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2000년(의약분업)→2010년(쌍벌제)
2010.10.08 22:30 댓글쓰기
2010년 9월 초가을 어느 날. 격무에 시달리던 중견제약사 홍 대리는 잠깐 눈을 부칠 요량으로 회사로 돌아가는 차를 갓길에 세운다. 그리고 이내 잠이 든다. 홍 대리는 꿈 속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인 1990년 하늘같은 선배들이 누비던 영업현장에 동행한다.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만나는 사람도 다르고 일명 ‘삐삐’ 하나 없이 자유로운 몸까지, 현재와는 전혀 생소한 환경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홍 대리의 꿈 속 여행을 통해 1990년과 2000년 의약분업 시절, 2010년 현재의 영업환경 변화를 짚어본다.[편집자주]

●● 지금과 다른 자유로운 분위기
꿈 속에서 1990년대로 돌아간 홍 대리는 영업본부장으로 있는 상사와 함께 영업활동에 나섰다. 홍 대리가 가장 놀란 점은 현재와는 다른 너무나도 자유로운 분위기. 상사는 회사에 출근해 간단한 서류 정리를 마치고 자신의 거래처에 간다는 말만 하고선 홍 대리와 함께 회사를 벗어났다.

전날 과음했다는 상사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시내 한 켠에 위치한 사우나. 익숙한 모습으로 사우나에 들어선 상사는 홍 대리에게 한숨 잘 것을 권유한다. 홍 대리는 당황하지만 상사는 수면실로 들어가 버린다. 한참 후 상사는 홍 대리와 사우나를 나섰다. 그가 찾아간 곳은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약국. 약국을 찾은 상사는 약사와 의약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일상적인 신변잡기에 관한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상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약사는 마치 친한 대학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다. 이것 저것 물어보고 챙겨주는 모습에 홍 대리는 할 말을 잃는다. 자신이 영업을 하고 있는 2010년과 너무나 틀린 모습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약사들은 의약분업 전까지만 해도 약국 위주의 마케팅정책을 펼쳤으나 분업 이후부터 의료기관 중심으로 변했다. 일반의약품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의약품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제약사들은 당시 의료기관 만큼이나 약국 영업 활동도 활발했다.

1990년대에 영업사원으로 활약한 모 제약사 본부장은 당시 상황을 “낭만이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情)이 있던 시대”라고 규정한다. 제품에 대한 디테일 영업이 아닌 인맥과 방문을 통한 영업활동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또한 시대적으로도 핸드폰이나 호출기 등이 보급되기 전이기 때문에 현재 보다 자유로운 영업활동이 가능했다. 따로 개인 연락수단이 없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영업사원 개개인의 행적에 대해 그리 심한 간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 대리의 상사는 첫 거래처에서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눈 후 또 다른 약국과 의원들을 돌며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 약속을 잡은 후 회사에 이를 간단히 전화로 보고한다. 술자리에 참여하게 된 홍 대리는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지만 이어지는 술잔에 만취하며 정신을 잃는다.

●●의약분업, 영업활동 대변혁 시작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던 홍 대리는 주변의 소란함에 깨어났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니 분주하게 돌아가는 제약사의 사무실. 그의 눈에 들어 온 풍경은 1990년대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띄고 있다. 이 곳에서는 영업사원들이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설명회 준비에 한창이다.

불과 10여 년의 시간을 두고 제약영업이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된 이유는 2000년 이뤄진 의약분업으로 인한 것이다. 의약분업 이후 의약품시장이 전문약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제약사들의 영업정책은 한차례 홍역을 치르며 큰 변화를 일으켰다. 제약사들은 의약품 유통을 의료기관이 주도하자 병의원의 영업을 강화하고 약국영업은 상대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일반약은 9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의 60%를 차지했으나 분업전인 99년에는 46.6%대로 급락하고 현재는 20~30%대에 불과하다. 제약사들은 이에 따라 에치칼 사업부를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특히 처방약시장의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제품력보다는 영업력이 중요하다고 판단, 영업사원 자질 향상에 주력해 온 것이다. 이에 따라 의약품의 적절한 사용과 공급을 위해 의료관계자와 면담하는 상태에서 의약품의 품질, 안전성, 유효성 등 의약품 정보 제공, 수집,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MR(medical representative)의 중요성도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MR은 지속적인 보수교육으로 최신 마케팅 및 영업기법 습득 및 업계 전반적인 수준향상으로 전체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향상 등의 장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MR들을 앞세워 의사들과의 소통에 전념해 왔다.

또한 처방약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현장중심의 영업을 강화해 나갔다. 디테일 강화를 위해 교육시간을 확대하고 의약품정보 신제품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자체개발이나 도입을 통한 신약 홍보를 위해 학회 학술대회, 세미나 등을 통해 제품 알리기에 나서면서 의사들과 소통을 확대해 나갔다. 주변여건도 90년대와는 판이해졌다. 휴대폰의 대중화와 무선인터넷을 통한 노트북 이용, PDA를 이용한 주문과 출하가 바로 이뤄지게 됐다. 아울러 PDA나 핸드폰을 이용해 영업사원의 행적 파악도 용이해져 90년대 일명 ‘짱박히기’와 같은 여유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물론 의사나 약사들과의 인맥관리는 중요한 영업형태로 남아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생판 모르는 남보다 알고 지내던 사이를 선호하기 때문에 여전히 영업사원들은 꾸준히 의약사들에게 얼굴을 내비치며 친분을 다지고 있다.

관행적으로 내려오던 음성적 리베이트 역시 존재했다. 의사들의 자사제품 처방에 대한 대가로 건네지던 리베이트나 약사들에게 제공하는 백마진 등은 2000년대에도 역시 건재했다.

홍 대리는 이러한 정신없는 분위기를 보며 “맞아 이땐 분위기가 이랬었지”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이렇게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중반의 제약영업 분위기를 잠시 맛본 홍 대리는 어느새 갓길에 주차한 차에서 잠을 깬다.

●●환경변화 따른 영업 패러다임 전환
잠에서 깨어난 홍 대리는 서둘러 차를 몰고 귀사한다. 홍 대리가 지금 처리해야 할 일은 내일 개최될 제품 설명회 자료준비를 끝마치고 이를 검토해야 한다.

2010년 제약영업은 공정경쟁규약과 쌍벌제 등 정부의 강력한 리베이트 근절 정책에 따라 또다시 마케팅, 영업 방식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공정위를 시작으로 유관기관이 전천후로 리베이트 영업에 제동을 걸어오면서 기존의 영업관행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은 바로 쌍벌제. 쌍벌제는 리베이트를 준 쪽과 받은 쪽을 함께 처벌하는 제도로 제약사 뿐만 아니라 의사들까지 처벌을 받게 만든 것이다. 따라서 의사들 역시 제약사 영업사원들과의 접촉을 꺼려하게 되며 기존 관행이 점차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제약사들은 모여 자정선언을 하며 “깨끗한 영업, 정도 영업”을 외치면서 리베이트 근절을 다짐했다. 정부도 “리베이트 영업을 지속하는 회사는 문을 닫게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최근 영업현장에서는 리베이트가 많이 사라지고 있는 분위기라는 것이 제약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제약사 영업담당자들은 현재 업계를 둘러싼 한파(寒波)를 잘 극복하면 앞으로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스마트폰 열풍이 확산되는 가운데 제약업체 영업사원들도 개인휴대단말기(PDA)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다녀 눈길을 끌고 있다.

이동 중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영업사원 특성상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게 업무 효율성면에서 큰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홍 대리 역시 회사로부터 스마트폰을 지급 받은 후 이미 PDA나 노트북 이용보다는 더 손에 익숙해진 상태다. 그는 최신 기기를 이용해 서둘러 자료 정리를 끝냈다. 2000년대 초와 다르게 빠르게 이뤄진 자료 수집에 따른 결과다.

서둘러 제품설명회 준비를 끝마친 홍 대리는 퇴근을 하며 “시대가 바뀌면 영업도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구나”라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가지 아쉬움이 가득하다. 과거의 꿈만이 아닌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도 한번 살펴봤으면 한 것이다. 일단 2020년 영업환경이 어떻게 변화될 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분위기로서는 제약계 역시 일대변혁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와 다른 업무 환경이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홍 대리는 “앞으로의 일은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으로 변화될 것을 믿자. 주변 환경부터 업무 여건까지 모두 좋아질 거야”라고 혼잣말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