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KAIST 졸업생 대표 연설
차유진 박사, 이달 17일 학위 수여식···"의사과학자로서 인류 난제 극복 도전"
2023.02.18 06:29 댓글쓰기

인류 난제에 도전하기 위해 의사과학자가 된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가 KAIST(총장 이광형) 학위수여식 강단에 졸업생 대표로 올랐다. 


카이스트는 17일 오후 대전 본원 스포츠컴플렉스에서 3년 만에 졸업생 전체(2870명)가 참여한 학위수여식을 개최했다.  


졸업생 대표 주인공은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를 졸업하는 38세 차유진씨다. 그는 지난 2004년 카이스트 학부에 입학한 뒤 전문의 활동을 거쳐 19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차 박사는 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충남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가 됐다. 


당시 결정에 대해 그는 "학부 생활이 순탄치 않았고, 힘든 과학자 길에 도전하느니 의사가 돼서 안정적인 삶을 살겠다는 타협을 했었다"고 회고했다. 


그랬던 그가 다시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임상 현장에서 다리 골육종을 앓던 어린 환자의 죽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 환자는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폐에 전이된 암덩어리를 잘라내는 대수술마저 이겨냈지만, 상태가 악화돼 결국 세상을 떠났다. 


골육종으로 사망한 어린아이 목격하면서 현대의학 한계 극복 방안 관심


차 박사는 슬픔에 잠긴 채 "왜 현대의학은 이 아이를 살리지 못했을까"라고 끊임없이 고뇌했다. 


이에 그는 현대의학 한계를 극복하고 인류 난제에 도전하겠다는 꿈을 안고 지난 2018년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차 박사는 의사가 환자 병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정의 특성을 뇌과학적 관점에서 규명, 이를 활용한 뇌 기반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는 다양한 전공분야 임상 의사 약 200명이 피험자로 참여해 수집한 데이터로, 본질적 기계학습 이론 개발을 시도한 독창적인 연구로 평가받았다. 


차 박사는 "이제 제가 과학자라고 불릴 때 가장 가슴이 벅차오른다"며 "비록 작은 발걸음이지만 또 다른 수많은 아픈 아이에게 희망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연설을 통해 "세상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너무나 많지만 세상의 지평을 넓히고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과학기술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어 "인간과 기계가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에 반응하면서 진화하는 '공진화(共進化)' 단계까지 기술을 발전시켜 의료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활용하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포부를 피력했다. 


한편, 그는 현재 카이스트 의과학연구센터 연구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의료인이 임상현장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을 돕기 위해 책 '의사를 위한 실전 인공지능(AI)'을 저술했다.


차유진 박사 연설문 전문 


나를 이끈, 우리를 이끌 꿈과 인연


안녕하세요. 카이스트 학부 04학번, 그리고 박사 18학번 차유진입니다. 새내기 학부생으로 처음 이 교정을 밟은 지 무려 19년 만에 박사과정을 마치고 여러분과 함께 졸업하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의 삶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많은 변곡점이 있었고 그 변곡점에는 저를 이끌었던 꿈과 인연이 있었습니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저는 중학생일 때 드라마 카이스트를 보며 카이스트를 꿈꾸었습니다. 물론 그 누구도 제가 정말 카이스트에 가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머리가 나쁘면 열정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어느 괴짜 교수의 말에 감명받아 저는 열정 하나로 기적적으로 카이스트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드라마 같은 일이었지요. 


하지만 저의 학부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저는 어려운 공부에 적응하지 못했고 성적은 늘 하위권이었습니다. 대학원 진학에도 실패한 뒤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그 결심은 대단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힘든 과학자의 길에 도전하느니 의사가 되어 안정적인 삶을 살겠다는 타협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잘되어 가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던 제가 민지라는 꼬마를 환자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리에 생긴 골육종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까지 해야 했던 민지는 오랜 투병으로 성한 곳이 없었지만, 암을 이겨내겠다는 삶의 의지 그 자체였습니다. 폐에 전이된 암 덩어리를 잘라내는 대수술마저 이겨내는 것을 보며 저는 오히려 적당히 살아온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필사적인 노력에도 민지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었습니다. 


민지가 하늘나라로 떠나던 날 저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왜 현대의학은 이 아이를 살리지 못했을까. 저는 오랜 방황 끝에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현대의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결국 과학기술에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저는 다시 과학자가 되어 그 답을 찾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교의 박사과정 학생으로 돌아오던 날, 모교는 패잔병처럼 도망쳤던 저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습니다. 박사 공부는 무척 어려웠지만 저는 학부생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를 찾고 풀어내는 과정은 늘 실패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너무나 힘들었던 저는 진지하게 박사과정을 그만두는 고민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도교수님께서는 의미가 있는 많은 실패는 적당한 성공보다도 훨씬 중요한 자산이 된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서 비로소 카이스트 정신을 배웠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았고 실패를 거듭했던 연구는 마침내 저의 졸업논문이 되었습니다. 저의 졸업논문이 출판되던 날, 저를 과학자의 길로 이끌었던 민지가 구름 위에 나타나 고사리 손으로 저에게 손뼉을 쳐주고 있었습니다.


졸업생 여러분, 저는 이제 제가 과학자라고 불릴 때 가장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저의 이 한걸음은 비록 작은 발걸음이지만 또 다른 수많은 민지에게 희망의 씨앗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나 많지만, 세상의 지평을 넓히고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과학기술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과학자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아간 우리들이 꾸는 꿈은 비록 작은 꿈이라 할지라도 그 꿈들이 모여 세상을 발전시키고 수많은 사람을 살릴 것입니다. 


괴짜 교수를 만나 카이스트에 왔고 민지를 만나 과학자의 길을 걸어왔으며 훌륭한 스승을 만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저의 인연들은 기적과도 같았지만, 어쩌면 우리 각자의 미래는 늘 실패와 맞서는 고단한 여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러했듯 고단한 인생의 변곡점들을 기회로 만들 힘과 인연이 우리 모두에겐 있다고 믿습니다. 연습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삶의 어떤 순간에서는 이날을 위한 연습이었다고 느끼게 될 때 우리는 다시 한 번 성장할 것입니다.


제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드라마 카이스트의 주제곡을 24년 전의 마음으로 떠올려 봅니다. 쓰러지지 않는 용기와 나를 향한 믿음이 멋진 미래를 열 수 있는 작은 열쇠죠. 카이스트 정신이 담긴 이 가사처럼 모교의 둥지에서 갈고 닦은 우리 각자의 날개를 믿으며 마음속에 간직해온 꿈을 향해 담대하게 날개를 펼쳐봅시다.


이제 독립된 연구자로 나아갈 허락을 받으매, 저의 최고의 스승님이신 이상완 교수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주신 국가와 국민께 그리고 늘 저의 버팀목이었던 뇌기계지능연구실 동료들께 감사드립니다. 늦은 나이의 학업에도 끝없는 지지와 헌신을 베풀어 주신 부모님께 사랑과 감사를 바칩니다. 


끝으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카이스트의 영혼이 늘 우리를 지켜주고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리라 믿으며 우리의 영원한 모교 카이스트의 장대한 미래를 응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끝없는 전진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3
답변 글쓰기
0 / 2000
  • nj 02.28 13:31
    과학자로서의 길이 힘들어 의사가 됐는데도 공익을 위해 다시 과학자로 되돌아 오시다니 정말 훌륭하신 분이네요. 응원합니다!
  • 구름 02.21 08:17
    멋지네
  • 별밭 02.19 23:12
    감동의 글입니다.

    큰박수를 보내며 응원합니다 ^^
메디라이프 + More
e-談