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 의사까지 수도권 쏠림→'지방의료 붕괴' 서막
의대 교수들, 지역병원 이탈 가속화…"정부가 빅5 병원을 블랙홀로 만들어"
2024.09.03 05:32 댓글쓰기



정부가 의료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일선 대학병원들의 전문의 중심 병원을 선언하면서 의사들의 수도권 쏠림현상이 가속화 되는 모습이다.


종전에도 갓 수련을 마친 신규 전문의나 봉직의 중심으로 수도권 선호 경향이 도드라졌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학병원 교수들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이미 지방 대학병원 교수 상당수가 수도권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 상태라면 지역의료 붕괴는 시간 문제라는 우려에도 불감증으로 일관하는 정부 행태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실제 정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을 선언하면서 의사인력 채용시장은 때아닌 스토브리그를 맞이했다.


특히 수도권 대학병원들이 중소병원은 물론 지방 대학병원 교수진 영입에 열을 올리면서 의료진 쏠림현상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의사 헤드헌팅 업체들은 시시각각 전해지는 의대교수 사직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해당 교수에게 채용정보 물량 공세를 벌이는 중이다.


실제 충남 지역 A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2명이 수도권 B대학병원으로 이직했고, 전남 지역 C대학병원 외과 교수가 수도권 D대학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산 소재 E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 경북 F대학병원 심장내과 교수, 전북 G대학병원 두경부외과 교수 등도 최근 수도권으로 떠났다.


외과, 신경외과, 응급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등 필수의료 분야 교수들 중심으로 시작된 지방 대학병원 교수진 이탈은 시간이 흐를수록 여러 전문과목에서 동시다발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한 지방 대학병원 외과 과장은 “수도권 대학병원들이 러브콜 공세를 펼치면서 지방 의사들 이탈이 심화되고 있다”며 “지방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정부가 그리는 전문의 중심병원은 결국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하석상대(下石上臺)에 불과하다”며 “지방의료 붕괴는 이미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지방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과장은 “전문의 중심병원은 수도권에 국한된 얘기”라며 “정부가 빅5 병원을 환자는 물론 의사들까지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만들고 있다”고 힐난했다.


이어 “제자와 동료를 잃고 의업(醫業)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도록 하는 게 정부가 말하는 의료개혁을 아닐 것”이라며 “지방 대학병원의 현실을 진중하게 들여다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도권 병원 러브콜에 지방의료 흔들

필수의료→전체 진료과 교수 이탈 확산

제자도 스승도 떠나는 지방의료, 소멸 우려


의사들의 수도권 쏠림에 따른 지방의료 붕괴 우려는 이미 여러 수치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항의하며 전공의 9000여 명이 병원을 이탈한 의료공백 사태가 6개월을 넘어가면서 해당 지역서 거점 병원 역할을 하던 지방 국립대 병원 교수들의 사직이 크게 늘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윤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223명의 국립대병원 교수들이 사직서를 던졌다. 이는 2023년 사직자의 80%에 육박하는 수치다.


사직 교수들은 주로 비(非)수도권인 지방 국립대병원 소속이며, 사직률이 가장 높은 곳은 강원대병원(춘천 소재)으로 전년도 대비 올해 상반기 사직 교수 수가 150% 늘었다.


그다음으로는 충남대병원(분원, 세종) 125%, 경상국립대병원(분원, 창원) 110%, 경상국립대병원(본원, 진주) 100%, 충북대병원(청주) 94% 순으로 나타났다.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들이 실제로 병원을 떠난 사직율은 57%로 집계됐다.


사직률이 가장 높은 진료과는 방사선종양학과(75%)였으며, 흉부외과(63%), 산부인과(61%), 소아청소년과(60%) 순이었다. 필수의료이자 기피 성향을 보였던 진료과의 사직률이 높았다.


의료정책연구원이 전국 의사를 대사으로 실시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응답자 6340명 가운데 서울에 근무한다고 답한 의사는 38.1%로 나타났다.


2016년 조사에서는 서울 근무 의사가 전체의 26.4%였지만 4년 새 11.7%나 높아졌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모두 의사수 증가 양상을 보였다. 경기권 근무 의사 비중은 2016년 18.4%에서 2020년 21.1%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인천 역시 4.7%에서 5.0%로 늘었다.


이들 세 지역의 의사 인력 총 비중은 2016년 49.4%에서 2020년 64.2%로 확대됐다. 의사 10명 중 6명 넘는 인원이 수도권에서 일하는 셈이다.


의사 인력 유출이 가장 심했던 곳은 부산이었다. 부산은 2016년 근무 의사 비중이 7.9%로, 서울과 경기 다음으로 높았다. 하지만 2020년(4.6%)에는 크게 줄어 인천에 밀렸다.


같은 경상권인 대구에서도 감소 폭이 3%에 달했고, 경남·경북은 각각 1.8%씩 줄었다. 광주 2.3%, 전북 2.2% 등도 감소 폭이 2%를 넘었다.


특히 인구 100만이 넘는 광역시인 울산은 이 기간에 근무 의사 비중이 2.0%에서 0.9%로 줄어 현지 근무 의사가 전체 100명 중 1명꼴도 되지 않았다.


신규 의사들의 수도권 쏠림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백승아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2022년 의대 졸업생 60.7%가 수도권에 취업했다. 특히 서울 지역 취업자만 47.4%에 달했다.


분석대상자 중 서울 지역 의대 졸업생은 30.8%인 점을 고려하면 지방의대 졸업생 상당수가 지역을 떠나 서울 등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의정 갈등 사태 이후 교수들까지 수도권으로 떠나면서 그야말로 ‘지방의료 소멸’을 논하는 상황에 놓였다.


한 지방 대학병원 원장은 “젊은의사들의 수도권 선호는 이미 오래 전 얘기이지만 중년 교수들까지 지역을 이탈하는 상황은 당혹스럽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방 대학병원들이 진료, 교육, 연구라는 제기능을 언제까지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일부 병원은 이미 일부 기능이 멈춰 선 상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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