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국민들 시선 '밥그릇 싸움' 냉소
2009.07.31 02:58 댓글쓰기
[기획 4]의사 고유 영역에 대한 의료계 외부 직역의 침범과 이에 따른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내부에서도 진료과간 영역다툼으로 의사들은 어느 시절보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의사 고유의 권한과 가치를 유지하려는 힘겨운 싸움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국민건강을 볼모로 '밥그릇 싸움'만 하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경향 역시 커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대안은 과연 없을까.

면허 또는 자격이 부여되는 보건의료분야의 전문영역은 크게 의료법과 약사법, 의료기사법 등 관련법에 따라 구분된다. 우선 의료법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의료인에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및 간호사를 들 수 있다.

의료기사법 제1조·제2조 및 동법 시행령 제2조에는 의료기사 등의 종류와 업무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의료기사의 종별은 임상병리사·방사선사·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치과기공사 및 치과위생사로 구분되며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지도를 받아 규정된 업무를 행한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38조 및 약사법 제2조에는 약사 및 한약업사의 업무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의약품·의약외품 및 의료용구의 제조·조제·감정·보관·수입·판매와 기타 약학기술과 관련된 사항을 담당한다. 자격과 면허에 관해 제3조 및 제4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 밖의 보건의료 관련 면허의 자격으로는 응급구조사 1급(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36조)의 경우 전문대학 이상을, 응급구조사 2급, 간호조무사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 후 양성기관 과정이수를 요구하고 있다. 특수학교나 중학교 졸업 후 관련 양성기관의 양성과정을 요구하는 경우로 안마사(의료법 제82조)가 있다.

이 같은 자격구분이 진료 혹은 시술의 영역까지 정확하게 나누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어 문제는 기인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최근 한창인 영역싸움은 기존 영역 내에서 경쟁이 치열해진데다 경기 침체까지 겹쳐 수익이 줄자 인근 분야까지 넘어가 진료하는 일이 잦아진 것이라는 지적이다.

앞서 언급한 의료계와 한의계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의사와 치과의사의 입주변 및 얼굴성형, 의사와 피부미용사의 피부관리, 안과의사와 안경사의 시력검사 및 타각적 굴절검사 등 다툼이 치열하다.
대한의사협회가 “의료인이 임상적 피부관리를 할 수 있는 복지부 유권해석이 나와 의료기관이 고용한 피부미용사 행위의 적법함이 확인됐다”고 발표하자 피부미용사회는 “의협에서 오버해석한 것”이라며 “피부과 의원은 에스테틱·피부미용·스킨케어 간판을 모두 떼야한다”고 받아쳤다.

안경사협회가 “의사와 마찬가지로 국가시험을 통해 면허를 부여받았음에도 타각식 굴절검사 등 시력검사에 필요한 일부 과정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명백한 전문성 훼손”이라며 관련법 개정을 촉구하자 안과의사회는 “안경사들이 안과의사의 고유 업무를 침탈하려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최근 의사가 없는 경우 간호사도 응급조치와 같은 경미한 의료행위를 허용한다는 법령이 추진되고 있는 사실에 의협은 “의사가 부족하다고 간호사에게 의료행위를 허용하려는 것은 법무부의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진료영역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피부과학회는 ‘피부과 진료는 피부과 전문의에게 문의하라’는 내용의 포스터를 제작해 의료기관에 게시토록 한 바 있다.

이는 타과 전문의나 일반의들이 대거 피부과 진료에 나서자 피부과 전문의 진료영역이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성형외과학회도 이와 유사한 홍보에 나선 바 있어 개원가에서 미용성형, 피부미용을 둘러싼 진료과간 갈등이 점차 고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개원가의 성형분야 관심 및 영역 확대에 대해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기초적인 상처 치유과정부터 복잡한 재건수술까지 체계적으로 배운 상태에서 미용수술을 배우게 된다”며 “해부학적 지식이 부족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타과 개원의협의회장은 “진료영역은 시대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타 과목을 견제하느라 자꾸 심사기준을 강화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심평원 등 정부 당국에만 칼자루를 쥐어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같은 맥락에서 의학회 승인없이 임의로 정한 세부전문의 자격을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학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인증의’ 등 유사 세부전문의 자격증도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가장 먼저 불법 민간자격증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의 불법진료가 곧 의료계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을뿐 아니라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자격기본법 개정으로 민간자격 등록제가 실시돼 그 규제가 강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불법 민간자격으로 인한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불법 민간자격을 취득한 무자격자의 시술행위에 대한 국가 차원의 감시가 요구되며, 피해 예방적차원에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및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한 관계자는 “민간 자격의 신설·관리·운영 제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현행법상 국민의 생명, 건강과 직결되는 해당 제한 분야를 구체화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의료계 일각에서는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일단 제쳐놓더라도 의료계 내 공방이 국민건강을 볼모로 삼은 ‘밥그룻 싸움’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고 지적한다.

한의사들이 전통의 맥진에서 벗어나 진단의 정확도를 좀더 높일 목적으로 현대의 진단용 의료기기를 활용하겠다고 나서는 것에 대해 의사들이 ‘고유영역 침범행위’로 규정, 공격적으로 방어하는 것이란 얘기다.

의료계 다른 인사는 “최근까지 의료계는 탈세를 일삼거나 의술을 상술로 둔갑시키는 인술파괴의 온상이란 비판을 적지 않이 받고 있다”며 “의사, 한의사를 비롯한 의료계 전체가 자칫 돈만 밝히는 이익집단이란 편견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라고 말했다.

의사 내부 영역 다툼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 역시 차갑기만 하다. 의료법상 의사는 모든 의료행위를 할 수 있지만 이 시점에서 생각해볼 점은 과연 공정경쟁을 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도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다.

길거리에 붙은 의료기관 간판을 보면 일반인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조차 전문의가 개설한 의원인지, 전문과목이 무엇인지 분간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보니 피부과나 성형외과 전문의 입장에서 보면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피부미용과 미용성형을 하는 타과 전문의나 일반의들이 늘고 상황이 되자 피부과학회와 성형외과학회는 치료법과 수술법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차단하기에 이르렀다. 내부 영역 침범이 결국 의료발전 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의료계 관계자는 “역시 전문가집단으로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 의료계 내부의 중론”이라며 “밥그릇을 빼앗으려는 집단과 지키려는 집단으로 비춰지기 전에 의료계 스스로 자성하고 잘못된 관행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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