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직장' 불리던 다국적제약사 노사대립 빈번 왜?
쥴릭파마·갈더마 포함 20개사 2050명, 민주제약노조 가입···성과 압박 등 반발
2019.12.31 12:22 댓글쓰기

이른바 ‘꿈의 직장’으로 불리던 외국계 제약사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근무환경과 임금 등 처우에 대한 내부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한 제약사에서 근무 중이던 직원이 투신해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들의 노사갈등은 지속된 글로벌 본사 차원의 한국지사에 대한 조직개편, 인원 감축 요구와 관련이 깊다.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고 계약직으로 채용했다가 계약기간 만료 이후 기존 방침을 번복하는 사례도 종종 나타난다.

국내외 제약계 환경변화로 기업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예전만 못하면서 구조조정 및 조직개편 가능성이 커지는 모습이다. 올해 지속됐던 노무 관련 문제는 앞으로도 이어질 확률이 크다.

샤이어 합병 1년 한국다케다제약, 노사갈등 최고조

한국민주제약노조 한국다케다제약지부는 지난 11월 7일 서울 한국다케다제약 본사 앞에서 ‘노동탄압 분쇄 및 사업부 매각 중단 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이에 앞선 10월 10일 이 회사 조합원 50여명은 2박3일 일정으로 일본 본사를 다녀왔다. 표면적인 방문 목적은 다케다 글로벌 헤드쿼터에서 개최한 8년차 정기총회 참석을 위해서다.

하지만 이면에는 샤이어코리아와 합병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들을 공유하려는 의도가 담겼다. 본사 노조와 만남을 통해 한국법인 직원들이 처한 불합리한 상황을 전달하고, 프라이머리케어(PC) 사업부 매각설에 대한 본사의 공식입장을 확인하려는 취지였다.

제약계에 따르면 다케다는 샤이어 인수로 인한 부채를 줄이기 위해 아시아태평양지역 PC(프라이머리케어) 사업 판권 매각을 검토 중이다.

이미 특정 브랜드를 매각한 데 이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당뇨병과 심혈관질환 파이프라인 판권을 두고 일부 글로벌제약사들과 물밑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당뇨·순환기사업부 매각설이 불거지면서 노조는 고용 불안 등의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해당 부서에는 70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 중으로 ERP(명예퇴직) 시행 등에 대한 소문도 파다한 상황이다.

샤이어코리아 문희석 대표가 통합된 한국다케다제약 대표로 선임된 이후 진행하고 있는 조직개편 역시 직원 불만이 크다. 인센티브, 취업규칙 등에 있어 샤이어코리아 임직원에 유리한 처우 및 불공정한 인사가 문제로 부각됐다.

김영북 한국다케다제약 지부장은 “샤이어 대표가 다케다 대표로 오고 몇몇 주요 보직에 샤이어 직원이 자리하면서, 다케다 직원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기존 다케다 직원들은 30명가량 퇴사했지만 샤이어 직원 중 퇴사자는 단 한 명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측은 앞에서는 사업부 매각을 부인하고 있지만 뒤로는 매각절차를 진행하고, 더욱이 무노조 경영과 노조 탄압을 앞장서고 있는 대기업 계열사에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전체 조합원의 역량을 모아 사측 노동탄압과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끝까지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의지를 전했다.

머크·갈더마 직원들, 경영진과 갈등 고소고발

독일계 제약회사인 한국머크 바이오파마의 노사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회사 앞 집회 이후 이 회사 노동조합은 출근시간 피켓시위에 이어 경영진의 부정·부당행위에 대한 고소고발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지난 9월 30일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 머크지부 소속 조합원 100여 명이 모인 집회에서 조합원들은 ‘무책임한 강제·기습 해고 철회’, ‘명분없는 사업부 정리 중단’ 등을 요구했다. 집회 도중 조영석 지부장은 삭발식을 진행, 한때 분위기가 고조되기도 했다.

이 같은 노조원들의 반발은 한국머크가 일반의약품사업부의 권리 이전을 추진하면서 촉발됐다. 해당 사업부는 고혈압 치료제 ‘콩코르’와 당뇨병 치료제 ‘글루코파지’ 등을 보유 중이다. 이들 약품은 올해 상반기 각각 79억원, 30억원 등으로 국내 시장에서 차지하는 매출비중은 적지 않다.

회사는 9월 23일 갑작스럽게 관련 부서 직원들을 소집하고 이들 의약품 판권을 한국 파트너사에 아웃라이선싱한다고 통보했다. 이어 전 직원 대상 이메일을 통해 이를 공식화했다.

다시 사측은 사전논의 없이 해당 부서 대상 희망퇴직(ERP)을 진행하겠다고 발표, 직원들 사이에선 고용불안과 회사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다.

지난 1998년 설립된 갈더마코리아에선 급기야 노동조합이 회사 경영진을 고용노동부에 고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노사협의회 파행운영과 노사간 합의내용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고용노동부가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곳 회사는 지난 2018년 8월 르네 위퍼리치 신임 대표이사가 취임한 후 2차례에 걸쳐 조기퇴직프로그램(ERP)을 시행하면서 진행된 퇴사 종용방식이 기존과 달라 사내 불안심리가 확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년간 갈더마코리아 소속 90명의 직원 중 영업부, 마케팅, 회계팀 등에서 약 30명 이상이 퇴사했지만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력충원이 안되면서 대다수 직원들이 심각한 수준의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직원들의 복리후생(차량 제공, 연장근무수당 지급 등)과 관련된 취업규칙을 일방적으로 변경, ▲이런 문제를 공지가 아닌 직원 개개인을 접촉해 통보, ▲노조지부장의 고용계약서 재발행 거부 등 노조활동 방해 의혹 등이 문제로 제기됐다.

이후 9월에는 갈더마코리아의 한 임원이 노조 운영진의 뒷조사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노사관계는 최악에 직면했다. 해당 임원은 노조위원장의 대학교 생활이나 학생운동 여부 등을 알아본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안정 문제 부각되면서 노조 결성 증가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은 2012년 출범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제약사 연합노조다. 올해 상반기 쥴릭파마솔루션서비스코리아를 시작으로 갈더마코리아, 한국룬드벡 등 3개사가 가입. 현재 총 20개사, 조합원 수는 2050명이다.

최근 다국적제약사들의 노조 결성 및 민주제약노동조합 가입이 늘고 있다. 국내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용 안정이나 복리 후생 등이 낫다는 평가를 받아 왔지만 대규모 인수 합병이 잇따르면서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지난 7월 덴마크 제약사 룬드벡 한국법인에 노동조합이 결성된데 이어 민주제약노조에 가입했다. 취업규칙 변경 시 과반수 이상의 직원에게 해당 내용을 설명하고 의견을 구할 의무가 있는데 사측이 노동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한국룬드벡 노조 측 설명이다.

현재 한국룬드벡 노조에 가입한 노조원은 전체직원 68명 중 54명으로 가입률이 80%를 넘는다. 이경수 민주제약노조 한국룬드벡지부장은 “임원급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원들이 노조가입을 신청했다것은 회사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보다 앞서 민주제약노조 가입을 완료한 한국갈더마 노조는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 회사의 100% 매각을 발표에 이어 전 직원에게 조기퇴직 프로그램 시행 등 불안한 상황에 놓였다. 갈더마는 지난 3월 노조를 설립했고 79명의 임직원 가운데 45명이 가입했다.

서영민 갈더마코리아 지부장은 “조기 퇴직을 종용하는 일이 또 벌어질 것”이라며 “회사가 매각되더라도 최소한 고용은 보존돼야 한다. ERP를 진행하더라도 먼저 노조와 협의해 달라는 것이 우리 요구”라고 전했다.

이 외에도 지난 6월 애브비는 엘러간과의 인수합병을 발표하면서 고용안정을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피인수회사인 한국엘러간에서는 벌써 일부 내근부서 직원들은 이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장환 민주제약노조 공인노무사는 “영업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성과에 대한 압박은 강해지고 있지만 막상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권리보호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면서 “노조설립은 이에 대한 합당한 대비”라고 진단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송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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