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존재감은 뭐냐' 공보의들 성토
2011.01.19 21:50 댓글쓰기
[기획 상]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공중보건의사들의 배치 적정성 문제가 해를 넘겨서도 여전히 꼬리표처럼 뒤따르고 있다. 일선 공보의들이 느끼는 체감 온도는 최근 전국을 강타한 한파 만큼이나 좀처럼 올라갈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다. 이에 지난 국정감사 이후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최근 상황을 점검해봤다.[편집자주]

지난해 국정감사 주요 이슈 중 하나로 떠올랐던 공중보건의사들의 배치 적정성 문제.

당시 한나라당 이애주 의원과 민주당 이낙연 의원 등은 지난 2009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펴낸 ‘공중보건의사 적정배치를 위한 배치기준 정립’에 대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공보의 배치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방의 한 의료기관은 주변에 무려 50여 개의 의료기관이 있음에도 ‘의료취약지병원’으로 분류돼 공보의가 배치되는 등 “민간병원 및 관련 보건의료단체의 배를 불리는 데 공보의들이 착취 당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였다.

그러나 2011년 신묘년 새해가 밝았지만 이러한 사정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다.

이번에는 일부 정부기관에서 근무 중인 공보의들 마저도 자신들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면서 재배치를 요구할 정도로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선 소방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보의. 이들은 한결같이 소방본부에서 맡은 공보의 역할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다.

지방의 한 소방본부에 근무 중인 공보의 A씨는 “여기서 근무하며 맡은 임무가 공보의가 배치될 필요가 있는 일인지 이해 안 되는 게 대부분”이라며 “그런 일마저도 아주 가끔의 일과이고, 대부분 출근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만 있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A씨에 따르면 이 소방본부에만 의과쪽 공보의만 2명이 배치돼 있지만 하는 일은 워낙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자신이 해 온 일을 소개하며 배치 문제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1년 동안 이 곳에 있으면서 주로 한 일은 타 기관에 심폐소생술과 같은 강의를 주로 하고 이 밖에 여름철 바닷가에서 아무 장비도 없이 드레싱 키트만 있는 곳에 간호사랑 둘이 앉아만 있었다”고 성토했다.

뿐만 아니라 해당 지자체 시의원이 단식투쟁했을 때 불려나가는 일 정도가 큰일이었다는 그는 “다음해에도 공보의가 들어와 여기서 시간이나 때울 걸 생각하니 불쌍하다”면서 “1339 등과도 기능이 중복되는 만큼 배치 문제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0년 현재 소방방재청을 비롯해 각 지자체별 소방본부에서 이런 식으로 근무 중인 공보의 수만 해도 26명에 이른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한 관계자는 “이들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고충들을 털어놓고 있다”면서 “이제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소방방재청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냈다. 오히려 공보의 배치를 늘리면 효율적인 운용이 가능해져 앞서의 사례와 같은 일들이 줄어들 것이란 게 소방방재청 입장이다.

소방방재청측은 “공보의들은 상황실에서 의료지도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구급정책 수립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을 만큼 꼭 필요한 자원”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각 지자체 소방본부에서 활동 중인 공보의들이 자괴감을 느끼는 이유로 “적정 배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오히려 “배치 인원을 늘려야 한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소방방재청 한 관계자는 “충남도와 전북도의 경우 공보의가 4명이 근무하면서 3교대로 돌아가며 상황실 근무를 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구급대원들의 응급처치에 대한 교육과 평가, 의료지도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만큼 다른 시도에서도 공보의들이 3교대로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춰지는 게 해법”이라고 밝혔다.

공보의 특성상 인원이 제한적일 경우 주간에만 근무할 수밖에 없어 주로 사무업무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반면, 구급업무가 몰리는 야간근무에까지 공보의들이 투입되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논리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서울의 경우 공보의 이외에도 응급의학전문의를 채용해 운용하다보니 다른 시도에 비해 심정지 환자들의 생존율도 비교적 높을 정도”라며 “공보의 수를 늘리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의료지도팀 같은 것을 운용할 수 있어 사전 의료지도와 응급처치 지도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똑같은 공보의 배치 적정성 문제를 두고 한 쪽에선 줄이자고, 다른 한 쪽에서는 오히려 늘리자는 주장이 맞서면서 앞으로도 이러한 논란이 쉽게 가시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대공협측은 “현행 법규상 공보의들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일”이라며 “관련법 제정은 물론 공보의 제도 전반에 걸쳐 되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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