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회장 출사표 던졌던 4인 그들은…
2009.09.30 21:56 댓글쓰기
[특별초대 하]올해 봄, 이들은 뜨거웠다.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서로를 향해 맹렬히 공격을 퍼붓기도 했다. 어떻게 의권(醫權)을 수호할 것인가를 한결같이 고민했지만 제시한 해법은 제각기 달랐다. 과열경쟁에 따른 비방전이 난무하며 수 차례 선관위의 경고가 내려졌다. 동문 출신의 후보들은 단일화 문제를 두고 반목이 형성, 불편한 분위기 속에 선거를 치러야 했다. 또 생소한 인물의 출마와 현직 회장과 의장의 동시 출마 등 이번 선거는 치열한 열기 만큼이나 풍성한 얘깃거리도 많았다. 직선제 특성상 개표일까지도 윤곽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시종일관 ‘녹사수수’(鹿死誰手·승패를 결정하기 어려운 지경) 분위기 속에 진행됐던 의협회장 선거. 이제는 치열했던 선거전은 가슴 저만치 묻어두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는 4명의 낙선자들. 제36대 대한의사협회 회장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던 전기엽(기호 1번), 주수호(기호 3번), 김세곤(기호 4번), 유희탁(기호 5번) 전 후보를 데일리메디가 만나봤다.[편집자주]

김 세 곤 前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

어떻게 보면 가장 ‘민감한’ 자리가 될 것 같아 전전긍긍했다. 가톨릭의대 선후배로 나란히 제36대 대한의사협회장 선거에 출마해 관심을 모은 경만호 현 의협회장과 김세곤 전 부회장. 당시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두 사람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나타난 서로의 문제를 지적하며 선관위에 쌍방 제소를 하는 등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김세곤 전 부회장은 주수호 전 회장과 더불어 유력한 당선후보로 거론됐지만 끝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여름의 끝자락, 북적이는 서울의 유명 생태집에서 만난 그는 소탈하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표심은 참 아무도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현재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선거 때의 감흥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덤덤한 표정에선 아쉬움이 묻어났다. 아닌 게 아니라 애당초 출마 의사가 없었지만 지인의 권유로 뒤늦게 뛰어들어 쓰라린 패배감을 맛봐야 했던 그였다.

“주변에서 의협을 위해 나와 달라는 요청이 계속 들어와서 나서게 됐습니다. 이번 선거는 별 욕심이 없었는데…. 당선은 못됐지만 어쩔 수 없죠. 후회나 미련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 2000년 공보이사로 대한의사협회에 발을 들여놓은 김세곤 부회장은 의무이사, 상근부회장, 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두루 역임하며 의료계의 굵직굵직한 현안들과 마주했다. 근 10년을 의협에 머물다 민간협회 부회장으로 거취를 옮긴 소감은 어떨까. 그는 “일단 가족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의협에 있을 때 허구한 날 술 많이 마시면서 고생하는 걸 봐온 아내는 오히려 지금이 낫다고 합니다. 선거 끝나고 같이 여행도 다니면서 모처럼 얻은 자유를 만끽했죠.”

“회원들이 믿고 따라줘야 의협 발전”

선거 이후 지중해, 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하면서 평정을 되찾은 김세곤 부회장이 요즘 주로 머무는 곳은 남산 도서관이다. 한가로운 낮, 남산이나 서울 근교의 도서관을 찾아 틈나는 대로 책을 읽는다는 그의 관심사는 교양, 경제, 유머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김 부회장은 “근래 들어서는 역사책을 즐겨 본다”며 얼마 전 서거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는 명언을 아로새겼다. 김 전 대통령이 남긴 평화의 메시지처럼, 의사들의 단체인 의협도 집행부와 회원들의 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현 경만호 집행부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세곤 부회장은 “특별히 주시하고 있지는 않다”고 답했다. 감시의 눈을 곤두세우기보단, 알아서 잘하리라 믿고 있다는 신뢰의 표시였다. 선거기간 때 쌓은 앙금은 벌써 희석돼 선거를 끝으로 자취를 감춘 듯했다. 무엇보다 회원들이 믿고 따라줘야 집행부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그가 가진 리더십 철학이다. “의협이 발전하려면 회원들이 단결해서 힘을 보여줘야 합니다. 회원들이 집행부에 신뢰를 보내줘야 의협이 큰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회원들의 신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민주적 절차다. 이 같은 측면에서 최근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출방식을 두고 벌어진 논란은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고 그는 밝혔다.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꾸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결정 과정에서 회원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세곤 부회장은 광진구에서 가장 ‘잘나가는’ 소아청소년과 개원의(고려소아과의원)로 오랜 세월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다시 문 열고 환자를 볼 생각은 없다”고 그는 말한다. 대신 오래 전부터 병행해온 무료진료에 좀 더 힘을 쏟는다는 계획이다. 의협 재임시절부터 꾸준한 의료봉사를 실천한 김세곤 부회장은 2003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기도 했다. 김 부회장은 “일반 환자를 보는 건 이제 후배들의 몫으로 물러줘야 할 것 같다”면서 특유의 여유로운 웃음을 머금었다.

유 희 탁 前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의장

그의 얼굴엔 여유가 스며있었다. 온화한 미소가 사람 마음을 편하게 했다. 건강한 피부가 나이보다 젊게 보였다. 그의 첫인상이다. 대한의사협회 대의원 의장을 거쳐 지난 36대 의협 회장 선거에 출마해 ‘변화’를 외쳤던 유희탁 후보다. 지난 13년간 분당제생병원에 재직한 유희탁 후보는 3~4대 병원장을 역임하고 지난 5월 21일 정년퇴임해 지금은 전에 없던 여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의 나이 65세다. “65년동안 열심히 살아와서 이 정도 여유는 부려도 된다”며 바쁜 지난 나날을 회상하며 미소 짓는 그의 모습에서 열정적인 의사생활이 그려졌다. 병원장도 퇴임하고 이제 그는 무얼할까. 그는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자는 큰 밑그림을 그렸다고. ‘봉사’를 제2의 인생으로 택한 유희탁 전 대한의사협회 대의원 의장을 만나봤다.

“회장 선거를 간선제로 바꾼 것은 회원들의 무관심을 더욱 조장하는, 잘못된 것입니다. 최소한 전체 회원들의 의중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다소 민감한 주제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의료계 수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가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뀐 것에 대한 아쉬움을 그는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제 정말 ‘그들만의 잔치’가 돼 버릴 것만 같은 원로 의사의 걱정 어린 충고였다.

“그렇지 않아도 회원들이 점점 등을 돌리는데 최소한의 권리인 선거권마저 빼앗으면 분열과 반목이 끊이질 않을 것입니다. 아직 우리 사회가 의식에 있어서 완벽한 변화가 오기 전까지는 직선제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솔선수범 자세로 사랑과 신뢰 회복이 우선”

지금도 적용 시기 등을 놓고 의료계는 내홍을 겪고 있다. 지난 4월 개최된 제61차 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 회장선거 간선제 통과를 반대해 ‘선거권찾기의사모임’도 결성됐다.

“사고방식과 발상의 전환이 돼야 의사협회의 구조적인 변화가 이뤄지고 혁신될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은 의사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에 상처를 준 셈입니다. 결국 10만 회원들은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유희탁 전 의장은 “화합과 단합을 위해서는 집행부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회원들부터 ‘집행부들이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고 솔선수범하는 구나’라고 느끼면 자연히 동참하고,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사랑과 신뢰를 회복하는 길밖에 의료계 발전을 위한 방법은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국민에 대한 사랑과 신뢰회복은 물론이고 회원 간 사랑과 신뢰회복을 통해 의료계가 안고 가야 할 고통을 분담하고 더 나아가 발전을 꾀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의협의 모든 회계와 회무가 투명하고 깨끗해야 한다는 게 유 전 의장의 생각이다. 회계와 회무의 투명성 없이는 국민과 회원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을 수 없다는 논리다.

“기본적으로 회원들에게 걷는 회비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사용되고 모든 업무가 깨끗하게 돌아가야 가능한 얘기입니다.”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회계와 회무의 투명성으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자는. 너무도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공금은 공적인 일에만 쓰고, 모든 것을 자기 것처럼 아껴서 회비를 사용하게 되면 신뢰는 서서히 회복될 것입니다.”

지난 5월 말부터 유희탁 전 의장은 심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분당제생병원 정년퇴임으로 지금은 ‘조금’ 바쁜 생활에서 벗어났다는 그는 벌써 20년동안이나 새벽 5시에 기상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그의 건강비결이다. 퇴임한 지 4개월째. 그는 국내외 여행을 자유로이 다니고 싶단다.

“6개월 정도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싶고, 남은 여생은 사회에 봉사하며 베풀며 살고 싶습니다. 공공기관에서 무료진료를 봐도 좋고, 의료봉사를 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큰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이제 지금과 다른 새 삶을 살아갈 것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11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은빈 · 노은지 기자 (webmaster@dailymedi.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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