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소송 '급증' 의사권위 '추락'
2006.12.03 22:00 댓글쓰기
환자와 의사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환자 사망은 격한 감정싸움으로 번지다가 결국엔 '너죽고 나죽자'는 의료분쟁으로 치달아 피해자는 두번 죽고, 의사들은 결국 모든것을 잃고 폐업에 이르게 된다. 장기 불황에 환자 감소, 저수가 정책 등에 이어 별안간 찾아오는 의료분쟁은 의사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시민단체와 정부는 최근 의료분쟁에 대한 책임을 의사에게 전가하는 법안을 발의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데일리메디가 의료계의 어려움과 불만을 들여다 봤다.[편집자주]




[下]"의료분쟁·사고 1차적 책임은 의사?"



"환자 죽으면 무조건 의사 책임으로 떠넘기니…"

산부인과 의사 양모(50)씨는 6개월간을 '도망자'처럼 숨어 다녀야 했다. 국내 유명 대학병원 교수로 재직하다 2년 전 서울 강남지역에 산부인과를 개업한 그는 입지를 굳혀가던 중 자신이 집도했던 환자 1명이 사망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일부 언론과 인터넷이 유가족의 주장대로 "무리한 수술로 사람을 죽게 했다"고 보도하자 환자의 발길이 뚝 끊겼다.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씨에게 의도치 않은 사고가 또 터졌다. 산모가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분만 예정일 직전에 산전 진찰을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환자는 이를 듣지 않았고 예정일이 훨씬 지나서 찾아왔을 때는 이미 배 속의 태아가 죽어 있는 상태였다. 사고 후 유가족들은 병원에서 연일 시위를 벌였다.

양씨는 영락없이 '사람을 두 차례나 죽인 의사'로 몰리게 됐다. 나중에 법원이 "수술과 환자의 죽음은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정했지만 전 재산을 투자한 병원은 이미 초토화 상태였다.

보상금 등으로 잔뜩 빚만 진 양씨는 겨우 모 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로 다시 취직했다.

"의료사고에 전재산 잃어-개원 접고 다시 봉직으로"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근무하던 외과 전문의 이모(45) 씨는 최근 "다시는 메스를 잡지 않겠다"며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내려갔다. 2년 전 교통사고로 복부를 심하게 다친 환자에게 응급 췌장수술을 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환자는 더 큰 병원으로 옮겨 치료받다 사망했다.

가족들은 “응급수술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민·형사소송을 했고 틈만 나면 몰려와 이씨의 멱살을 잡았다. 무죄 판결이 났지만 이씨는 “외과의를 할 용기도 의욕도 없다”며 지금은 감기환자만 진료한다.

최근 병의원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은 점점 늘고 있다.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한 번만 실수하면 완전히 망할 수 있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장기 불황에 환자 감소, 저수가 정책 등으로 인해 병원 경영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막대한 손해 배상액은 그야말로 폐업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의사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실제로 2005년 의료사고와 관련된 소송이 772건인데 반해 올해엔 1월부터 10월까지 10개월 동안에만 970건의 소송이 진행됐다.

한 의사는 “환자를 보면서 행여나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인다”면서 “진료를 할 때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다”며 심적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10~20%의 가능성을 두고 수술을 했다가 잘못되면 그 책임이 의사들에게 돌아오는데 누가 감히 수술을 할 수 있을 것이냐”고 반문했다.

다른 의사는 “응급실로 오는 환자를 중소병원이 맡았을 때 당장 응급처치를 취해 큰 병원으로 옮겨야 되지만 만약 환자가 잘못되면 책임을 응급처치를 취한 의사에게 돌아간다”고 불평했다.

이 의사는 “당장 급한 환자가 와도 살릴 수 있을까보단 만에 하나 잘못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된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의료소송 급증 추세 확연

상황이 이러한데도 불구 지난해 12월 이기우 의원(열린우리당)이 발의한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구제법’은 의사들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고 있다.

이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의사의 무과실 입증 책임과 무과실 의료사고 국가 보상, 형사처벌 특례 규정, 의료피해구제위원회 설치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의료사고가 발생 했을 때 의사는 자신의 무과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고 무과실 의료사고에 한해 국가가 이를 배상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의사의 소신 진료가 위축되며 방어 진료를 통해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것이란 의견을 내세우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단순히 결과만 가지고 책임을 지라면 의사들이 애매모호한 환자가 오면 급하더라도 치료나 수술을 기피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방어진료가 양산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표준의료가 성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분쟁에 대한 책임을 의사에게 전가하면 생명의료가 위축되고 그 피해는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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