거래처(우량, 혹은 신규 거래처)를 구분, 선물을 돌려 왔지만 몇차례 리베이트 파동을 겪으면서 의사 쪽에서 이를 거부하는 움직임도 적잖았다.

국내 한 상위제약사 영업사원은 “사실 담당지역 모든 거래처에 선물을 돌리는 것 자체가 의미도 없는 것 같다”며 “다만 신뢰 관계가 형성됐다고 판단되는 의사에게는 자비를 들여서 챙기게 되는 듯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조는 경력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신입 사원인 경우 점점 더 의사와의 관계 적립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 중견 제약사의 신입 영업사원은 “거래를 트기는 커녕, 원장(의료기관)들 얼굴 보기도 어렵다. 윤리경영을 외친다고 회사에서 실적 압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렵게 들어온 회사인데, 점점 도태되고 있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라고 토로했다.

“영업사원 입지 좁히는 정부정책” 불만 제기

제약계에선 웹광고, 이메일 소식지, 온라인 세미나, 제약사 운영 웹사이트 등 디지털 채널이 대세가 됐다. 대면 디테일, 오프라인 세미나, 샘플 제공 등과 같은 전통적인 채널에 대한 비용 지출이 전반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이익 지출 보고서 의무화 제도로 디지털 채널로의 전환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아이큐비아는 최근 의사 패널들의 영업사원 방문 관련 인지데이터를 수집, 국내외 제약산업 내 영업 마케팅 비용 지출 트렌드 분석결과를 내놨다.

국내 제약회사들은 웹 광고, 온라인 세미나와 같은 디지털 채널을 활발히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디지털 채널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한미약품은 ‘온라인 세미나’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디지털 채널 기준 상위 10위권 회사들 역시 ‘온라인 세미나’, ‘웹광고’ 등에 큰 관심을 보였다.

디지털 채널이 가장 많이 활용된 제품으로는 로슈젯(한미), 아모잘탄(한미), 라본디(한미) 순이었다. 릭시아나 (다이이찌 산쿄) 및 슈가메트(동아ST)의 경우도 웹 광고에 집중했다.

아이큐비아 관계자는 “시장 변화에 맞춰 디지털 채널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적합한 채널을 개발하고 활성화시켜 나갈 수 있는 각 제약사의 영업 및 마케팅 담당자들의 역량이 더욱 중요해 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 제약 영업사원의 입지를 지나치게 축소 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20여 년 제약영업을 담당해온 한 인사는 “최근 영업 사원들이 회사에서 권고사직 후 CSO로 전향하는 데 정부의 역할도 컸다”며 “리베이트 근절 정책은 좋지만 영업사원 역할이 지나치게 홀대받고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무리 온라인 미팅과 웹세미나 등이 강화되더라도 영업 사원이 현장에서 만나 전달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그런 부분도 같이 조명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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