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조정법, 진료현장에선 오히려 독(毒)”
국회 통과 후폭풍…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대전협 “중과실 기준 모호” 비판
2026.05.02 07:35 댓글쓰기



사진제공 연합뉴스.
의료계 염원과 우려가 교차하던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필수의료 최전선을 지키는 현장 분위기는 여전히 냉담하다.


1일 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등 의료계에 따르면 “입법 취지인 ‘사법 리스크 완화’라는 외형과 달리, 속내를 들여다보면 의료진 목을 죄는 독소 조항이 가득하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생사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는 심장혈관흉부외과와 미래의료 주역인 전공의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보완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입법예고를 통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의료계는 하위 법령 마련 과정에서 실질적인 독소 조항 철폐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필수의료 붕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배수의 진을 치는 형국이다.


국회 문턱 넘은 개정안, ‘형사특례’ 담았지만 의료계 ‘냉담’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 핵심은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중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 일정 요건을 갖추면 형사 처벌을 면제해 주는 ‘반의사불벌 특례’ 도입이다. 


법안에는 의료진 설명의무 부과와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손해배상금 대불 제도 폐지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사법 리스크를 완화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아쉬움을 표명했다. 


특례 적용 전제 조건으로 내걸린 설명의무와 책임보험 가입 등이 오히려 의료진에게 또 다른 법적·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전공의들을 대표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즉각적인 입장문을 내고 강하게 반발했다. 대전협은 형사특례 예외 사유로 남겨진 ‘중대한 과실’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입장이다.


최선의 진료에도 불구하고 악결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중증현장에서, 이를 ‘중과실’이라는 자의적 잣대로 판단할 경우 결국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현장을 떠나는 ‘엑소더스’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필수의료 의사 사지(死地) 내모는 격, 전문가 심의 보장해야”


필수의료 상징과도 같은 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는 더 구체적으로 비판을 쏟아냈다. 


학회는 성명을 통해 고위험 중증 수술이 일상인 흉부외과 영역에서 ‘중대한 과실’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치명적인 결함으로 꼽았다. 


심장 수술이나 ECMO 운용 중 발생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판단을 사후적으로 재단하는 구조는 의료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학회는 또한 의료사고심의위원회의 비전문적 인적 구성을 정조준했다. 의료인 비율이 4분의 1에 불과한 위원회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흉부외과 수술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학회는 “전문가 식견이 배제된 심의는 결국 ‘결과 지상주의’적 판단으로 흐를 수밖에 없으며, 이는 의료진의 방어 진료를 넘어 진료 기피 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위험 필수의료행위로 인한 중상해까지 조정절차 자동개시 대상이 확대된 것도 큰 부담이다. 


학회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자동개시 굴레에 씌워진다면, 어느 누가 고위험 수술대에 기꺼이 올라서겠느냐며 제도적 안전망의 근본적인 재설계를 강력히 요구했다.


정부, 불가항력 보상 확대 등 제시…실효성 논란 ‘여전’


의료계 반발이 거세지자 보건복지부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28일부터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금 지급 등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며, 분만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 범위를 ‘산모 중증장애’까지 확대하고 보상 한도를 1억5000만원으로 상향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환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의료인의 진료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복안이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불가항력 사고에 대한 보상 확대가 산과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흉부외과 등 모든 고위험 필수의료 영역으로 전면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위 법령 제정이 ‘분수령’…의료계 “전문가 참여 보장해야”


의료계 시선은 이제 실질적인 세부 지침을 정하는 하위 법령(시행령) 제정으로 쏠리고 있다.


법안의 뼈대는 이미 만들어졌지만 ‘중대한 과실’ 세부 기준이나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운영 방식 등 구체적인 내용은 하위 법령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그리고 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는 입을 모아 하위 법령 논의 과정에 의료계 전문가들 참여를 공식적으로 보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현장을 모르는 탁상공론식 시행령이 마련될 경우, 어렵게 마련된 법안 취지는 무색해지고 필수의료 인프라 붕괴만 앞당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에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목적으로 추진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상생 법안’으로 자리잡을지, 아니면 갈등의 골만 깊게 만드는 ‘반쪽짜리 입법’에 그칠지 향후 정부와 의료계 하위 법령 협의 과정이 주목된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는 “구조적인 저수가 체계에서 의료기관에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은 경영난을 가중시키는 행위다. 국가 책임에 기반한 실질적인 보상 및 보험료 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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