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시 합격해도 방심하면 의료법 위반?
2010.10.24 21:23 댓글쓰기
3년 또는 4년의 대학 교과과정을 거쳐 국가시험에 합격해도 당장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건의료국가시험원으로부터 정식 면허증을 발급받아야만 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간호학 및 물리치료학, 임상병리학, 방사선학 등을 전공한 예비 간호사와 의료기사들이 자칫 의료법 위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국가시험 합격 후 면허증이 발급되기까지 소요되는 약 2주가 바로 이 기간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예비 의료인은 국시에 합격해 의료기관에 정식으로 입사했더라도 정식 면허증을 발급받기 전에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예를 들어 자동차 면허증을 땄다고 해서 바로 그 순간부터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며 “간호사나 의료기사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정식으로 면허장을 받을 때까지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의료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어 “예비 간호사나 의료기사들이 의료기관에 취직하면서 면허장을 받기 전에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법을 어기는 경우”라고 덧붙였다.

국시 합격 전 인재 쓸어가는 대형병원

이러한 상황은 대형 의료기관의 채용 방식과 무관치 않다. 대형병원은 매년 대규모로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을 채용하고 있다. 매년 국시 합격자가 쏟아지고 있지만 대형병원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대형병원들이 앞다퉈 병상을 늘리면서 소요되는 의료인력도 비례해 증가했다.

따라서 성적이 우수한 전국 간호대, 의료기사 관련 학생들은 국시 이전에 대형의료기관에 취직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국시 이후에 신입사원을 채용할 경우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서울 메이저병원의 한 임상병리실장은 “우수한 인력을 뽑기 위한 병원들의 경쟁은 상당하다”며 “지난 몇 년간 일부 명문대들이 앞다퉈 학과를 개설하면서 우수인력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재 대형병원들은 의료인력 채용 후 자체 교육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어 의료법 위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은 편이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신입사원들은 몇 주에 걸쳐 업무와 서비스 등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반면 수시로 직원을 채용하는 중소병원과 개원가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인력 교체가 잦은 중소병원의 경우 직원 채용 이후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기가 실상 어렵다. 대체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곧장 업무에 투입될 소지가 크다.

1~2명의 의사가 운영하는 1차 의료기관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3명 이내로 간호사와 의료기사가 업무를 맡는다.

더욱이 운영 부담을 느끼는 개원가는 인건비 부담이 적은 신입사원을 선호하는 추세다. 경력직의 경우 인건비 상승으로 경영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개원가 근무 경험이 있다는 한 의료기사(현재 무직)는 “개원가는 간호사보다 간호조무사를 선호하고 의료기사도 이직이 잦아 신입을 뽑는 경우도 많다"며 “취업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입사 후 일손을 놓기는 사실상 어렵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소병원이나 개원가의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구직자들 역시 취업난을 겪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병원 규모가 크면 다양한 교육을 받으면서 2주를 보내겠지만 병원 대부분은 여의치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정 좋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불안”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입사원을 막상 뽑아놓고도 업무공백이 생겨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다. 현재까지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경우에 따라 현행법을 위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직능단체는 이 같은 문제점을 파악하고 관련 대학에 주의를 요청하기도 했다.
서울 한 중소병원 실장은 “대형병원이 아닌 대다수 의료기관은 오랜 기간에 걸쳐 교육을 할 수 없어 고민이 생길 수 있다”며 “의료행위로 판단할 정확한 기준을 잡기가 어렵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의료기사단체 한 간부도 “이러한 상황은 이미 오래전부터 발생해 왔다”며 “현재 협회에서 이 문제로 처벌받았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지만, 위험성에 대한 목소리는 항상 있었다”고 전했다.

간호사와 의료기사 직종에서 이 같은 상황이 발행하고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모든 보건의료 직종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을 크게 해석할 이유가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미 간호대와 의료기사 관련 학과들이 2학년이나 3학년 겨울방학 실습을 통해 실제 진료행위에 버금가는 업무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한달이나 걸리던 면허증 발급이 최근 2주정도로 단축되는 등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관련 민원도 급증하고 있어 합격증명서 등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한 협회 간부는 “간호사나 의료기사는 보통 2학년이나 3학년 때 반드시 실습을 거친다. 이때 실제 업무와 유사한 실습을 하게 된다”며 “이미 오래전부터 관행적으로 해온 일이며 병원들도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바로 업무에 투입하려는 일부 병원이 이러한 위험성을 만드는 것 아니겠냐”며 “비용이 들더라도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업무에 투입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병원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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