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괴리된 초음파수가…학회 의견 반영 안돼
영상의학 교수들 답답, '행위 분류기준 없어-진단 통한 예방 사실상 불가'
2013.10.10 20:00 댓글쓰기

소형자동차가 있다. 크기는 작지만, 자동차의 기본 목적인 ‘운송’ 기능은 충분하다. 엔진, 타이어, 브레이크 등 기본 틀은 다 갖추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정부가 그렇게 만들었다.

 

대형자동차도 있다. 소형자동차와 반대로 크기는 크지만, 역시 자동차의 기본 목적인 ‘운송’ 기능을 위해 태어났다. 얼추 내외관상 기본 틀도 같다. 그러나 소형자동차와 다른 대우를 받는다. 이것도 정부가 만들었다.

 

이들을 고치는 정비사는 고민이다. 소형 · 대형 크기에 구분 없이 올바른 정비를 하고 싶은데 정부가 자꾸만 방해를 한다. ‘전문가는 나인데 왜 그럴까’ 라는 의구심을 품어도 해답은 없다. 정부는 언제나 자동차 구조에 대해서는 묻지만, 최종 결론은 언제나 ‘관행’대로만 간다.

 

심지어 이제는 “나중에 법적인 책임은 안 물을 테니 그냥 시키는 대로 따르라”고 하기도 한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근거를 물어도 묵묵부답이다.

 

미래가 뻔하다. 정부 방침대로 했다가는 ‘호미로 막을 문제를 가래로 막는 상황’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상황만은 막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위의 가정된 사례는 공산품의 일종인 자동차 업계로 비유한 것이다. 만약 이와 동일한 상황이 정부가 강조하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직결되는 의료계에서 펼쳐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 영상진단 분야에서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10일

대한영상의학회 학술대회장에서 만난 오주형 총무이사[사진 左]와 도경현 홍보이사는 최근 불거진 ▲초음파검사 급여화 ▲CT 등 방사선 피폭량 관리 법안 발의 등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피력했다.

 

의료현장과 동떨어진 수가는 번외로 하더라도 최소한 관련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전문가(학회) 의견을 조금이라도 수렴해야 하는데 현재 나온 대책들은 전혀 반영이 안됐다는 것이다.

 

특히 초음파 건강보험 수가의 경우 행위 분류 기준이 세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환자와 의료진 간 마찰은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 학회 측 의견이다.

 

오주형 총무이사는 “예를 들어 복부 초음파의 경우 간, 담낭, 담도, 비장, 췌장 등 다양한 장기가 있는데 부위를 ‘복부’ 하나로 통일해놓은 상태”라며 “간에 문제가 있는 환자에게 복부 초음파를 했다고 기록한 후 담낭 검진을 위해 또다시 복부 초음파를 하면 당연히 환자는 왜 한번에 다 검진하지 않느냐고 반발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도경현 홍보이사[사진 右]는 “신생아 뇌 초음파도 문제다. 뇌 출혈 기미가 엿보일 때 바로 발견 후 치료하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결국 뇌성마비로 이어지게 된다”라며 “그래서 초음파 검사가 중요한데 복지부 방안으로는 신생아 초음파 수가가 워낙 낮게 책정됐기 때문에 수준 높은 진료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행위별·부위별 진단에 대한 명확한 근거 없이 정부 일방적 통보"

 

이어 “장애가 발생하기 전에 진단을 통해 예방을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데 현 정부 방책은 이를 역행하고 있다”며 “그렇게 될 경우 다음 세대에서는 장애인 돌봄 등 복지정책 예산에 더 큰 출혈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오주형 총무이사와 도경현 홍보이사는 현재 의료계가 영상의학 관련 정책에 반발하는 이유가 ‘저수가’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행위별 · 부위별 진단에 대한 명확한 근거 없이 일방적인 통보가 문제라는 것이다.

 

학회 차원에서 수차례 의견을 전달하고, 관련 자료를 제출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언제나 ‘관행수가 50%’에서 결정되는 현실에 대해 개탄했다.

 

특히 이번 초음파 건강보험 수가의 경우 관행수가 50%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부위별 수가의 편차가 너무 크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했다.

 

오주형 총무이사는 “초음파 검사는 CT, MRI와 다르게 의사가 실시간으로 검진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판단능력이 매우 중요한 분야”라며 “두경부, 흉부, 복부 등 모든 부위별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은 같은데 수가 편차가 크게 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도경현 홍보이사는 “이러한 문제점 개선을 위해 학회 차원에서 초음파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관련 자료 수집 및 회원들 의견 수렴을 진행하고 있다”며 “건강보험 재정 때문에 의료 관련 정책이 휘둘려서는 안 된다. 복지부, 심평원, 의협, 병협 등 건정심 참여 단체들이 열린 자세로 객관적 근거 마련을 위해 공론의 장(場) 활성화에 힘써주길 당부한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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