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추락사고 환자를 진료했던 대구 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기소 여부가 빠르면 이달 초 결정될 예정인 가운데, 전공의 구명에 나선 의료계가 수사 중단을 촉구했다.
정부와 국회에는 더 이상 시스템 문제로 발생한 일로 의료진 개인을 벌하지 말고, ‘필수의료사고 처리 특례법’ 등을 제정해 의료진이 마음 놓고 환자를 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을 요구했다.
3일 대한의사협회(의협)·대한응급의학회·대한응급의학의사회·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서울 용산구 소재 의협 회관에서 ‘대한민국 응급의료 붕괴 위기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의료계는 “현재의 대구 전공의 수사는 과거 이대목동병원 사건으로 인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 급감 사태처럼 걷잡을 수 없는 응급의료 붕괴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 회장에 따르면 이미 해당 전공의가 수사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응급의학계에는 전공의들의 동요가 일고 있다.
그는 “미국 응급의학과 전공의 포기 비율은 1%가 안 되지만 우리나라는 최근 2~3년 새 10%를 상회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으로 이미 응급의학과를 그만둔 전공의도 있고, 앞으로 지원하지 않겠다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동료를 지켜보는 전공의 단체의 우려도 크다.
강민구 대전협 회장은 “피교육자인 전공의 신분 상 전문의의 지휘·감독 하에 의료행위를 하는데 이렇게 온전히 책임을 지는 게 맞는지 근본적 의문이 든다”며 “책임만 강요하는 과목을 어떻게 수련하나”라고 개탄했다.
이어 “배후진료 여력이 없는데 환자를 받으라고 하고, 중증환자를 무조건 받으라고 하고, 응급실 운영을 방해하는 경증환자는 거부할 수도 없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라고 한다”며 “시스템 문제를 개인에게 묻는 최악의 대처가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료진으로서 최선의 판단했다”···진료행위는 수사 대상 아냐
의료계는 해당 전공의가 진료에 있어 책임을 다 했다고 보고 있다.
김원영 응급의학회 정책이사에 따르면 해당 전공의가 환자를 받았을 당시 환자의 히스토리는 ‘3m 높이에서 떨어졌다’는 것이었고, 의식이 명료하고 혈압·맥박 등 활력징후도 정상이었다. 외상에 따른 중증도도 높지 않았다.
김 정책이사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누구라도 경증이라 생각했을 것이다”며 “다만 자살 시도라면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을 운영하고 있지 않은 해당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진료 가능한 병원으로 의뢰한 것이다.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건복지부가 실사 조사에 나선 결과 ‘개인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결론을 냈었다”며 “수사는 경찰 고유 권한이지만, 복지부 조사와 결론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빠르게 결론을 내야 의료진 동요가 없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형민 회장은 응급의학과 의사가 환자를 볼 때 내리는 판단은 경찰 조사로까지 이어져야 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사의 판단이 모두 옳을 수는 없어도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이기에 선택하는 것”이라며 “결과가 좋지 않아도 그것은 응급의료 진료행위이지, 경찰 조사를 받아야하는 행위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의료진 마음 놓고 진료토록 ‘착한사마리아인 법’,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필요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은 응급실 과밀화와 의료진에 대한 법적 보호 부재라는 게 의료계 지적이다.
이형민 회장은 “코에 장난감 조각이 들어가도 응급실에 온다. 이 상황에서 경증환자를 다른 병원에 어떻게 보내나”며 “경증환자의 상급병원 이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수차례 건의했다. 면책을 넘어 보상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교통사고 책임보험 도입 등을 본격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나도 흉부외과 진료를 볼 때 생존율이 10~20%에 못 미친다 하더라도 소신진료를 했었고,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능력 밖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결과가 나쁘면 책임이 되고 그러다 보니 응급실을 떠도는 일이 생긴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국회에는 필수의료 수행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의료진 형사처벌을 감경·면제하는 취지의 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응급의료법 개정안인 ‘착한사마리아인법’의 경우, 지난해 1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지만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고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필수의료 분야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인 법적 부담을 해소시켜 걱정 없이 환자를 받고 소신 있게 치료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무너지는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 필수의료체계를 다시 세울 유일한 방법이다”고 피력했다.
한편, 응급실 표류 사고를 막기 위해 당정은 응급실 수용 의무화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원영 응급의학회 정책이사는 “서울시내 교통체증이 심하다고 해서 속도 제한을 올리지 않는다”며 “응급실에 환자가 못 들어간다고 해서 의무 수용하라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