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3] 간호법이 제정되면서 의료공백 사태에서 의사 업무를 대신해온 PA(진료보조인력, 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역할이 합법화된다.
PA 간호사 지위와 자격이 분명해지면서 의료대란 상황에서 보다 큰 역할을 하고, 이들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반간호사 고용 안정성이 저해되고, 의료현장에서 직역 갈등이 심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회는 지난 8월 28일 본회의에서 진료보조(PA)간호사 의료행위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간호법’ 제정안을 재석 290명 가운데 찬성 283표, 반대 2표, 기권 5표로 가결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내년 6월부터 PA 간호사 의료행위가 합법화된다.
PA 간호사는 그간 의료현장에서 의사 일부 업무를 대신하고 있었으나 현행법엔 이들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의료사고가 나도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의정갈등 장기화로 정부가 전공의 공백 일부를 PA 간호사로 채우면서 규모가 급증했다. 실제로 지난 3월 1만165명이었던 PA 간호사는 7월 1만6000여 명으로 4개월만에 57.4% 늘었다.
의료 현장에서 PA 간호사 역할이 커지면서 업무 위험도가 높아졌으며 대한간호협회는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해 소송 위험을 차단해 달라며 법제화를 적극 추진했다.
이번에 여야가 합의해 도출한 간호법은 PA 간호사 업무 범위를 임상경력 등을 고려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했으며, 구체적인 범위는 추후 마련될 예정이다.
간협 “간호법 통과 환영, PA간호사 보호장치 마련”
대한간호협회(간협)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간협은 “간호법 국회 통과로 간호 돌봄체계 구축과 보편적 건강보장을 실현해 나가는 길이 열리게 됐다”며 “우수한 간호인력 양성, 적정 배치, 숙련된 간호인력 확보를 위한 국가의 책무가 법제화돼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 토대가 마련됐다”고 밝혔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간호법이 만들어져 간호사가 해도 되는 직무와 하지 말아야 할 직무가 명확해져 국민 모두에게 안전한 간호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겼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간협은 “간호법은 앞으로 국민의 보편적 건강권과 사회적 돌봄의 공적 가치를 실현하고 보건의료계의 공정과 상식을 지키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며 “간호사는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의료 개혁에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국 65만 간호인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국민 곁에서,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앞장설 것임을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보건의료노조도 “불법 의료행위에 내몰려 온 PA 간호사들의 의료행위를 법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됐다”며 환영했다.
이어 “의사인력 부족과 전공의 진료거부 장기화에 따른 의료공백을 해결하고 환자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밝혔다.
醫 “PA 법제화, 간호사를 의사로…직역 갈등 심화”
하지만 의사 단체들은 간호법 통과에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대한의학회·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7일 공동으로 낸 성명서를 통해 “정부가 추진하는 PA 간호사 활성화는 전공의들에게 의료 현장에서 떠나라고 부채질하는 정책”이라면서 “불법적으로 간호사에게 의사 업무를 시키는 일부 관행을 합법화 시키는 정책으로 엄습하는 의료파탄을 해결할 수 없고 환자 생명과 안전이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전공의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PA 간호사로 채우면 앞으로 전공의 수련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면서 “전공의 수련제도 자체를 부정하고 간호사를 의사로 둔갑시키는 발상으로 밖에 달리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PA 간호사 법제화로 일반 간호사의 고용안정성이 저해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의사 출신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은 “PA 간호사 법제화는 일반 간호사 고용안정성을 저해하고, 독립적 간호행위를 인정받는 협상, 간호 개별수가 인상은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간호사들 법적 보호와 처우 개선을 바랐다면 1인당 담당환자 수 제한, 신규간호사 교육 재원 조달 법제화 등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하지만 묻어두는 일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간호법으로 의료현장에서 직역 갈등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은 “간호법은 간호사가 진단하고, 간호사가 투약 지시하고, 간호사가 수술하게 만들어주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간호법은 직역 갈등을 심화시키고 전공의 수련 생태계를 파괴하는 의료 악법이면서 간호사조차 위험에 빠뜨리는 자충수의 법”이라고 강조했다.
간호법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이 발언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달 20일 간호법 제정안이 공포되자 박용언 의협 부회장은 “그럴 거면 의대를 갔어야 한다”며 “장기말 주제에 플레이어인 줄 착각한다”고 비난했다. 이에 간협은 공식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구체화된 PA 간호사 자격요건 시행령에 담아야”
업계에서 PA 간호사 법제화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PA 간호사의 자격요건과 업무 범위에 대한 구체화 방안이 정부의 과제로 남았다.
간호법 제14조에 따르면 PA 업무를 수행하려는 간호사는 전문간호사 자격이나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임상경력 및 교육과정의 이수에 따른 자격을 보유해야 한다.
전문간호사는 의료법에서 간호사 이외 유일하게 자격 인정 등이 명시돼 있는 간호인력이다. 의료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보건, 마취, 가정, 정신, 감염관리, 산업, 응급, 노인, 중환자, 호스피스, 종양, 임상, 아동 등 총 13개 분야에서 활동한다.
최수정 한국전문간호사협회 회장은 “임상 숙련도가 있어도 공부를 해야만 하는 내용이 있고, 충분한 지식을 가졌는지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은 면허나 자격을 취득하는 것”이라며 “기존 PA 업무를 보던 이들에게 전문간호사 자격 취득을 용이하게 해주는 식의 특례를 주는 방식이라도 충분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는 “향후 PA간호사 업무범위를 명확화하고 엄격한 자격요건을 시행령에 담아내야 한다”면서 “하위법령 제정 시 임상경력과 교육·훈련과정, 자격시험 등 PA간호사 자격요건을 구체적으로 정하라”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는 “간호법 시행 이후 PA가 진료지원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별도 자격 및 교육과정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 다만 제도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관계 전문가, 현장 의견수렴 등을 통해 국민과 환자를 위해 질(質) 높은 진료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와 절차를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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