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운용 및 결산에 국회 승인을 필요로 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 추진에 대해 의료계가 완강히 반대했다.
대한의사협회는 5일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안'에 대해 이 같은 의견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 재정운영계획안을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까지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국민건강보험 재정 결산은 국회의 승인을 받도록 한다.
한정애 의원실은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국회 등 민주적 통제성을 강화하기 위해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건강보험은 국민·의료계·보험자 간 상호 협의 및 조정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재정 승인 절차도 충분히 엄격하고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의협은 "가입자 대표로 구성된 재정운영위원회에서 보험재정 수입을, 보험자와 의료계 대표 간 계약에 의해 보험재정 지출이 결정된다"며 "게다가 가입자·공급자·공익대표로 구성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상호 견제 및 조화를 통해 수입과 지출을 조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정안대로 건강보험 재정운영계획을 국회에서 심의·의결할 경우 효율성과 조화 및 균형을 실현하며 잘 작동하던 제도적 장치가 제 기능을 상실할 것"이라며 "국민 건강과 적정의료 제공이라는 건강보험 본연의 목적보단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정책 결정으로 건강보험제도의 취지와 근간이 흔들릴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건강보험 재정은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의 심의 및 승인, 국회 국정감사, 감사원 감시 등과 같은 삼중 통제 기전 아래 운용되고 있다.
국고지원금은 복지부 소관 세입·세출, 예산·결산 심의를 거치며 전체 건강보험 급여비용 지원에 대한 재정 운영은 기획재정부와 국회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예·결산은 복지부 장관 승인 하에 운용될 뿐만 아니라 국정감사를 통해 재정 전반에 대한 투명성과 합리성을 검증하고 있다.
의협은 "건정심에서 보험재정 지출 요인을 고려해 국민 부담의 적정 수준을 심사숙고해 의결하고 있다"며 "이는 자기 책임의 원칙에 최대한 부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개정안 도입 취지가 건강보험 재정의 투명성 담보라면 현행 체제를 유지하되 일부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국회의 건강보험 재정 승인은 단기 수지균형의 원리로 운영되는 보험재정의 특성과도 부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감염병 사태처럼 신속한 재원 투입이 필요한 경우 탄력적 대응이 어렵다.
단체는 "코로나19 사태 동안 검사비와 치료비 등에 8조 이상의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 재정이 투입됐고, 확진자 수에 따른 유행 단계별로 관련 수가적용 기준이 달라지기도 했다"며 "하지만 건강보험 기금화가 이뤄질 경우 이런 재난 사태 등을 위한 의료비 지원이 적시에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부담과 급여가 수지균형의 원리에 의해 연단위로 보험재정이 운영되는 단기보험 성격이 강한 건강보험은 의료환경과 경제상황의 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며 "국회의 재정운영계획 보고는 건강보험의 예측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만큼 재정 통제를 위한 관리방식으로 부적절하며, 진료체계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의협은 "국회는 그 특성상 국민 시각과 사회적 분위기, 여론 등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에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에 현실적 제약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당론에 따라 여·야 갈등이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 승인이 차선으로 밀리게 될 경우 국민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적기에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