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협 '법개정' vs 방사선사 '불법 면죄부'
2009.04.03 02:00 댓글쓰기
[기획 下] 치과진단용 X선 발생장치인 파노라마를 치과위생사도 촬영할 수 있게 해달라는 대한치과의사협회와 이에 반대하는 대한방사선사협회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가운데, 결정권을 쥔 보건복지가족부는 누구의 손을 들어줬을까.

답을 얻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치협의 민원을 검토하면서 복지부에 치과위생사의 파노라마 촬영가능 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치과의사 업무 범위는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시행령 제2조제1항제6호에서 “구내 진단용 방사선촬영 업무를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구내촬영이란? 치위생사 업무 영역은 어디까지

문제는 해당 법률에서 말하는 ‘구내(口內) 진단용 방사선촬영’이 어떤 촬영을 지칭하는가이다. 이를 두고 방사선사들은 필름을 구강 내 위치하고 촬영한 것이 구내촬영이라고 주장하지만, 치과의사들은 구강 내부를 촬영하는 것이 구내촬영이라고 정의한다.

이와 관련, 복지부는 “치과위생사의 구내 진단용 방사선 촬영은 구내진단을 위해 촬영부위를 구내로 제한해 방사선 촬영을 하도록 한 것으로 치과진단용 엑스선 발생장치로 제한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파노라마 장치를 이용한 구내촬영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토대로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달 16일 민원제도개선 권고문을 통해 파노라마 촬영업무를 치과위생사의 업무범위에 포함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의 개정을 권고했다.

권익위는 부패방지 및 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제47조에 따라, 고충민원을 조사·처리하는 과정에서 법령 그 밖의 제도나 정책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관계 행정기관 등의 장에게 이에 대한 합리적인 개선을 권고하거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 권익위는 12월 말까지로 지정한 권고안의 조치기한 중 해당 시행령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권익위 "치과 현실에 맞게 법령 개선" 권고

그렇다면 권익위와 복지부가 내린 이 같은 결론의 이유는 무엇일까.

권익위는 제도개선의 추진배경에 대해 “2002년 이후 치과에 파노라마의 보급률이 급증함에 따라 치협이 ‘파노라마 촬영만을 위해 방사선사를 고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치과위생사들이 파노라마 촬영을 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관련 규정의 개선’을 여러 차례 요구했다”면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법령으로 인해 발생하는 치과의료기관 등 국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권익위는 이어 해당 법 규정이 치과위생사의 업무범위에 파노라마 촬영여부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아, 보험급여 환수처분의 실시 등 공무원의 재량이 남용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파노라마 촬영업무를 치과위생사의 업무에 포함하지 않을 경우 치과의사가 직접 파노라마를 촬영하게 돼 진료서비스의 질이 저하되며, 치과에서 방사선사를 고용할 경우 파노라마 촬영비용이 증가해 국민 부담을 증가시킨다고 밝혔다.

복지부 "기존 유권해석 연장 선상에서 판단"

권익위가 이 같은 이유로 법령 개선을 요구하자, 복지부는 “방사선사협회의 반발이 예상되므로 법 개정보다는 유권해석을 통해 치과위생사의 파노라마 촬영을 허용하겠다”고 답했다. 보건복지가족부 의료제도과 관계자는 “이는 지난 1996년에 내린 유권해석의 연장 선상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국민권익위원회 복지노동조사과 관계자도 “96년 유권해석을 보면 복지부가 이미 치과위생사가 필름의 위치에 관계없이 구강 내부의 촬영을 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면서 “그럼에도 기존에 치과의원들을 대상으로 보험급여 환수처분이 일어났다는 것은 잘못된 행정조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이어 "방사선사협회 의견은 타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방사선사들은 이러한 주장이 계기가 돼서 확산될까봐 우려해 이번 건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라며 “이미 치과위생사들이 파노라마 촬영을 하고 있고, 그들이 방사선사들보다 더 전문적이고 셔터 한번 찍는 걸 두고 괜한 트집을 잡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방사선사 "불법 단속않고 방관한 복지부가 잘못"

권익위와 복지부의 결론에 방사선사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방사선이 위험하지 않다면 왜 국가에서 관리하며, 방사선사에 따로 면허를 발급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들고 일어날 조짐이다.

방사선사협회는 지난달 30일 복지부에 “치과위생사가 파노라마 촬영을 하는 것은 무면허의료행위로서 단속대상이 된다”면서 “단속을 강화하고 조치를 취해야 할 복지부가 오랫동안 이를 방관하고 있다”고 유권해석 철회를 요청했다.

더불어 법제처에 해당법의 유권해석을 의뢰해줄 것도 요구했다. 관련 부처의 유권해석에 이의가 있는 민원인은 해당 부처를 통해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다시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협은 또한 2일 권익위에도 권고안 철회를 요청하면서 이번 권고안은 “법치국가에서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보다는 오히려 불법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것으로서, 그동안 공공연하게 불법을 자행해온 일부 치과의료기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강력히 항의했다.

이번 사안에 대해 대한방사선사협회가 법적분쟁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방사선사와 치과의사, 복지부, 권익위 간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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